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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쌍의 신혼부부들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26쌍의 신혼부부들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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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입 찢어지겠다.'
'오늘 저녁에 총각 딱지 떼는 겨?'
'죽여줄려다 자칫 죽는 수가 있으니 첫날밤 조심해라.'
'내일모레면 나이 50 되는 놈이 장가는 무슨 장가여?'

까만색 정장에 머리까지 말쑥하게 정리하고 있는 새신랑을 만난 또래의 친구들이 주고받는 인사말입니다. 마흔 아홉이라는 나이니만큼 주고받는 농담들도 음담패설에 가까울 정도로 걸쭉합니다.

축하 인사를 대신해 덥석 잡은 손을 흔들며 건네는 걸쭉한 농담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새신랑 복장을 한 친구 역시 싱글벙글하며 '그래도 나 아직은 40대여, 나이 50이 넘으면 좀 그렇지만 40대에 장가가는 거 흠될 것 없잖아?'하며 너스레를 떱니다.

49살에 총각 딱지 떼는 친구

해가 바뀌는 보름 후면 50대 나이로 접어드는 친구가 늦깎이 결혼식을 한다고 하여 강원도 사북에 있는 강원랜드 호텔에서 15일 낮 12시부터 있었던 ‘다문화가정합동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16년 전에 만나 함께 생활하며 딸까지 낳았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직껏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라이온스가 특별행사로 추진하는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미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 '다문화'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결혼식을 올리는 26명의 신부는 중국·태국 등 외국국적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국적만 다양한 게 아니라 연령대도 다양해 보였습니다.

식장 입장을 앞둔 신부들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식장 입장을 앞둔 신부들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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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가 나란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신부가 나란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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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경에 도착한 강원랜드는 한겨울입니다. 한겨울이니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강원도에서 맞닥뜨리는 바람은 역시 차가왔습니다. 강원랜드 입구부터 다문화가정합동결혼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습니다.

주차를 하고 식장으로 들어서니 식장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고, 일찌감치 도착하였을 신랑신부들은 여기저기서 가족이나 친지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행한 친구들과 오늘의 주인공인 새신랑 26명 중 한 명인 친구 노영삼(49)을 만나 질펀하다 싶을 만큼 찐한 농담으로 인사말을 주고받고 있노라니 신혼부부별로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여느 결혼식 같으면 식의 뒷부분에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양가의 일가친척들이 줄맞춰 서서 단체사진을 찍지만, 무려 26쌍이 동시에 식을 올리게 되니 식후의 혼잡함을 덜기 위하여 준비된 가족에 대해서는 미리 가족사진을 찍는 듯합니다.  

신부 지향자씨와 혼주가 되어준 김수부님이 신부 입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부 지향자씨와 혼주가 되어준 김수부님이 신부 입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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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부부가 식단으로 올랐습니다.
 친구 부부가 식단으로 올랐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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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된 번호대로 호출을 하면 신랑신부와 가족·혼주가 되어준 라이온스 회원이 식단으로 올라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 가족이나 찍었는지는 모르지만 30분 넘게 가족사진 촬영이 이어지더니 신랑과 신부들이 결혼식장인 대연회홀 뒤쪽 복도로 집결합니다. 

26명의 신부 개개인별로 도움을 주고 있던 도우미들이 신부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니 신랑신부 입장이 시작됩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26명의 신랑들이 입장하고 나서 국적이 다양한 신부들이 혼주의 손을 잡고 입장합니다.

한국라이온스 50주년 기념특별행사로 열려

신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혼주들은 신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친정아버지가 아니라 이번 행사를 통하여 맺어진 양아버지들로, 라이온스 회원들이었습니다. 비록 행사를 통하여 맺어진 양아버지와 양딸 관계지만 함께 걷는 차분한 걸음, 신랑에게 양딸을 넘겨주며 건네던 그 당부의 눈빛은 영락없는 친정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늦게 올리는 결혼이니 만큼 더 알콩달콩 하게 잘 살겁니다.
 늦게 올리는 결혼이니 만큼 더 알콩달콩 하게 잘 살겁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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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의 혼인서약에 26명의 신랑이 함께 대답하니 그 넓은 대연회홀이 "네" 하는 소리로 쩌렁쩌렁 울립니다. 신부들 역시 26명이 함께 "네" 하고 대답하니 혼인서약이 이뤄집니다.

대연회홀에는 11명씩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32개 마련되어 있었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식장 옆에 마련된 연찬회 장소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하여 실황 중계되고 있는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는 일가친척들까지 있었으니 식장에는 족히 1000명은 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혼선언문이 낭독됩니다.

주례사에 이은 축사에서 조기승 강원랜드 대표이사는 매년 12월 15일을 이들 부부의 날로 정하여 부부는 물론 2세들까지 함께 참석해 무료로 숙식할 수 있도록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선물합니다. 축사를 통한 선물뿐 아니라 부부가 함께 부부의 정을 쌓으며 포근함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이불을 선물합니다.

신랑신부들이 하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신랑신부들이 하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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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행진합니다.
 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행진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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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양아버지, 신랑의 양장인이 되어준 김수부님 내외와 함께 자리를 하였습니다.
 신부의 양아버지, 신랑의 양장인이 되어준 김수부님 내외와 함께 자리를 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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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예상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이 참가한 탓에 조금 혼잡한 듯했지만 혼잡하고 모자라는 대로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신랑신부가 손을 잡고 나란히 행진을 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친 26쌍의 신혼부부들은 배정된 테이블로 돌아가 가족들과 자리를 함께합니다.

그동안 지켜봐주고, 앞으로도 지켜봐주며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될 가족들이기에 조금은 겸연쩍을 수도 있는 늦은 결혼식이 화사하고 행복한 웃음으로 피어납니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이런저런 형편이나 이유로 여태껏 올리지 못하고 있어 자칫 모든 이의 가슴에 한으로 남을 수도 있었는데, 결혼식을 이렇듯 성대하게 올리게 되니 당사자들은 물론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행복빛깔이 뜨끈합니다.   

어렵게 결혼하고, 어렵게 올린 결혼식이니 국경을 초월하는 사랑과 민족을 뛰어넘는 금실로 늦게 차린 신혼살림 더 진하고 고소하길 갈망해 봅니다. 

늦깎이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이기에 주고받는 인사도 걸쭉한 농담이었습니다.
 늦깎이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이기에 주고받는 인사도 걸쭉한 농담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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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문화가정, #라이온스, #강원랜드, #노영삼, #김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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