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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국경(Svilengrad-Ormeni)에 이르는 불가리아 쪽 도로가 엉망이었다. 혹시 이 지역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있었나? 도로라고 할 수 없을 지경으로 폭격을 맞은 듯 온통 크고 작은 구멍으로 파헤쳐졌다.

 

이런 상태로 방치해두는 당국도 대단하지만 아랑곳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트럭운전사들이 더 존경스러웠다. 하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여행자 신분으로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외면하고 그리스 동북부 가장 끄트머리의 외진 국경을 택했으니.

 

평균 시속 15km로 국경을 넘자 이제 도로 표지판이 문제였다. 왜 지금껏 몰랐을까. 그리스 문자는 영어나 독일어 등 유럽 여러 나라 언어와는 알파벳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 뜻은 물론 읽을 수조차 없으니, 표지의 지명이 아테네인지 이스탄불인지 그야말로 눈 뜨고 장님이었다. 

 

알파벳 대조표를 보며 목적지를 그리스문자로 하나하나 적어두고 ‘휙휙’ 지나가는 표지판과 맞춰보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낯선 지명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반대 방식으로 알파벳 대조표와 비교해야 했다.

 

신경이 곤두서다 결국에는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지도에 없는 마을들만 나타나더니 방향 감각까지 잃어버렸다. 그래서 찾아든 마을이 페트로타(Petrotá)였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나. 하루 밤 묵어갈 요량으로 마을을 둘러보는데 뜻밖에도 폐교가 하나 있었다.

 

“여기도 시골엔 아이들이 없나?”

 

아내의 추측과 달리 아이 두 명이 언제 나타났는지 호기심어린 눈빛을 하고는 우리 부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왔다. 아내가 아이들을 불렀다.

 

“안녕, 우린 코리아에서 온 여행자야. 들어봤니? 코리아?”

 

아이들이 안다는 듯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내는 손짓 몸짓을 보태어 아이들에게 오늘밤 잠자리를 알아본다. 

 

“학교 운동장에 차를 대고 하룻밤 신세질까 하는데, 어때? 문 닫은 학교 같은데, 괜찮겠지?”

 

두 아이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다가 이내 좀 전보다도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밤에 다시 놀러오라 하고는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아마 생선깡통조림에서 매콤한 냄새가 흘러나올 즈음이었을 것이다. 별안간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경찰 두 명이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들 누굽니까?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아, 네, 저기… 길을 잃었는데… 폐교인 줄 알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지금 아이들이 수상한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신고해서 온 겁니다!”

“네? 그럴 리가?”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빗나간 모양이다. 경찰은 식사를 마치고 광장 앞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내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던 그리스 땅에서 경찰서 신세라도 지게 되려나? 광장은 유럽 어느 도시가 다 그렇듯이 예뻤다. 한 쪽에 식료품점이 보이고 그 옆 카페에서 노인들이 커피를 마셨다. 다른 쪽으로 마을회관 같은 건물이 있었고 그 끝에 경찰서가 있었다.

 

“여기 광장에다 주차하고 잠을 자세요. 지켜 드리죠.”

 

지켜주려는 것인지 감시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다행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곳 사람들은 다가오진 않고 광장 멀찍이서 서성거리며 두 이방인을 훔쳐보기만 했다. 쑥스러워서 라기 보다는 이방인을 경계하는 느낌.

 

평소라면 아내가 먼저 ‘하이, 호호호호’하며 다가설 텐데 그날은 그녀나 나 역시 피곤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덜컹거리며 차를 타서 그런지, 이마에 열도 있고 으스스한 것이 감기가 오려는 모양이었다. 곱게 굽은 마을길을 산책하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 빗방울이 굵어지고 어둠이 내렸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광장에는 우리 애마만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창문에 습기가 차오르고 음악은 흐느적거렸다. 아내와 난 서로 말이 없다. 비가 내리는 이런 밤에 이국 땅 낯선 마을에서 차 안에 갇혀 앉아있는 일은 굳이 김광석의 음악이 아니더라고 서글프다. 우린 왜 떠나왔을까. 그리고 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왜, 무엇이 그리도 그리웠을까.

 

다음날 아침 눈 뜨니 온 몸에 열이 났다. 드디어 ‘그 분’이 찾아오신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감기가 들어 약을 지어먹었는데도 오히려 더 열이 오르고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가려움증에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되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 내과를 거쳐서 찾아간 피부과에서 내린 병명이 ‘감기약 알레르기’였다. 세상에. 그런 병도 있을 수 있다니.

 

감기약을 먹는다고 반드시 병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감기를 이기지 못해 약을 복용하면 괜찮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그 이상한 병에 걸려 홍역을 앓곤 했었다. 결국 대학3학년 때에 다시 한 번 호되게 고생한 후 감기약을 딱 끊어버렸다.

 

그 후로 일 년에 한 두 번꼴로 찾아오는 감기는 내게 질긴 병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으니, 그저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며 이겨내야만 했다.

 

결혼 후로는 아내가 생강이니 무즙, 파뿌리니 하며 감기에 좋다는 것들로 차를 만들어 내었지만, 결국 그것들도 내 몸이 감기바이러스와 싸울 태세를 갖추게 도울 뿐, 기침으로 시작해 투명한 콧물로 흐르다 누렇게 변해 주변에 휴지로 쌓이다가 결국에는 코 주변이 벌겋게 헐어버릴 때까지의 그 한 ‘사이클’을 다 지나야만 감기는 물러가고는 했다. 

 

세월이 쌓이면서 감기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졌다.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심스레 살펴본다. 왜 찾아왔는지, 며칠이나 머물다 가려는지.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생활 어떤 부분이 어긋나 있으며, 그래서 내 몸이 내게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라고 할까. 이제 감기는 내게 보기 싫고 부담스러운 친구 같은 것이다.

 

이번에는 그리스 땅으로 찾아왔다. 여행 떠나 세 번째다. 인도 우다이푸르에서는 이틀 동안 게스트하우스 천정만 보고 지내야했고, 이스탄불에서는 그 화려한 도시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도 ‘아야소피아’를 단 한 번 둘러보고 비행기를 타야했었다.

 

아마 여행을 떠나본 이라면 알 것이다. 길 위에서 아프면 참 속상하다. 그 때는 도처에 볼거리가 넘쳐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오래 여행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날은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길을 나섰다. 도로는 산을 굽이굽이 돌아 능선을 몇 개나 넘더니만 오후가 되어서 바다를 만났다. 네아 페라모스(Nea Peramos) ‘에게해’다. 이제부터는 도로가 해변을 따라 달려갈 모양이었다. 바닷물이 아주 맑아 보이는 모래사장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나는 차 안에 누웠고, 아내는 바닷가 산책을 나갔다. 1시간 쯤 후. 아내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돌아왔다. 몸보신 할 걸 잡아왔다고 했다. 일어나서 그녀가 내민 플라스틱 물병을 들여다보니 큰 멸치처럼 생긴 물고기가 제법 많이 들었다. 아내는 신이 나 있었다.

 

“내가 맨발로 바닷가를 걷는 중이었어. 근데 모래 위에서 뭐가 번쩍 하는 거야. 얼른 달려가 보니, 바로 요 놈들이잖아. 얼른 주워 담았지. 우리 남편 몸 보양하라고 하늘에서, 아니 바다 속 그리스 신이 내린 선물이니 고맙습니다, 하고.”

 

풋, 아내는 세상 어디에 떨어진다 해도 너끈히 살아갈 사람이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감기와 씨름했던 지난 기억 속에는 언제가 아내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이 은빛 물고기를 통째로 밀가루에 묻혀 튀겼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해산물요리’ 중에 하나였으리. 그리고 나는 다음날 아침 그리스 신들이 베풀어준 물고기 덕분인지, 아니면 아내의 사랑 때문인지 단 하루만에 ‘그 분’과 이별했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아내와 함께 길을 떠나 967일 동안 세계 47개국을 여행한 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책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로 묶어냈습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중고차여행, #그리스, #유럽여행, #에게해, #그리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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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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