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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겨울을 따스하게 보듬는 비인가 봅니다. 메마른 성탄절이 아니라 사랑이 촉촉하게 밴 성탄절을 만들기 위한 전주곡처럼 보입니다. 하얀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아련한 달콤함을 안겨주려나 봅니다. 이러다 느닷없이 하얀 세상이 자고 일어나면 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과 더 양심적인 세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덜 준비된 사람은 언제나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하얀 성탄절을 정말 티 하나라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하얗게 비워야 합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사랑이 무엇을 의미한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최소한의 노력이 없다면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가 아닙니다.

한겨레 신문 1면에 나와 있는 '아스팔트 수업은 따뜻했네'라는 기사를 보고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교사의 양심과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랑 때문에 마음과 몸에 커다란 상처를 받은 선생님에게 같은 교사로서 죄스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마음은 있어도 내 자식에게 우리 학생에게는 양심적인 선생님처럼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 이명박 정부는 나쁩니다.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도 힘 부족할 텐데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전리품을 챙기듯 자리를 챙기고, 10년 전 비민주적인 통치를 되찾아내는 그들의 멍청한 기억들이 참으로 밉습니다. 정확히 20년 전에 1500여명의 선생님들을 교단에서 몰아낼 때도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해직교사의 선배인 교장이라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위선을 앞세워 후배교사들을 매몰차게 대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같은 교무실에서 같은 학생에게 같은 사랑과 교육을 역설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오뉴월 단술 변하듯 180도로 변한 것입니다. 밥그릇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은 되지만 내 밥그릇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밥그릇도 소중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에게 수업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물론 교장이라는 자리에 목숨을 걸고 교직생활을 해온 사람들에게 수업은 출세의 수단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로지 아이들과 수업을 위해 교직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에게 수업은 교사 그 자체입니다. 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직에 들어설 때 난 나의 생활이 곧 교육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나의 생활이 곧 교육은커녕 아주 나쁜 수업의 사례가 된 것은 아닌지 뒤가 엄청 켕깁니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당하게 선해 보이는 행동으로 나를 합리하고, 적당하게 정의롭게 행동하면서 나를 양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번에 해직된 7명의 선생님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그래서 괴롭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한 교실에 두 명의 선생님이 들어서야 하는 교육현장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나 똑같은 현실이 참담합니다. 가수 신해철이 MBC <100분토론 >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어떤 향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전두환의 모습이지 박정희의 모습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두환이나 박정희이나 똑같은 독재자이지만 우리의 느낌은 바로 그 때 그 시절입니다. 비상식적인 부당한 징계가 교사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현실은 바로 유신시절이나 5공화국 군사독재시절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직교사들이 겪는 고통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후진적인 의식으로 회귀한 이명박 정부의 어리석음에 더욱 화가 납니다.

선생님과 수업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렇게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징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추행을 하고 뇌물을 받고 폭력을 행사한 교사들은 가볍게 징계를 하고, 아이들을 온몸으로 사랑한 선생님은 파면과 해임을 시키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습니까? 

제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식과 양심이 통하지 않는 학교와 교육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없습니다. 처세술이나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성공술(成功術) 밖에 없습니다.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고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서울대 많이 입학시켰다고 상금을 주는 교육청이니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정말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부조리나 비상식이 비일비재한 곳이 바로 교육현장입니다. 결국 상처받고 피해를 입는 사람은 바로 학생들입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정말 불쌍할 따름입니다.

이제 학생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백년을 기약하려면 이런 얄팍한 술수나 정치적인 수단은 안 됩니다. 양심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나 교육은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더 인간답고 올바른 인간성을 갖춘 사회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른 들이 더 인간적이어야 하고 더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태그:#부당징계, #일제고사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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