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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파이프와 나무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배밭을 아내가 걷고 있다.
▲ 해체 작업 한창인 배나무밭 해체된 파이프와 나무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배밭을 아내가 걷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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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온 세월이 이렇게 바쁜 것은 도시에서의 월급쟁이 생활이나 농부의 삶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시골로 가서 살아 보겠다고 도시의 짐들을 꾸려 이곳 경북 상주하고도 화령이라는 시골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의 귀농은 과연 어떤 삶이었는가? 농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진정한 농부는 어떤 사람인가? 과연 내가 원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복잡한 두뇌활동일 뿐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또 인간대로의 살아가는 마당이 있기에 오늘도 나의 머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움직이고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집과 땅의 변화

올해 포도농사 1200평을 얼추 마무리하고 나니 집과 전토에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왔다. 농촌의 삶이란 것이 늘 한 해 단위로 계획을 잡고 이에 맞추어 살아나가는 것인데, 임대한 포도밭과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을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각기의 주인들이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졸지에 집과 밭을 사거나 아니면 포기해야 할 상황이 닥친 것이다.

갑작스런 삶의 환경변화에 내심 당황(?)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당초의 귀농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집과 땅은 빌려서 2년 정도 살아보고 3년차부터 나에게 적합한 맞춤형 귀농을 하겠다고 늘 구상해오던 터라 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터를 잡고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설 것인가?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인터넷으로 시골 땅을 검색하면서 다른 면소재지 땅과 멀리 타시, 군의 외진 곳까지도 발품을 팔고 다녔다. 값이 싸다 싶으면 골짜기요,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땅, 집 짓고 살기엔 너무 큰 땅, 턱없이 비싼 땅, 이러기를 한 달여, 인터넷 검색도 지쳤고 집을 빨리 팔려는 집주인의 가격 제안에 나와 아내는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 할 판이었다.

"그냥 여기서 터 잡고 살아?"
"좀더 알아보고 결정하자, 아직 시간 있잖아."

포근한 느낌에 그 곳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땅구입을 추진하던 늦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날. 나와 아내는 동네 보건소 물리치료실에서 뜨끈한 치료를 받고 집으로 가다가 나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일전에 한 번 본적이 있던 건너 마을 산골 땅이나 한 번 더 보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마을 끝에서도 약 1km 떨어진 저수지 위에 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는, 그야말로 호젓한 산골이었다. 그 집 아래 천 평 가까운 묵은 배 밭을 둘러보니, 주변이 단풍 물든 낮은 산으로 포근하게 둘러싸이고, 올라오는 쪽으로 저수지가 내려 보이는 풍경에 우리 부부는 참으로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아내에게 전격적으로 제안했다.

"여기 어때? 괜찮지? 우리 여기서 집짓고 평생 살자."
"응, 좋은데… 기분도 편안하고…."

그날 이후 그 땅이 내 땅이 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따리 싸서 시골로 귀농한 지 2년, 드디어 작지만 농사도 짓고 집지을 내 땅을 장만한 것이다. 장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시골 와서 자연이 좋고 공기가 좋고, 밤하늘의 별이 총총하니 그렇게 시골이 좋다던 사람들도 2년 정도 지나면 경제적 어려움과 부적응 등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내 땅 마련과 집짓기는 귀농 2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정착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었다.

집 지을 꿈으로 행복한 노동에 젖다

내년엔 이 땅에서 집도 짓고 포도도 심고 귀농 3년차 꿈을 이루리~
▲ 정리 작업이 거의 끝난 배나무밭 내년엔 이 땅에서 집도 짓고 포도도 심고 귀농 3년차 꿈을 이루리~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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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농한기라고 하는 시점에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일에 파묻혀 살아야 했다. 천 평 가까운 배나무 밭을 정리해야 하는데, 쇠파이프 해체부터 절단 작업, 배나무 절단 작업, 운반 등 부부 둘이서 하기엔 족히 두 달은 걸려야 될 것 같았다.

겨울 내내 하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나와 아내는 아침 되면 새 터전이 될 땅으로 출근했다. 다행히 같은 교회의 일꾼들이 하루 날 잡아 파이프 해체를 지원해준 덕에 일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작업은 더디었지만 하는 일의 양 만큼 땅의 모습이 드러나는 재미에 힘든 줄을 몰랐다. 게다가 절단한 파이프는 내년에 심을 포도 지주대로 쓰고, 나무는 땔감으로 차곡차곡 쌓이니 경제적으로도 일거양득이었다.

이래서 사람에겐 미래가 있고 희망과 꿈이 있어야 하나 보다. 마을 주민들은 추운 겨울에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고 한마디씩 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행복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수천 평, 수만 평의 땅을 소유한 이들이 볼 때 손바닥 같은 면적일 수도 있지만 소박한 삶을 살고자 내려온 우리에게 천 평의 땅은 만평의 크기와 같은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펜이나 잡고 머리만 쓰던 도시 샌님에게 집짓기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지는 겪어봐야 알겠지만 평생에 자기 집을 직접 짓는 복을 갖는 이들이 1%도 안된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곧추 세워 본다.

집만 짓는다고 시골살이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 둘씩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는 나의 삶, 그 자체가 행복한 인생의 주춧돌임을 되새겨 본다.


태그:#귀농, #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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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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