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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로 만든 꽃을 헌책방 문간에 붙인 헌책방 집 따님이자 일꾼은, 꽃냄새와 함께 책냄새를 우리 몸과 마음에 고이 담아 놓을 수 있으면 즐겁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살포시 우리들한테 건네어 줍니다.
▲ 꽃과 책 무늬로 만든 꽃을 헌책방 문간에 붙인 헌책방 집 따님이자 일꾼은, 꽃냄새와 함께 책냄새를 우리 몸과 마음에 고이 담아 놓을 수 있으면 즐겁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살포시 우리들한테 건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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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내 사진 2 : 나는 내 사진을 보며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서 웃기도 하며, 슬퍼서 울기도 한다. 참으로 중요한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초점이 어긋나거나 흔들렸을 때 화가 난다. 이름난 다른 사진작가 작품을 보고 난 뒤 얼핏설핏 영향을 받아 어설피 따라 찍은 사진이 나왔을 때 화를 낸다.

내 사진에 담긴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묻어날 때 기쁘기도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을 받아든 헌책방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빙그레 웃을 때 훨씬 기쁘다.

내 사진에 담긴 헌책방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사진’일 때 슬프다. 어느 누구도 이들 헌책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헤아려 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슬프며, 내가 좀더 사진을 잘 찍고 이름도 팔고 헌책방 문화를 두루 알려서 이런저런 곳들 삶과 발자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저 숱한 모래알 가운데 하나로 사라져 버리고 말 모습들임을 느낄 때에도 슬프다. 한삶을 바쳐 수만, 아니 수십만, 아니 수백만, 아니 수천만에 이르는 책을 다루고 만지고 새 임자를 찾아 준 헌책방 일꾼 땀내와 손때가 한낱 흘러간 옛날이야기처럼 퍼지는 세상 흐름을 돌려놓지 못할 때에 슬프다. 이럴 때 내가 찍은 헌책방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주룩주룩.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헌책방 일꾼 책상에 오래도록 서 있던 산타 인형. 예수님나신날을 앞두고 생각해 보니, 우리한테 선물을 안긴다고 하는 산타는 어느 하루만 선물을 안기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선물을 안기는 분입니다. 여느 때에 늘 착하게 살면 늘 하늘과 땅한테서 선물을 받는 삶을 꾸리게 됩니다. 좋은 책을 잘 찾아서 읽으면 좋은 마음을 선물로 받고, 좋은 사진을 부지런히 찍으면 좋은 느낌을 선물로 받습니다.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 산타 인형과 책 헌책방 일꾼 책상에 오래도록 서 있던 산타 인형. 예수님나신날을 앞두고 생각해 보니, 우리한테 선물을 안긴다고 하는 산타는 어느 하루만 선물을 안기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선물을 안기는 분입니다. 여느 때에 늘 착하게 살면 늘 하늘과 땅한테서 선물을 받는 삶을 꾸리게 됩니다. 좋은 책을 잘 찾아서 읽으면 좋은 마음을 선물로 받고, 좋은 사진을 부지런히 찍으면 좋은 느낌을 선물로 받습니다.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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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고마움 : 고마운 사람들. 자기가 만만치 않은 값을 치르고 산 소중한 책을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는 사람들.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는 수수한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보여주면서 사진 한 장에 담겨 주는 사람들. 그분들 앞에 엎드려 절을 한다.

비알진 언덕받이 골목인, 인천 동구 송림6동 32번지 둘레에는 ‘계단 텃밭’이 있습니다. 살림집이 그리 넓지도 않으면서 이 빈터로 집을 넓히면 되었으련만, 집을 굳이 더 넓히지 않고 빈터를 남겨서 텃밭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빈자리 남기던 골목 문화는 아파트 문명에 죄 밀려나면서, 도심지 어디에서도 ‘돈 안 쓰고 다리쉼하면서 세상을 돌아볼’ 자리는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 계단 텃밭과 아파트 비알진 언덕받이 골목인, 인천 동구 송림6동 32번지 둘레에는 ‘계단 텃밭’이 있습니다. 살림집이 그리 넓지도 않으면서 이 빈터로 집을 넓히면 되었으련만, 집을 굳이 더 넓히지 않고 빈터를 남겨서 텃밭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빈자리 남기던 골목 문화는 아파트 문명에 죄 밀려나면서, 도심지 어디에서도 ‘돈 안 쓰고 다리쉼하면서 세상을 돌아볼’ 자리는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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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좋은 사진기 : 같은 필름을 넣어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대상을 찍으면, 값비싼 사진기 질감이 한결 낫습니다. 제가 찍는 대상을 누군가 아주 좋은 장비를 써서 비슷한 자리에서 찍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값비싼 장비를 써서 사진을 찍고프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괜히 목돈을 마련해 좋은 사진기를 사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뭐, 사진기 회사는 라이카만 있지 않고, 니콘만 있지 않으며, 캐논만 있지 않아요. 마미야만 있지 않고 핫셀만 있지 않아요. 미놀타도 있고 브로니카도 있습니다. 펜탁스와 후지도 있고 콘탁스와 올림푸스도 있어요. 한 회사에서 내놓는 기계와 렌즈도 참 갖가지이며 필름 가짓수도 아주 많아요. 요새는 적잖은 사진기 회사와 필름 회사가 문을 닫고 말았지만.

추운 날씨에 밖에다 빨래를 널면 얼어붙을 텐데, 하는 걱정이 들지만, 골목집 사람들은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골목길에 걸쳐 놓은 빨래줄에 빨래를 줄줄이 걸어 놓습니다. 골목길 빨래가 잘 마르는 날은 사진찍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 골목집과 빨래 추운 날씨에 밖에다 빨래를 널면 얼어붙을 텐데, 하는 걱정이 들지만, 골목집 사람들은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골목길에 걸쳐 놓은 빨래줄에 빨래를 줄줄이 걸어 놓습니다. 골목길 빨래가 잘 마르는 날은 사진찍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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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사진을 찍으며 : 사진을 찍으며 ‘잘 찍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한테 보여지고 느껴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으며, 그렇게 찍혀진 대상한테도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마음쓸 뿐이다.

[189] 자전거를 못 타게 되면서 : 무릎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자전거를 쉬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쉬며 두 다리로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다니는데,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골목길 모습을 구석구석 사진으로 담게 됩니다. 처음에는 뻘쭘해서 힘들었던 ‘동네사람 찍기’도 나날이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뭘 찍어요?’ 하면, ‘네, 동네 찍어요. 저는 요 앞에 배다리에 살거든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거의 모두 ‘아, 그래요.’ 합니다. 한 동네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으니 도둑사진을 찍을 일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찍을 뿐입니다. 제가 담는 동네사람 모습은, 바로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되고, 제가 찍는 동네 골목길 모습은, 바로 제가 살아가는 집과 삶터 모습이 됩니다.

사진을 찍는 곳은 자기 삶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감은 자기 삶터에서 얻고, 사진 찍는 무대는 자기 무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 사진을 찍는 상업사진가는 연예인과 늘 어울리고 부대끼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살아야 하고, 골목길 사진을 찍는 저는 골목집에서 살며 골목이웃과 어울리고 부대끼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살아야 합니다.
▲ 사진을 찍는 곳 사진을 찍는 곳은 자기 삶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감은 자기 삶터에서 얻고, 사진 찍는 무대는 자기 무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 사진을 찍는 상업사진가는 연예인과 늘 어울리고 부대끼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살아야 하고, 골목길 사진을 찍는 저는 골목집에서 살며 골목이웃과 어울리고 부대끼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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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아직 내 사진이 모자라기 때문에 2 : 내 사진이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고 느끼기 때문에, 늘 수많은 사진책을 보고 읽으며 고개숙여 배우려 합니다. 저보다 앞서 사진을 찍던 분들, 제 뒤에 사진을 배워 찍는 분들한테도 무릎꿇고 배우려 합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며, 네모난 구멍으로 바라다보는 눈, 필름에 감겨드는 빛, 필름에 아로새겨진 모습과 자리와 곳, 필름 한 장 두 장이 모여 서른여섯 장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엮어내는 이야기, 어느 하나를 보아도 저 스스로 제 모습에서 흐뭇하게 여길 만한 대목이 없습니다. 다들 모자라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낯부끄러움을 느끼며 찍던 사진을 요즈음 들어 통 헌책방 나들이를 할 틈이 없어서 못 찍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이러다 그동안 애써 쌓아온 자그마한 탑마저 허물어지지 않겠느냐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는데 이마저도 흔들리지 않겠느냐고, 더욱이 옆지기 된 사람한테 사진을 놓고 한 소리를 듣고 나니 한껏 풀이 꺾입니다.

히유, 사진이 뭔데. 사진 찍는 일이 뭔데. 나는 지금까지 무슨 사진을 왜 어떻게 찍어 왔을까.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별빛 보이지 않는 옥상에 올라 동네 골목집 지붕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나한테 보이는 모습을,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대로 담을 뿐 아니냐고. 나 스스로 마음에 차지 않거나, 내 둘레 사람들이 보며 못마땅해 하는 사진이라면, 찍는 내 마음이 즐겁지 못했거나 찍히는 사람(이나 대상)이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고.

백일이 지난 아기는, 무언가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나 아빠가 하는 일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어합니다. 무릎에 앉히어 함께 있으면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쳐다봅니다.
▲ 아기와 엄마 백일이 지난 아기는, 무언가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나 아빠가 하는 일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어합니다. 무릎에 앉히어 함께 있으면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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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여러 장 찍기 : 헌책방 사진을 찍어 온 열 해 동안, 한 가지 모습은 필름 한 장에만 담았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딱 한 장씩만. 얼마 앞서는 비를 맞으며 찻길에 무릎 꿇고 앉아서 헌책방 안쪽을 들여다보며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열 장쯤, 아니 열다섯 장쯤 찍었습니다. 딱 한 장만 찍을 때 ‘바로 이 사진이야’ 하고 나오도록 하려는 마음은 없었고, 한 가지 모습을 한 장에만 담자고, 필름값 마련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여러 장 찍어서 가장 나은 사진을 찾으려 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그러나 그때는 마음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한 장에 한 가지 모습을 담는 일도 나쁘지 않지만, 자리를 살짝만 바꾸어서 찍어도, 초점을 조금씩 다른 데 맞추며 찍어도, ‘헌책방 일꾼과 책손 모두 오래오래 만나고 함께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192]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3 : 손수 가꾸는 것이 없이, 돈으로 사고팔고 쓰고 버리기만 하는 도시 문물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을 만한 곳이 없지 않을까.

저한테 풍경사진이란, 제가 살아가는 곳을 꾸밈없이 느낄 수 있도록 담아낸 사진입니다. 사진에 사람이 보여도 풍경이고, 사람이 안 보여도 풍경입니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이 더 나은 사진이 아니지만,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야 더 나은 사진이지도 않습니다. 사람 냄새와 자취와 맛과 목소리가 저절로 배이도록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많이 모자라기에, 날마다 조금씩 땀을 흘리면서 새로워지고자 애씁니다.
▲ 내 풍경사진 저한테 풍경사진이란, 제가 살아가는 곳을 꾸밈없이 느낄 수 있도록 담아낸 사진입니다. 사진에 사람이 보여도 풍경이고, 사람이 안 보여도 풍경입니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이 더 나은 사진이 아니지만,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야 더 나은 사진이지도 않습니다. 사람 냄새와 자취와 맛과 목소리가 저절로 배이도록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많이 모자라기에, 날마다 조금씩 땀을 흘리면서 새로워지고자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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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사진, #사진말, #사진기, #사진가,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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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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