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매년 이맘 때면 언론에서는 '올해의 책'을 발표하곤 한다. 그 책들은 대부분 독자들이 아는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베스트셀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오히려 그런 기회에 '좋은' 책이지만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알릴 수는 없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겸, 독자들은 모르지만 올해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선정해봤다. 기준은 간단하다. 우리의 생각을, 그리고 삶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좋다? 제대로나 읽어라

 

첫 번째 책은 일본 순문학의 기수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장송> <일식>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인데 이번 책에서는 일갈을 하고 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뼛속까지 완전하게 빨아들여라!"라고.

 

요즘은 뭐든지 "빨리 빨리"가 강조되는 시대다. 책을 읽는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독이 우선시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읽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들이 등장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슬로 리딩을 강조하는 <책을 읽는 방법>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왜일까. 100권을 빨리 읽는 것보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끌린다. 왜 그런 것인가? 요즘 같은 때에 속독을 하면 유리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에서 속독의 단점을 몇 가지 이야기하는데,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작품 읽는 사례를 다양하게 언급하면서 지독(遲讀)한 독서법을 설파하는데 건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며칠 전에 읽은 책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속독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해결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들을 위로하면서 제대로 된 책 읽는 방법을 말하는 <책 읽는 방법>, 그 무게감은 확실히 묵직하다.

 

지역언론들이여, 살려면 튀어라

 

주목해야 할 책은 또 있다.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이다. 강준만은 '내부식민지' 이론을 언급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은 내부 식민지라고 못 박는다.

 

자극적인 말이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큰 것에 대한 심각성은 누구나 알기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강준만은 기어코 놀라게 만든다. 이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으로 지방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 이 문제를 어떻게 깰 수 있는가? '서울 탓'만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홍보 효과를 노려 튀는 사업을 구상하거나 지역 언론을 활용해 변화의 틀을 마련하라고 말한다.

 

현재 주요 언론들은 사실상 서울 중심으로 보도하는데 강준만은 그것을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깨기 위해 튀어야 한다고 말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강준만이 책에서 언급하는 예를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지역 언론을 활용하는 것은 어떤가. 강준만은 지역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민원 처리 등의 특수한 기능을 해서 지역민들과 소통한다면, 또한 지역의 종교단체나 봉사단체 등과 연대해 자원봉사에 놀이의 개념을 더한 '볼런테인먼트' 활동 등을 추진한다면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강준만은 다양한 방법을 언급하는데 확실히 그 모습은 파격적이다. 지방 문제 하면 서울 탓을 하는 것이 으레 당연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지방은 식민지다>가 전하는 말들은 가능성이 있는 만큼, 또한 희망을 위한 것인 만큼 경청해야 할 말임에 분명하다. 모두가 포기하던 어느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는 <지방은 식민지다>는 기억해야 할 책이 분명하다.

 

30대 주부들의 일상, 판타지는 없다

 

소설 중에서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도 기억해야 할 책이다. 영국의 가상 베드타운 알링턴파크에 사는 30대 주부들의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제목만 보면 '칙릿' 계열의 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몇 장 넘기지 않다보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칙릿의 환상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줄리엣은 어려서부터 남들의 주목을 받았던 소녀였다. 커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하는 일은 알링턴파크에서 문학반을 지도하는 정도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못한 그녀는 답답하다. 답답하지만 뭘 어찌할 수 없다. 이 마을에 사는 메이지도 그렇다. 메이지는 이곳에 오면 잘 될 것 같았지만 현재 만족스럽지가 않다. 가사 때문일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집안을 정리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에 지친 것일까?

 

알링턴파크에서 가장 비싼 곳에 살고 싶어 했던 어맨다, 그녀도 마차가지다. 꿈을 이루었지만 즐겁지가 않다. 하루 종일 청소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늘이 모인다.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의 여자들은 불만에 차 있다. 왜 그런 것인가? 그녀들 잘못일까? 아니면 남편과 세상의 잘못인가?

 

소설을 보면 그녀들이 안쓰러워 혀를 찰지 모른다. 하지만 더 안쓰러운 사실은 그녀들의 모습이 단지 소설 속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의 모습은 낯선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안정을 이뤄도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행복이라고는 단지 남과 비교할 때 잠시 느끼는 만족감이 전부인 오늘날의 사람들을 닮았다. 그러니 누가 그녀들을 향해 혀를 찰 수 있겠는가.

 

스타벅스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멋진 애인도 없다. 나오는 건 '현실'뿐이다. 그래서인가. 읽기에 불편할지 모르지만 이 소설이 빛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거짓 희망으로 만족감을 주는 칙릿과 다르게 소설로서 현실을 마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칙릿' 계열의 소설이 인기를 얻던 것에 비하면 이 소설의 등장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고 그만큼 기억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책을 읽는 방법>과 <지방은 식민지다> 그리고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대중에게 잘 보이려고 한 책이 아니기에,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기에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했다. 그로 인해 더 알려지지 못한 것은 당연했던 일. 이 자리를 빌어 이 책들의 진가가 조금이나마 더 알려지기를 바란다.

 

[최근 주요기사]
☞ [인터뷰] "수능결시 징계 안 하면서 일제고사 징계?"
☞ [동영상] 김정욱 서울대 교수의 요절복통 대운하 특강
☞ [패러디-'도움상회'] "빨갱이들 설쳐대니까 정말 힘드시죠?"
☞ 공익제보자도 10년 이하 징역?
☞ [엄지뉴스] 얼큰한 칼국수, 요즘 날씨엔 딱!
☞ [E노트] 현직 경찰관 "촛불시위는 소수자 저항운동"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문학동네(2008)


태그:#올해의 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