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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방학을 맞았습니다. 이번 방학만큼은 아이들이 좀더 자유롭게 풀려나 삶의 지평을 넓혀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방학은 그동안 학교생활에 매였던 답답함에서 벗어나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챙겨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삶의 지평을 넓히는 방학이 되어야

 

그렇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더 바빠지는 것 같습니다. 평소 학교 수업보다 한층 더 빠듯하게 짜여진 학원과외로 내몰립니다. 몸을 가눌 겨를이 없습니다. 거의 다 방학은 했지만 생색내기일 뿐이고, 이른 아침부터 까만 밤까지 강행군 한답니다. 여타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요. 방학을 한다고 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왠지 알아요. 방학 때면 평소 학교 다닐 때보다 해야 할 게 더 많아요. 벌써 예비중학반에 다니는 것은 물론, 반편성 배치고사 문제집을 세 권이나 풀어야 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읽어야 할 책은 스무 권도 넘어요. 짜증이 나요."  

 

"나는 엄마아빠가 일 나가시기 때문에 방학 때면 동생을 돌봐야 해요. 같이 놀아 주면 되지만 점심이나 간식도 챙겨주어야 하고, 집안 청소와 설거지 빨래 땜에 무척 힘들어요. 저녁도 자주 내가 지어야 해요. 엄마아빠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난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저는 달라요. 방학만 하면 부산 큰아버지 댁에 놀러가요. 언제나 그랬거든요. 거기서 설날까지 있을 거예요. 큰아버지 댁은 바로 도서관 곁이어서 겨울방학 독서교실에 다녀요. 난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방학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요. 부산은 널따란 바다가 있어 좋아요."

 

농촌지역이라 아이들 사는 형편이 고르지 못합니다. 학원과외나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집안에 붙박혀 그냥그냥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방학이 싫습니다.

 

더구나 긴긴 겨울방학을 난방도 제대로 안된 집안에서 보내야 하는 것은 여간한 고역이 아닙니다. 저소득층 생계보호가정의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창녕은 조그만 소읍인데도 아침저녁 학원차량들로 붐빕니다. 중·고등학생들 못지않게 초등학생들도 학원으로 내몰립니다. 숫제 한 학기 동안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믿지 못한다는 듯이 학원 가방을 매지 않는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큽니다. 그런데 삼사십대 부모들은 과거 악전고투하며 공부했던 것을 자식들한테 대물림하려 듭니다.

 

학원과외 보내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것 같아

 

방학 동안 아이들을 학원과외에 보내지 않으면 다른 집 아이들에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하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좀더 나은 직장을 얻고, 편하게 산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교육의 근본 목적이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는 것일진대, 과열교육에 몸서리쳤던 부모세대조차 암울한 우리 교육의 병폐를 달리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방학을 맞아 우리 반 아이들한테는 의례적인 과제를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루에 책 한 권 읽고 독후감 한 편 쓰는 것과, 날마다 신문 사설 한 꼭지를 훑어보도록 했습니다. 그밖에 수련캠프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친척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하며, 문화유적을 답사하도록 안내했을 따름입니다.

 

"얘들아, 우리 이번 겨울방학만큼은 매일 책 한 권을 읽지 않고서는 잠을 자지 말자.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나부터 반드시 실천할 테니까 우리 함께 지켜내도록 하자. 어때? 할 수 있겠지? 다른 것은 안 해도 좋아. 오직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책 한 권은 읽자. 그게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방학이다."

  

 

오늘 방학을 맞으면서 아이들에게 한 부탁입니다. 아이들은 뻔하게 작심삼일할 일이지만 그래도 목청 돋워가며 '예, 예' 하며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믿어봐야겠습니다. 근데 평소 경험으로 봐서 예닐곱 정도를 제외하고는 쇠귀에 경 읽는 소리였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책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나 오락에는 그렇게 심취하면서도 말에요. 그래도 또 아이들을 믿어봅니다.

 

"그리고 얘들아, 이번 방학은 초등학교를 마감하는 방학이다. 그러니 이번 방학만큼은 여행도 가 보고 유적지나 철새도래지 같은 곳을 찾아보자. 낯선 곳을 찾아가면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결 넓어진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둘레만한 하늘밖에 보지 못하지. 친척집이라도 좋으니 낯선 곳으로 떠나봐."

      

낯선 곳을 찾아나서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줄 겁니다. 산자락 싱그러운 이파리를 다 떨어뜨린 나무들이지만, 겨우내 눈밭에서 만나는 정감은 또 다를 것입니다. 자연과 친화 교감하는 일은 계절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 심성을 닦고, 바른 그릇이 되게 하는 깨우침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 힘닿는 대로 애쓸 것이라 믿습니다.

 

의례적인 방학과제를 내지 않아야

 

아이들 방학 중에 학원과외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선수학습일 따름이어서 그 효과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물론 방학 동안 새 학기 학습을 준비한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학습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웠던 게 되레 전체 학습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자칫 주의가 산만하거나 학습을 등한시하는 하는 편입니다. 단지 요령만 깨우친 것 같아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더딥니다. 애써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형국입니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큽니다. 그게 제 소신입니다. 애써 교과서 한 쪽,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보다 자유롭게 놓여나서 스스로 생각을 밝히는 힘을 기르는 게 장차 아이들에게 더 큰 여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을 따르는 판박이 앵무새로 길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면 적어도 방학만큼은 아이들이 실컷 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전 신문스크랩을 해볼 거예요. NIE에 관심이 많거든요."

"난 디카와 캠코더 촬영법을 배우고, 카페도 새롭게 만들 거예요."

"저는 선생님 말씀처럼 매일 창녕도서관에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이번 방학에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요. 엄마도 그걸 원해요. 제가 문장력이 좀 있잖아요?"

"몸이 약한 저는 날마다 줄넘기를 300회 이상하고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 거예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어요. 건강한 친구들이 부러워요. 때문에 저한테는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어요."   

 

무엇보다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부추겨야 합니다. 독서독후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러 체험활동도 적극 권장해야 합니다. 홈스테이나 생태체험, 전통문화나 악기를 체득하는 것은 물론, 유적답사나 친지방문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컴퓨터 오락이나 인터넷을 통한 건전한 네티켓을 가질 수 있도록 다독여야 합니다.

 

방학만큼은 아이들 제 하고픈 대로 풀어놓으세요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하게 하는 바탕은 조그만 보살핌에 있습니다.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마다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이해와 배려를 얹어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더불어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아이들을 오직 공부에만 파묻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모아주어야 합니다. 아이들 방학만큼은 제 하고픈 대로 풀어놓으세요. 힘드시겠지만 말예요.


태그:#겨울방학, #여행, #체험활동,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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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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