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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깊고 물 높은 고원의 도시 태백 가는 길

 

영월을 벗어나 터널을 지난다. 태백으로 가는 길은 결빙구간이 많고 위험한 길이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태백 가는 길,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천천히 간다. 정말이지 산골짜기 중에 산골짜기다.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태백은 멀다.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특히 태백은 결빙구간이 많은데다 미끄러운 곳도 많고 길도 얼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4시 45분, 사북을 지난다.

 

고한(4:40)을 거쳐 태백까지는 여기서 20킬로미터 남았다. 대천덕신부의 책 ‘산골짜기에서 보낸 편지’라는 제목이 생각난다. 과연 태백은 골짜기 중의 골짜기인 것 같다. 해발 800미터 길을 지나고 해발 900미터 길, 한참 가다보니 귀가 울린다. 해발 1,048미터 길, 터널을 지나고 ‘고원의 도시 태백입니다’ 인사말 적힌 표지판이 나온다.

 

이제 태백이다. 4시 50분이다. 상습 빙판지역을 비롯해 곳곳마다 주의표시가 있다. 급커브길이 많고 꼬불꼬불 길을 간다. 추전역(4:55)을 지난다. 태백산도립공원에 도착, 5시 20분이다. 어둠이 벌써 뒤를 따라 왔다. 도립공원 아래 식당가에서 저녁을 시켜 먹는다. 원래는 사 먹을 계획이 아니었다. 저녁을 직접 해서 먹으려했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추운 날씨다.

 

바늘 끝처럼 찌르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공기에 그만 기가 질려버려서 밥을 해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식당으로 찾아 들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치루는 동안 주인 남자는 ‘지금 서 있는 이곳이 해발 800미터 입니다.’라고 말해, 태백의 추위와 고도를 실감케 한다. 식당가 아래 훼미리보석사우나로 간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을 생각이다. 태백까지 오는 길이 하루 걸린 탓에 산행은 내일 하기로 한다.

 

무엇이든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태백의 겨울

 

찜질방에서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이른 아침 태백의 공기가 바늘 끝처럼 와 닿는다. 어제 저녁엔 너무 추워서 직접 밥을 해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식당에서 사서 먹었지만 가격에 비해 밥은 그다지 맛있는 줄을 느끼지 못했다. 오늘 아침엔 좀 춥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직접 해서 먹기로 한다. 바깥 공기는 살을 파고드는 추운 날씨라 차 안에서 간단하게 밥과 김치찌개, 돼지고기 소금구이 등으로 밥을 해서 먹는다.

 

차 안의 공기와 바깥 공기의 차이가 크게 나자 차창 유리엔 성에가 금방 낀다. 밤사이 차에 실어둔 식수통은 꽁꽁 얼어붙어 있고, 무김치에도 살얼음이 얼어있고, 수저조차도 살얼음이 생겨 있다. 밥 해 먹느라 어제 풍기에서 산 사과박스를 잠시 차 밖에 세워둔 사이에 깡깡 얼어버렸다. 태백의 공기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무엇이든지 얼어붙게 만드는 태백의 추운날씨다.

 

아침밥을 차 안에서 겨우 해서 먹고 옷을 두껍게 몇 겹으로 입고, 겨울장갑 2개를 끼고 양말 두 켤레를 신고 두꺼운 털 잠바를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도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될 수 있으면 맨살에 얼음 같은 차가운 공기가 닿지 않도록 하고 산행길에 올랐지만 그래도 몸은 뼛속까지 춥다. 거의 고개를 들지도 않고 발밑만 보면서 올라간다. 지독히도 찬 공기다. 태백산 도립공원 주차장(9:05)을 지나 당골매표소(9:25), 당골광장(970미터, 9:30)을 걸어 올라간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 정상에 올라

 

당골광장 표시석 앞에는 이곳의 지금 현재 온도와 시간까지 표시되고 있다. 오전 9시 30분, 기온은 영하 -9도이다. 넓은 등산로를 따라 눈 쌓인 길을 걷는다. 계속되는 눈길,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이 들린다. 10시 23분, 당골1교를 지난다. 당골1교를 건너자 햇살이 길에 든다. 얼어붙은 계곡, 그 두꺼운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청량하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 지워지고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계곡의 속살거림이 들려온다. 당골제2교(10:25), 당골 제3교 앞에 철계단, 문수봉 갈림길이 있다. 10시 40분이다. 우리는 철계단 가는 방향으로 간다. 오르막 등산로다. 반재(11:05)에 도착, 바람이 와 닿는다. 말 그대로 철 계단까지 거리, 반 정도 온 것이다. 이곳엔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들이 놓여있다.

 

 

 

계속되는 눈길 밟으며 숱하게 찍힌 발자국 위로 우리의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다.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은 누구의 발자국들일까. 어디서 이곳에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뭇 발자국들 그 위에 우리 발자국 찍으며 걸어간다. 11시 50분, 망경사, 철계단 갈림길이다. 망경사로 간다. 11시 55분이다. 그동안 올라오는 길엔 드러나지 않았던 전망이 드러난다.

 

망경사 앞에서 바라보는 태백산과 그 주변을 둘러싼 먼 산들까지 조망된다. 날은 시리도록 푸르다.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다시 출발한다. 망경사 위쪽에 보이는 단종비각(12:15)에 올라본다. 등 뒤에 두고 온 망경사에서는 점심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진다. 여기서부터 태백산 정상까지의 길은 갑작스런 경사 높은 길로 급하게 뻗어 오른 가풀막이다.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올라간다. 태백산 정상에 도착, 12시 25분이다.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천군과 강원도 영월군 태백시 경계에 있는 해발 1,567미터의 높은 산이다. 길이 많아서일까. 어디서부터 올라온 등산객들인지 태백산 정상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태백산 표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굽이굽이 펼쳐진 산정주변을 둘러본다. 가깝게, 멀리 조망되는 장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산들이 힘차게 뻗어 있다.

 

탁 트인 전망,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 산, 산이 에워싸고 있다.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고 푸르다. 태백산 정상표시석은 여태껏 등산한 산들의 그 어떤 것보다 크고 높은 것 같다. 이곳에 올라보니 그동안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이 씻은 듯 사라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 길 아래 산산이 펼쳐져 있다. 태백산 표시석 뒤편, 태백산 정상 정중앙에 있는 천제단에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천제단(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은 높이 3미터, 둘레 27미터, 너비 8미터의 제단으로, 태백산 산 정상에 이 같은 규모의 제단이 있는 곳은 태백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순 없지만, 고문헌과 구전에 의하면 신라, 고려, 조선, 구한말에도 지역 수령과 백성, 애국자들이 이곳에서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10월 3일, 개천절엔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1991년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장군봉에서 멧돼지 두 마리를 만나다

 

이젠 장군봉으로 간다. 천제단에서 멀지 않은 장군봉 가는 길은 철쭉군락지다. 봄이면 이 능선에는 꽃불이 환하겠다. 장군봉에 도착(12:45)한다. 장군봉 돌탑 위에서 엎드려 절하는 사람도 보인다. 장군봉 정상 주변을 둘러보다가 멧돼지 두 마리를 발견, 메마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나무 색깔과 똑 같은 색깔의 멧돼지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을 남편이 먼저 발견하고 내게 다가와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옆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멧돼지를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저만치 숲에 있는 멧돼지더러 ‘이리와~’하며 손짓한다. 제법 높은 산, 깊은 산속을 등반할 때면 멧돼지가 파놓은 구덩이들을 발견하곤 했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막연하게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일까. 산객들 그 누구도 멧돼지를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이 많을 때니까 다행이지,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멧돼지를 만났다면 나는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 태백산 정상을 가까이 두고 올라오던 길 옆, 탐방로 밖 눈 덮인 숲에 사람발자국 아닌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멧돼지 발자국이었던 것 같다. 잠시 후 멧돼지 두 마리는 숲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산행하면서 멧돼지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겨울 산에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이라도 있을까봐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것일까.

 

눈 덮인 길 따라 문수봉으로

 

저 멀리 문수봉이 조망된다. 능선 길 따라 쭉 가다보면 문수봉에 닿을 것 같다. 처음엔 곧바로 내려가려고 생각했지만 문수봉을 가 보기로 한다. 다시 천제단(1시)쪽으로 가서 간식을 먹고 난 뒤, 올라왔던 길을 버리고 반대편인 문수봉 가는 길로 접어든다. 1시 15분이다. 오늘 내내 눈 덮인 하얀 등산로를 걷는다. 이곳은 그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것 같다. 길은 좁고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길도 더러 만난다. 햇살은 계속 길 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조용하고 호젓한 등산로를 타고 멀리 멀리 조망되는 문수봉을 이따금 올려다보며 등산로를 걷는다. 문수봉 가는 길에 자작나무숲은 하얗게 펼쳐진 길로 계속 이어진다. 2시, 문수봉, 석탄박물관, 당골갈림길 앞에 선다. 계속 문수봉을 고집한다. 참 많이 걷는다. 뒤에는 우리가 올랐던 태백산 정상, 천제단과 장군봉이 멀리 조망된다. 문수봉 가는 길에 주목이 군락을 이룬 곳이 보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태백산에는 모두 2,800여 그루가 있다고 한다. 태백산 주목군락지는 우리나라의 주목 서식지 중에 가장 큰 곳이라 한다. 산의 정상인 천제단을 중심으로 유일사에서 올라오는 능선 중간과 문수봉으로 가는 중간에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문수봉에 도착(2:20), 문수봉은 바위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고 작은 높은 돌탑들이 쌓여 있다.

 

문수봉에서 태백산정상과 우리가 걸어온 능선 길, 그리고 먼 산들이 조망된다. 바람이 많이 닿는다. 2시 33분, 소문수봉, 석탄박물관 갈림길을 만난다. 이젠 석탄박물관 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하산 길은 돌계단길이다. 눈 쌓인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한참동안 내려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는 길인 듯 하다. 가끔 가다가 마주 오는 산객은 인적 없는 깊은 산길에서 참 반갑다. 당골광장 가까이 오자 편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3시 30분, 당골광장 도착, 산행을 마쳤다. 태백산은 아주 웅장하고 장엄해 보이지만 실제로 산에 들면 육산이라 산행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눈이 펑펑 왔더라면 하얀 눈꽃핀 숲과 함께 더 좋은 산행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실컷 하얗게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던 산행이라 좋았다. 태백산은 봄이면 철쭉, 여름이면 울창한 수목, 가을엔 단풍, 겨울에는 눈꽃과 설경 등 언제나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당골광장 근처 태백석탄박물관에 잠시 들린다. 태백석탄 박물관은 한국 석탄산업의 변천사와 석탄생성의 과정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동양최대의 석탄 전문 박물관이다. 돌의 신비, 돌의 오묘함, 이름도 종류도 많은 돌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경이로움으로 보는 시간이었다.

 

2009년 기축년 첫날 1월 1일에는 민족의 영산 태백산과 도립공원 당골광장에서 2009명분의 한우떡국 나눠먹기 등, 태백산해맞이 축제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산행수첩

 

1.일시: 2008년 12월 26일(금)

2.산행기점: 당골 매표소

3.산행시간: 6시간 25분

4.진행: 태백산 도립공원 제3주차장(9:05)-당골매표소(9:25)-당골광장(870미터, 9:30:영하 -9도)-문수봉.천제단 갈림길(10:40)(=당골3교)-반재(1,200미터,11:05)-만경사.천제단 갈림길(11:00)-만경사(11:55)-단종비각(12:15)-천제단(1,560미터,12:25)-장군봉(1,567미터, 12:45)-천제단(1:00)-점심후 하산(1:15)-문수봉. 당골 갈림길(2:00)-문수봉(1,517미터, 3:30)-당골광장((3:30)(=석탄 박물관 관람)

 

특징:①태백산 도립공원 야영장: 식수. 화장실 있음(얼어붙어 안나옴)

②당골광장-당골3교:평탄하고 완만한 넓은 등산로

③당골3교-반재 위: 급경사 큰 길 등산

④반재:쉼터 의자 있음

⑤만경사: 식수(약수터 있음), 조망드러나기 시작

⑥천제단(1,560미터):조망탁월, 문수봉 등 조망 탁월

⑦태백산도립공원 입장료:2,000원, 석탄박물관:무료

⑧훼미리보석사우나: 목욕 5,000원, 찜질방이용시 1,000원 추가, 저녁8시부터 찜질방 8,000원.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태백산 민박촌이 야영장 옆에 있음

 

주의: 아이젠 필수, 겨울장갑 개, 양말 2켤레, 옷, 모자, 목도리나 마스크 등 철저히 준비할 것.

 


태그:#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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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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