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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책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은 게으른 탓이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영화로 상영된다는 소식 에 밀린 조바심 때문이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좋은 것은 예전부터 눈동냥 귀동냥으로 익히 알고 있었던 터이지만, 정작 이 작품을 읽지 못한 탓에 영화 상영 소식은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물론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무엇보다도 책으로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대부분이 소설 보다 못한 탓에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고 마치 그 작품에 대해 다 아는 척 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상영에 따른 이벤트로 5900원으로 책을 살 수 있었던 것도 횡재한 기분이었지만, 무엇보다 주제 사라마구의 섬세한 인간 내면의 묘사가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기에, 부럽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내내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린 아이가 아끼는 사탕을 빨아먹듯 음미하며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눈먼 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비규환의 세계. 그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천벌이자 인류적 소명이고 양심이었다. '눈먼 자들의 세계에서 오로지 혼자 앞을 볼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진 한 여자의 헌신적 희생은, 눈을 뜨고도 아비규환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이 가진 선적인 의지와 희망, 미래를 확신하게 하는 따뜻한 불빛과도 같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멀게 되고, 특별한 계기 없이 다시 눈을 뜨게 된다는 설정에 리얼리티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상상력은 옴짝달싹할 수 없이 갇혀 사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자유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이니까. 오히려 상상력의 빈곤은 주머니에 돈 한 푼도 들어있지 않는 가난뱅이로 전락시킬 뿐이다.

 

  책이나 영화 등 예술의 가치는 '나를 고양시키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온몸이 오물덩어리로 뒤발이 된다 해도 '인간은 고귀한 존재'라는 본질을 끝내 잃지 않게 만드는 용기를 전해주는 주인공 여자를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눈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을 보면서 여자는 자신의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것들, 아니 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리하여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반성하게 하고 좀더 고양된 모습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는 책의 줄거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식으로 숨 가쁘게 따라 가고 있다는 느낌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것이 책과 영화를 다 보았으면서도 '책'만 이야기하는 이유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2002)


태그:#눈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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