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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역사>
▲ 표지 <시장의 역사>
ⓒ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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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머니는 돈이 될 만한건 모조리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개울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아다 팔았고, 씨 뿌려 키운 감자, 오이, 호박, 마늘, 참깨, 들깨, 옥수수도 팔았다. 씨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달래, 냉이, 고들빼기, 산나물 등을 캐고 뜯어다 팔았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식들 학교 보내고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의 육신은 늘 고달팠다. 부지런하기로만 따지면 기네스북에 이름 석 자 올릴 정도였고, 억척스럽기로 따지면 난다 긴다 하는 남정네도 울고 갈 정도였다. 하지만 늘 가난이 따라다녔다. 그렇게 억척스런 노력에 비해 수입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모진 고생 덕에 지금은 허리가 굽어 화장실도 간신히 다니는 어머니의 삶은 온전하게 시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난한 삶을 지탱하고 버틸 수 있게 해준 원천이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진열하는 창, 시장의 과거와 현재

어머니는 시장에 갈 때 “저자 보러 간다”거나 “장 보러 간다”고 했다. 저자는 시장의 옛말로 백제 가요인 정읍사에도 등장하는 말이다. 저자, 장, 장시 등으로 불리던 말이 시장이란 용어로 바뀌기 시작하는 게 19세기 말 개항 이후부터였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판다는 점에서 시장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의 풍경, 상품, 그리고 상인과 그곳을 찾는 소비자는 늘 다른 모습이다. 시장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생성, 발전, 소멸을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역사 속에는 그 시절, 그곳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시장은 시대와 사람들의 생활이 진열되어 있는 창이며, 그 시대 경제와 생활문화의 꽃을 피우는 삶의 현장이다.

먼 옛날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대부분 직접 생산해서 사용했다. 짚신도 만들고, 직접 실을 뽑아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전문적으로 짚신을 만들고 옷감을 짠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발달했다. 가족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던 농사에서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농사로 전환하면서 시장은 더욱 발달했다.

개항 후 외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외국 상인에게 개방되면서 국내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석유와 성냥이 들어오고 짚신 대신 고무신과 운동화가 등장했다.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개화인이 아니라는 말이 나돌던 시대가 되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놀림과 비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가 급격하게 추진되면서 유통시장이 개방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등장했고, 상거래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시장에는 대형 할인점이 등장해 유통업계의 총아로 급부상했고, 편의점이 기존의 구멍가게를 밀어내고 도심 골목골목까지 스며들었다. 또한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해 21세기 한국의 시장을 풍미하고 있다.

시장 속에서 발굴한 역사

시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더 빨리 더 많이 팔기 위해 눈속임과 편법이 등장한다. 권모술수가 동원되고 국가 권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더 빨리 더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서울의 서문에 큰 시장이 있다. 이곳은 가짜 물건을 파는 자들의 소굴이다. 가짜로 말하면 백동을 가리켜 은이라 주장하고, 염소 뿔을 두고 거북 껍질이라고 우기며, 개가죽을 가지고 담비 모피라고 꾸민다. … 소매치기도 그 사이에 끼어 있다. 남의 자루나 전대에 무엇이 든 것 같으면 예리한 칼로 째어 빼간다. 소매치기를 당한 줄 알고 쫓아가면 요리조리 식혜 파는 골목으로 달아난다. 꼬불꼬불 좁은 골목이다. 거의 따라가 잡을라치면 대광주리를 짊어진 놈이 불쑥 “광주리 사려” 하고 뛰어나와 길을 막아버려 더 쫓지를 못하고 간다. (책 속에서)

미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조미료 <아지모도> 광고, 1938년 1월 13일 동아일보
▲ 광고 미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조미료 <아지모도> 광고, 1938년 1월 13일 동아일보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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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이후에는 광고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속였다.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사용하고 대일본제국 궁내부에서 사용하는 맥주, 맥주를 마시지 않는 자는 개화인이 아니라고 유혹했고, 이 안약을 쓰면 어둡던 눈도 다시 밝아지고, 더 이상 눈이 늙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며 사람들을 속였다.

시장이 발달하고 새로운 물건이 산더미처럼 생산 판매되는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절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고 백화점에 쇼윈도가 등장하고 커피숍과 극장이 늘어났다.

그런 변화에만 주목해서 식민지 시기에도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구도 늘고, 각종 편리함을 주는 물질문명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걸 내세우면서. 하지만 그 이면을 들추어보면 그 변화와 발전의 수혜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식민지 서울의 변화는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청계천 남쪽 남촌에 집중된 변화였고,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북촌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일본인들의 급격한 증가로 서울 인구는 증가하고 있었고, 화려한 쇼윈도, 최첨단 유행상품, 세련된 상품 진열장을 갖춘 백화점은 일본인 고객과 친일 조선인 상류층들이 주로 이용했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 백화점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에 불과했다.

일제 시기도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가진 힘과 돈을 이용해 일제 시기도 나름 살만했노라고 교과서도 고치고, 역사도 고치려 한다. 과연 그랬는지 식민지 시장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임신 7개월 된 이옥순은 생활이 빈곤하여 동시장에서 과물상을 하는 친한 사람에게 가서 과물을 팔고 나면 과물상자에 남는 겨를 얻어갔다. 금 11일에도 전일과 같이 그 겨를 얻으러 갔었으나, 과물이 경매되지 아니한 까닭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양배추 껍데기 버린 것을 주워가지고 과물상점 앞으로 오자 일본인 누마타 신조는 약 2허 가량 되는 곤봉으로 불문곡직하고 무수히 난타한 것이다. 상처로는 피가 흐르고 양편 다리에서도 피가 흐르며 허리에는 먹장 같은 상처가 나되, 오히려 그치지 않고 난타를 계속했다. (책 속에서)

일제 시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은 수도 없었지만, 시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도 무수히 많았다. 일본인 상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총독부 권력을 등에 업고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하게 지속됐다.

시장,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

시장은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이다. 등 푸른 생선이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것처럼 물건을 사이에 두고 사고파는 이들의 고성이 오가고, 거친 숨결이 느껴지고, 신 살구 같은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역사가 있다. 그 생생한 시장의 역사가 한 권의 책에 소개되었다. 전통시대부터 현대까지 이 땅에 존재했던 시장의 역사와, 시장에서 거래된 상품과 상거래 풍속, 다양한 상인들이 활동했던 시장 풍경이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펼쳐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은숙/역사비평사/2008.11/19,800원



시장의 역사 - 교양으로 읽는 시장과 상인의 변천사

박은숙 지음, 역사비평사(2008)


태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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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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