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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곳곳에 불법·허위 구인광고물이 널려있다.
▲ 불법구인광고물 지하철 곳곳에 불법·허위 구인광고물이 널려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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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파다 구조조정이다 직장 다니시기 힘드시죠? 이제 저희 ○○주식회사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월 300만원을 보장해 드립니다.'

최근 인기 있는 코미디 프로의 유행어가 아니다. 한 달 수 백만원의 고소득과 정년폐지, 실버타운의 혜택, 게다가 자녀 학자금은 덤이라는 직장이 있다.

서울 지하철을 타면 언제나 출입문 광고 틀에 낀 작은 명함들이 눈에 띈다. 광고지들은 하나같이 "주 5일, 하루 7시간 근무", "월 300이상 보장", "간부로 모십니다" 등 직장인들도 당장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좋은 조건이 넘친다. 그러나 이런 달콤한 단어 뒤에는 '검은 손길'이 숨어 있기 마련.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7호선을 돌며 수십 장의 광고지를 수거했다. 이중 물품 판매 광고지와 중복업체 등을 빼고 다섯 곳의 회사를 골라 직접 전화를 걸었다.

면접 장소와 주소까지 같지만 다른 회사?

전화 통화에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중년의 남·여가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받은 이들은 자신을 대표나 본부장 등 간부로 소개했다. 일반 회사의 경우 교환을 거쳐야 통화가 가능한 직위의 사람들이 외부 전화를 직접 받았던 것이다. 또 구직자에 대한 연락처와 나이 등 개인 신상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정도 정보는 어느 회사든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뿌린 광고지에는 공무원·장교·교육계 명퇴자 우대라는 문구가 있다. 모든 광고물에 35세 이상이라는 나이제한도 있어 넓은 인맥이 형성된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한 점은 전화를 건 다섯 회사 중 세 곳의 면접 장소가 같았고 심지어 회사 사무실의 주소까지 같았다. 기자는 A사 대표라는 사람에게 "A사 면접장소가 방금 통화한 B사 면접장소와 같다"며 동일 회사가 아닌지 물었지만 그는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구인전단을 보고 실제 회사를 찾았다 낭패를 봤다는 피해자를 만났다. 서울 신대방동의 정아무개(37)씨는 지하철 광고물을 보고 찾아간 회사가 다단계 업체인 것을 알고 뛰쳐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사무직이라고 일단 이력서만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갔더니 엉뚱한 물건 이야기만 해서 그냥 나온 적이 있어요. 시간도 아깝고 차비도 아깝고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정신적 피해에서 그친 정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감정뿐만 아니라 금전적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서울 구로동에 사는 손아무개(45·여)씨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회사에서 입사를 위해 반드시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는 말에 400여 만원에 달하는 건강식품을 구입했다. 이후 손씨는 입사를 포기하고 환불을 요청했지만 돈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구직자가 직접 신고하거나 민원을 제기해야

손씨와 같은 사례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손씨의 경우처럼 입사를 미끼로 물품을 구입한 경우는 소비자단체도 피해구제를 할 수 없다. 한국소비자원 홍보팀 윤혜성씨는 "입사를 목적으로 구입한 제품에 대해서는 최종소비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노동부 허위구인광고 담당 권혁정 사무관은 "허위 구인광고의 경우 구직자가 직접 피해를 신고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면 조사 후 경찰에 고발조치 할 수 있다"며 "다만 허위 광고인지는 직접 정확한 사례를 확인해야 결정할 수 있다"면서 "각 지방 센터별로 허위 구인광고에 대해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부 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일선에서 근무하는 담당직원들은 각 센터마다 담당자가 한 명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무료신문 위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지하철 같은 현장에 매번 나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허위 구인업체의 광고는 물품강매 등의 1차적 피해보다 구직자의 이력서를 이용한 추가 피해가 광범위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9월 경기도 수원에서는 구직자들의 개인정보로 중고차를 구입한 후 되파는 범죄가 발생했으며, 이력서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거래되는 등의 사건도 있어 허위 구인업체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극적 단속과 구직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상태다.

한편, 허위 구인광고지와 '전쟁' 중인 도시철도공사 차량지원팀의 이희섭씨는 "차량 회차 시 2~3명 정도가 상주하며 불법전단을 수거하고 있지만 워낙 배포하는 사람이 많고, 청소 후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다시 광고지를 뿌리는 등의 방법을 써 제거가 쉽지 않다"라며 "허위 구인광고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허위구인광고,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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