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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진보신당 홍보대사로 나선 김부선씨를 '인식'하면서 '당신 같은 배우가 있어 다행입니다'라는 글을 이곳에 썼다. '이름'밖에 몰랐던 그를 여러 자료를 통해 '제대로' 알아가면서 혼자 감동에 겨웠던 그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글 끝에 남긴 아래 다짐도.

 

"누구한테든 '대마초 비범죄화'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공을 길러보겠다는 다짐부터 해본다. 적어도 대마초에 대한 처벌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 대마초가 술, 담배, 때론 커피보다 훨씬 해가 적다는 사실 정도는 일반 사람들이 알게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혼자 한 약속이지만 그때부터 한시도 저 다짐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김부선이란 사람은, 그리고 그가 주창한 대마초 비범죄화는 나한테 '강렬한 충격'이었다. 실천을 위한 첫 단추는 대마초 관련 책 읽기. 내 정보력에 걸린 책은 모두 4권.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정현우씨가 쓴 <대마초는 죄가 없다>였다. 시인이자 화가인 정현우씨는 실제 대마초 때문에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험자가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대마초가 문명, 종교, 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마치 '대마초 개론서'처럼 두루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내내 대마초에 대한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났으니. 새로운 갈증이었다. 무엇보다, "대마는 중독되지 않는다. 누구든 중독된 자 있거든 내게 돌을 던지라." 책 끝머리에서 만난 글쓴이의 간절한 외침은 너무 절절해서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강렬한 충격 준 '대마초 비범죄화'

 

 

다음으로 읽은 책은 한국마약범죄 학술이사 문성호씨가 쓴 <삼과 사람>. 대마초라는 말 대신 '삼'이라는 우리 민족과 친근한 말을 썼다. 이 책은 '삼'이 인류와 함께 해 온 역사와, 그 삼이 죄악시되기까지 세계적으로 정치·경제·문화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폭 넓게 다루고 있다. 책 상권 부제처럼 '대마초의 정치경제학'을 두루 꿸 수 있는 책. 

 

5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류와 벗해 온 '삼'이, 마약이라는 굴레를 얻게 된 시간이 100년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되는 길에 미국의 패권주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땐 '분노'마저 치밀었다. 1937년 미국에서 만든 '마리화나 세금법'이 바로 그 출발점일진데. 대마초가 마약이 된 것조차 미국이 그 원흉이었다니, 정말 미국은 여러모로 몹쓸 나라가 맞다.  

 

하지만 마냥 답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그 패권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으니까. 그 노력은 바로 대마초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다. 대마초 비범죄화는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2004년부터 계속 주창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대마초 비범죄화는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비범죄화란, 당국이 그 사회에서 타인에게 신체적 해악을 끼치지 않는 개인적 행위에 개입하는 권한이나 범위 폭을 줄여나감으로써 신체 보전이나 통일성, 개인의 자기결정권 등의 가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특정 세계관의 바로미터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추진하는 대마초 비범죄화 정책은 이렇다.  

 

'유럽마약정책의 핵심은 마약 사용에 대해 완전히 박멸해야 하는 범죄행위이기보다는 오히려, 개인과 사회 전체로 역효과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가장 잘 처리해야 하는 인간본성의 한 부분으로 다룬다.'

 

거래자는 형법, 사용자는 국민보건법으로 처리하는 프랑스

 

 

특히 마약 문제를 건강과 사회복지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대마초 비범죄화는 마약 거래와 사용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도 중요한데, 마약거래자는 형법으로 처리하되 마약사용자는 국민보건법으로 처리하는 프랑스 사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대마초를 처음으로 합법화한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다른 나라들의 대마초 정책을 짚어 보는 것도 좋겠다.(<삼과 사람>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비범죄화 : 미국 12개주, 덴마크,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단순 흡연자 벌금형(삼 비범죄화에 가까움) :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라오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페루, 우루과이, 브라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의학용 치료제 허용 : 미국 12개주, 캐나다

 

참! <삼과 사람>은 김부선씨 팬 카페 해리부선(cafe.daum.net/heribusun)을 공동저자로 올려도 무리가 없겠다. 실제로 이 책 곳곳에는 해리부선에 있는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고. 글쓴이도 책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삼과 사람>은 다음카페 '해리부선'을 통해 영화배우 김부선씨의 삼 비범죄화 법정투쟁 지원 활동을 해온 분들과 온오프 대화를 통해 토론하며 나름대로 일정한 입장들을 도출해낸 부분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 부분 저자가 이들과 함께 삼 비범죄화 기초를 닦기 위한 집단적 활동과 산물이라는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김부선씨가 힘겹게 치른 법정 투쟁.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학술 자료가 탄생하게끔 이끈 '소중한' 힘이 되었다. 

 

 

대마합법화 운동원들중에 환경보호론자가 많은 이유

 

이제 마지막으로 읽은 책 <대마를 위한 변명> 이야기를 해보련다. 내용이 참 알차고 글 흐름도 경쾌해서 읽는 맛이 좋았다. 시험 앞두고 제일 마지막에 본다는 '총정리 문제집'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특히 대마초를 코카인, 헤로인 같은 마약과 함께 담배, 술, 카페인 같은 기호식품과도 비교 분석한 자료를 많이 담고 있어 일반인한테 대마초가 '마약'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기 위해 참고할 책으로 가장 쓸모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인용한 미국립약물중독연구소(NIDA) 보고서에 따르면 대마초는 니코틴,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 카페인보다 '의존성, 금단성, 내성'이 모두 약하다. '강화성, 독성'도 카페인 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정도. 그러면 대마초를 '마약'이라고 규정한 유엔마약위원회에서는 과연 '마약'을 뭐라고 정의했을까? 

 

'마약은 계속 사용했을 때 그 약물을 구하려는 강한 욕구가 생기고, 약물 사용량을 늘려야 효과가 있으며, 또 연용하게 되면 의존성이 있고, 개인이나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물질이다.'

 

저 말 대로면 유엔마약위원회 스스로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라고 설명해주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NIDA가 엉터리 연구소가 아닌 바에야. '사망자 수'도 그렇다. 1998년 유엔마약위원회 통계를 보면 담배가 1순위, 알코올이 2순위지만 대마초는 단 한 명도 없다. 이쯤 되면 미국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 우리나라 정부가, 검찰이 왜 이 자료들을 참고조차 하지 않는지 그 저의를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마리화나(대마초)는 1960년대 내내 단순한 약물이 아니었다. 마리화나는 권력과 진보세력이 충돌하는 전선의 일각을 점하고 있었으며 권력으로서는 진보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구실로, 진보세력에게는 운동의 상징으로 매김 되었다.'

 

 

책에서 대마초를 진보와 혁명의 상징으로 풀이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들던데.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를 어둠의 자식으로 계속 놓아둘 수밖에 없는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책이 흥미로운 건 대마를 '환경보호'에도 중요한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대마는 펄프 가공이 필요 없고, 해마다 똑같은 크기로 자라기에 생산성이 뛰어난 종이 원료가 될 수 있다. 대마로 만든 섬유는 화학섬유를 대신할 대안 작물이기도 하다니. 서구에서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펼치는 사람 가운데 환경보호론자들이 많은 까닭을 알 것도 같다.

 

의약품으로 대마초가 갖는 '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책에서 밝힌 대마초가 치료할 수 있는 질환들은 천식, 녹내장, 항암치료에 따른 구토와 욕지기, 간질, 폐기종, 편두통…. 참 많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경험으로 치료 효과가 증명된 질병은 훨씬 더 많다고 하니, 미국 12개주와 캐나다에서 의료용 대마초 사용을 허용한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대마초를 혐오하고 적대시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에게 지나치게(?) 적은 비용으로 과한 기쁨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마초와 대마초가 상징하는 삶의 방식은 금욕적 노동에 기초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것이었다. (…)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진보세력들이 대마초를 피우며 보수권력에 대항했던 것도, 대마초가 반전과 평화를 상징하는 풀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권력이 보수적일수록 대마초에 대한 탄압의 정도도 그만큼 혹심해졌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글쓴이가 에필로그에 남긴 이 글은 '마약'이라는 굴레에 억울하게 갇혀 있는 대마초를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 낼 가장 강력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 대마초는 '사람'에게 해롭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해롭기 때문에 마약이 될 수밖에 없던 풀이니까. 

 

옳지 않은 금지에 대한 저항을 계속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이 1976년에 만든 '대마관리법'에 따라 대마초를 금지하고, 마약으로 처벌하는 그릇된 법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금지는 불가피하게 저항을 낳는다. 하물며 '잘못된 금지'에 저항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도. 올바르지 않은 '대마초 금지'에 저항하지 않았다. 2004년, 김부선씨가 그 저항을 실천에 옮기기 전까지는. 비록 그 저항은 김부선씨가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해 판사 9명 전원이 합헌판결로 '기각'시킴으로써 무너지긴 했지만.

 

'옳지 않은 금지'에 대한 저항은 계속돼야 한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십대 때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공공연히 대마초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뜻을 내비친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대 아닌가. 오바마가 당선되자마자 미국 미시건주에서는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가 바로 이뤄졌다고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캐나다 출신 영화배우 파멜라 앤더슨이 오바마에게 '대마초 합법화'를 바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데.
 
늘 미국식 세계화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대마초를 두고는 그 좋아하는 '세계화'에 동참해 볼 마음은 없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4년 전, 아시아 여성 배우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마초금지법 개정운동 전국연합(NORML, 노멀)' 회원으로 가입한 배우 김부선씨가 오바마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는 일이 생기기 전에 말이다.  


태그:#대마초, #마약, #김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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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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