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늦은 시각, 방학일지라도 복학생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다.
▲ 남들 잘 시간이지만 늦은 시각, 방학일지라도 복학생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다.
ⓒ 김정욱

관련사진보기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2008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예비역'과 '복학생'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2008년 나는 두 종류의 삶을 살았다. 두 달은 군인으로, 나머지 열 달은 복학생의 신분으로 올 한 해를 보냈다. 흔히 '칼 복학생'으로 일컫는 2월 군번으로 전역, 약 20여일 만에 감쪽같이 '군인'에서 '04학번 대학생'으로 변신했다. 

새 학기를 앞둔 20여 일 동안 나는 얼마나 설렜던가. 입대 전 엉망인 학점 덕분에 기숙사 재입사가 불허돼 겨울 칼바람 맞아가며 자취방을 구할 때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수강신청 때 재수강 목록을 체크하며 자신감도 가졌다. 

그렇다고 마냥 들떠있기엔 자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었다. 대부분의 복학생들이 그렇듯 나 또한 '스펙'에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서울 소재 모 영어학원의 토익 주말반을 수강했다. 친구 소개로 영어로만 말해야한다는 스터디에 가서 한 마디 못하고 멀뚱히 앉아있다 오기도 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조금은 가셨기 때문이다. 전역의 설렘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오묘하게 뒤섞인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났다.

복학 1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악전고투'

08학번 신입생이 올 겨울 방학을 토익과 한자 공부로 보내려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 리플엔 군대를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 08학번의 질문 08학번 신입생이 올 겨울 방학을 토익과 한자 공부로 보내려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 리플엔 군대를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 김정욱

관련사진보기


뭐든 이뤄낼 것만 같았던 내 복학 첫 학기는 매우 어설프고 서툴렀다. "복학 첫 학기엔 학점 4.0 넘겨야 되는 거 알지?"라는 선배의 충고를 실현하기엔 의외의 벽이 많았다.

따라가기 힘들었던 전공 수업과 새로 올라간 낯선 교내 신축 건물, '뭥미' 같은 내가 모르는 인터넷 신조어를 깔깔대며 주고받는 긴 머리 후배들 사이로 까까머리인 내가 서 있을 곳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가장 놀랐던 것은 학내 분위기 변화였다.

"방학 때 토익은 해야겠고, 자격증도 따고 싶은데 뭐 하지?"
"야, 토익은 유효기간 2년이라 군대 갔다와서 학원 몇 개월 빡세게 다니면 금방 한대."
"그런가, 유효기간 없는 자격증을 일단 따두면 편하겠네."
"난 봉사활동 경력 쌓으려고 알아보고 있어. 게시판 보니까 공고 많이 떴던데."

07·08학번 후배들은 일찍이 스펙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현실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수업 하나하나 소화하기도 버거웠던 내게 벌써 여름방학 계획을 짜는 후배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중간고사를 치른 뒤엔 교내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토익 스터디를 시작해 하루에 100개씩 영단어를 외웠다. 스터디 멤버 네 명 중 두 명은 복학생이었고 두 명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1학년이었다. 1학년인 A군은 카투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일찍부터 준비하는 모습이 부러워 칭찬하자 A군은 "요즘에 제 동기들 다들 스터디하고, 자격증 준비 다 하는데요? 또 재수강상한제 때문에 학점관리도 미리미리 해야 돼요"라고 말해 복학생 두 명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복학생 학번들이 '집단전투'세대였다면, 이들은 '각개전투'세대였다.

군대까지 갔다왔는데 마냥 집에 손 벌릴 수 없다는 생각에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과외 시장에서 여자대학생 선생님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 갓 전역한 내가 낄 자리는 무척 좁았다. 어렵게 가르치게 된 고1 여학생. 그것도 두 달 만에 잘렸다. 학생 어머니는 "애가 남자 선생님이라고 영 불편해하네요"라고 했다.

뭐 하나 시원시원하게 잘 풀리는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기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학교에서 보내는 취업설명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억지로라도 달려가지 않으면 뒤쳐질 것만 같았다.

현재와 미래, 모든 상황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또한 나의 복학과 더불어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졸속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연일 거리에는 촛불이 타올랐다. '경제 대통령'에 걸었던 국민적 기대가 곤두박질쳤던 것과 같이,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도 점점 줄어들었다. 

학점도 목표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에게 거리낌없이 질문하고 스스럼없이 찾아가는 후배들과 달리 혼자 앉아 끙끙댔기 때문일까.

또 가끔씩 밀려오는 회의감과 '내가 정말 잘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강박에 조금씩 지쳐갔던 나는, 결국 복학 2학기 만에 학교 내 학생상담센터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진행되는 개인 상담은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불안했던 2008년, 새해엔 '소의 걸음'과 같이...

복학생에게 방학은 없다.
 복학생에게 방학은 없다.
ⓒ 김정욱

관련사진보기


숨가쁘게 10개월이 지났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복학생이 그리 느꼈을 성 싶다. 매년 군 필 복학생은 약 23만 명. 이제는 복학생이 군복무로 인한 사회적 격리로 촌스럽고 어수룩한 아저씨에서 오히려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멋을 낼 줄 하는 '멋쟁이'라고 표현되는가 하면, 올 2008년 여름에 촛불집회 때 예비역 군복을 입고 나와 시민의 '지킴이'로서 박수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평범한 복학생에게는 정신적인 고난의 연속인 해였다. 2년 만에 돌아온 학교의 차갑고 냉정한 '학점 및 스펙 중시' 분위기와 더 똑똑해진 후배들 사이에서의 외로움이란. 당당히 꿈을 이룬 선배들만 조명해 주는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한 도서관을 향한 발걸음이 무거웠다.

촛불로 뜨겁던 여름에는, 10대가 거리로 나설 때 20대 대학생들의 소극적 사회참여 자세를 질타하며 '지성인으로서의 본분' 운운하던 언론을 보며 가슴 찔렸던 복학생은 나뿐일까.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기엔 마음 찝찝할 일들이 연일 터지고 있는데 과연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것일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더구나 9월로 접어들자 전대미문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더욱 더 높아진 취업 문턱 등 걱정거리가 하나둘 늘어난다. 이제껏 나를 비롯한 복학생들을 자극해왔던 불안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다. 새해에 복학하는 23만 명의 마음은 어떨까.

나의 복학생 동기들에게 고한다. 3월 복학생들에겐 이젠 1년 해봤으니 좀 더 노련하게 2009년을 헤쳐 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9월 복학생들은 아마 정신없는 한 학기를 보냈을 터인데, 어깨 힘 좀 빼고 주위를 둘러보면 학점과 스펙 이외의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작년 한 해 불안 덕택에 치열하게 살았다면, 올해는 좀 더 넓은 시야와 대담한 가슴으로 함께 이 불황을 이겨냈으면 한다. 2009 기축년, '소의 우직함'이 복학생과 어울리지 않겠는가.


태그:#복학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