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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 봉황문을 불태우고 있는 2008 마지막 단풍
▲ 강원도 홍천 수타사 봉황문 단풍 수타사 봉황문을 불태우고 있는 2008 마지막 단풍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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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절을 옆구리에 낀 단풍은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가 가장 곱고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어깨에 어깨를 걸고 끝없이 이어지는 강원도에서 만나는 단풍은 아,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대로 불꽃으로 타오르고, 그대로 불(佛)이 되어버리는 단풍! 그 단풍에 포옥 빠져드는 절집은 눈에 비치는 그대로 뛰어난 풍경화다.  

강원도를 다스리고 있는 우두머리 산 설악이 슬그머니 놀러왔다가 그 아름다운 비경에 훌쩍훌쩍 울고 갔다는 수타사 계곡. 아스라이 떨어지는 기암절벽과 빼곡한 숲을 거느리고 있는 홍천 수타사. 초겨울, 그곳에 가면 내가 불꽃이 되고 그대가 불(佛)이 되었는지, 내가 불(佛)이 되고 그대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지 마구 헛갈린다.

홍천읍에서 동쪽으로 1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공작산(887m)에서 흘러 내려오는 덕지천 상류가 계곡을 이루고 있는 그곳. 그곳이 강원도 홍천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수타사 계곡이다. 수타사 계곡이란 계곡 안에 수타사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수타사와 수타산 계곡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수타사에서 동면 노천리까지 약 12km에 이르는 수타사 계곡은 널찍널찍한 바위와 큼직큼직한 소(沼), 빼곡한 숲이 한데 어우러져 지상 위 선경이 따로 없다. 단풍이 마지막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초겨울, 그곳 수타사와 수타사 계곡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신선이 된다. 한 가지 흠은 수타사 계곡 들머리에 반듯하게 박아놓은 돌둑이다.

강원도를 다스리고 있는 우두머리 산 설악이 슬그머니 놀러왔다가 그 아름다운 비경에 훌쩍훌쩍 울고 갔다는 수타사 계곡
▲ 수타사 계곡 강원도를 다스리고 있는 우두머리 산 설악이 슬그머니 놀러왔다가 그 아름다운 비경에 훌쩍훌쩍 울고 갔다는 수타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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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그곳에 가면 내가 불꽃이 되고 그대가 불(佛)이 되었는지, 내가 불(佛)이 되고 그대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지 마구 헛갈린다
▲ 수타사 초겨울, 그곳에 가면 내가 불꽃이 되고 그대가 불(佛)이 되었는지, 내가 불(佛)이 되고 그대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지 마구 헛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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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단풍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수타사 계곡

"수타사라~ 혹 이곳에서 수타면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지?"
"여기 수타는 '손으로 때린다'는 수타가 아니라 '목숨이 무너진다', 즉 '속세의 때를 씻는다'라는 뜻을 가진 수타(壽陀)랍니다."
"하여튼 우리나라 말은 잘 새겨 들어야 한다니깐. 아, 시골 계신 부모님이 '바쁜데 뭐 하러 내려오냐?'라고 한다고 해서 정말 시골에 내려가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어."

11월16일(일) 아침 9시. 작가 이종득 첫 장편소설 <길, 그 위에 서서> 출판기념회(15일 오후 5시, 홍천관광호텔 3층)에 갔다가 홍천에서 1박을 한 뒤 일행들과 함께 찾은 수타사 계곡과 수타사. 뭉게구름 둥실 떠 있는 짙푸른 하늘 아래 안개를 내뿜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수타사 계곡과 수타사는 마지막 단풍불을 태우고 있다.

수타사 앞에 놓인 계곡 저만치 시뻘겋게 물든 단풍잎.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불타는 단풍잎을 안간힘을 다해 매달고 있는 단풍나무에서 단풍잎이 툭, 투둑 떨어지고 있다. 마치 수타사 계곡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듯하다. 바닥이 훤히 비치는 맑은 계곡물 위에도 수 천 수만 개의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툭, 투둑 떨어지는 핏빛 단풍잎에 놀랐을까. 등에 까만 줄이 또렷하게 그어져 있는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 잽싸게 수타산 계곡 불타는 단풍숲으로 숨는다. 놀란 것은 다람쥐만이 아니다. 바람이 살짝 불 때마다 우수수 허공으로 날아가는 핏빛 단풍잎에 뭉게구름도 놀란 듯 하얀 볼을 단풍빛으로 물들인다.

단풍불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봉황문을 지나 수타사 안으로 들어선다
▲ 수타사 단풍불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봉황문을 지나 수타사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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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가운데 수타사란 간판을 단 오래 묵어 보이는 기와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 수타사 마당 한가운데 수타사란 간판을 단 오래 묵어 보이는 기와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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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떨어지는 절', 수타사(水墮寺)

저 시뻘건 "단풍빛에 물들어 눈까지 빨개졌다"는 시처럼 아름다운 작가 강기희의 말을 가슴 깊숙이 새기며 수타사 계곡을 지나 수타사로 올라간다. 수타사 들머리에 다다르자 오른 쪽에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짙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담고 있다. 언뜻 연못 곳곳에 삐쭉삐쭉 솟은 마른 대에 매달린 연밥이 마치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수타사(壽陀寺,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9번지)는 공작산(孔雀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 말사이다. 이 절은 서기 708년, 신라 제33대 왕(?∼737)이었던 성덕왕 7년에 처음 세웠으며, 그 이름을 우적산(牛寂山) 일월사(日月寺)라 불렀다. 하지만 누가 어디에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수타사는 서기 1457년, 조선 세조 3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기면서 '물이 떨어지는 절'이라 하여 수타사(水墮寺)라 불렀다. 그 뒤 이 절도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가 서기 1636년, 인조 14년에 공잠(工岑)이 법당을 다시 지었고, 뒤이어 서기 1644년에 학준(學俊)이 선당(禪堂)을 지었다.

1647년에는 계철(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지었고, 1650년 효종 1년에는 도전(道佺)이 정문을 세웠다. 1658년에는 승해(勝海)·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지어 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어 1670년, 현종 11년에는 정지(正持)·정상(正尙)·천읍(天揖)이 대종(大鐘)을 만들어 매달았고, 1674년에는 법륜(法倫)이 천왕문인 봉황문(鳳凰門)을 세웠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단청이 마치 마지막 기운을 뽑아 붉은 빛을 한껏 내뿜으며 말라가고 있는 단풍잎처럼 다가선다
▲ 수타사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단청이 마치 마지막 기운을 뽑아 붉은 빛을 한껏 내뿜으며 말라가고 있는 단풍잎처럼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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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대적광전(강원유형문화재 제17호)
▲ 수타사 대적광전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대적광전(강원유형문화재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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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 곱게 물들이는 단풍빛에 취한 대적광전

"1676년, 숙종 2년에는 여담(汝湛)이 사천왕상을 조성했다. 그 뒤로도 1683년까지 불사가 이어져 청련당(靑蓮堂)·향적전(香積殿)·백련당(白蓮堂)·송월당(送月堂) 등 당우들도 차례로 중건되어 옛 모습이 재현되었다.

1811년, 순조 11년에는 지금의 명칭인 수타사(壽陀寺)로 이름을 바꾸고, 1861년 고종 15년에는 윤치(潤治)가 중수했다. 1878년에는 동선당(東禪堂)과 칠성각을, 1976년에는 심우산방(尋牛山房)을, 1977년에는 삼성각(三聖閣)을, 1992년에는 관음전을 새롭게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단풍불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봉황문을 지나 수타사 안으로 들어선다. 단풍잎이 여기저기 뒹구는 마당 한가운데 수타사란 간판을 단 오래 묵어 보이는 기와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단청이 마치 마지막 기운을 뽑아 붉은 빛을 한껏 내뿜으며 말라가고 있는 단풍잎처럼 다가선다.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대적광전(강원유형문화재 제17호)은 그 뒤에 오도카니 서서 공작산 곳곳을 곱게 물들이고 있는 단풍빛에 한껏 취해 있다. 대적광전 좌우에는 삼성각과 흥회루·심우산방·요사채 등이 스님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듯이 줄지어 엎드려 있다.

수타사에는 그밖에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고려 끝자락에 세운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 홍우당부도(紅藕堂浮屠,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등이 오랜 세월을 물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얼마 전까지 성황당이 이 절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관음전 신축을 위해 철거했다지만 절 안에 성황당이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심우산방 옆에 있는 오래 묵은 주목 한 그루다. 강원도 보호수 제166호로 지정된 이 주목(朱木)은 나이가 5백 살 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주목은 1568년, 이 절을 이곳으로 옮길 때 총감독을 맡았던 노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자라난 것이라 되어 있다.

적광전 좌우에는 삼성각과 흥회루·심우산방·요사채 등이 스님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듯이 줄지어 엎드려 있다
▲ 수타사 적광전 좌우에는 삼성각과 흥회루·심우산방·요사채 등이 스님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듯이 줄지어 엎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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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타사 절 마당을 한 바퀴 회오리바람처럼 휘이 돈다
▲ 수타사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타사 절 마당을 한 바퀴 회오리바람처럼 휘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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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단풍도 불(佛)이요, 삼라만상 모두가 불(佛)이 아니겠는가

"보살님들이 왜 이 나무 앞에서 합장을 한 채 반배를 계속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나요?"
"이 나무에 그 노스님의 얼이 깃들어 있어 귀신이나 잡귀로부터 수타사를 지키고, 수타사를 찾는 처사님이나 보살님들을 보호해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 나무가 곧 부처님이네요. 저 단풍도 불(佛)이요, 삼라만상 모두가 불(佛)이 아니겠습니까?"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타사 절 마당을 한 바퀴 회오리바람처럼 휘이 돈다. 여기저기, 마지막 남은 단풍불을 다 태우고 이미 낙엽이 되어버린 단풍잎들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바삭 바삭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문득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언젠가 우리들 인생도 이 낙엽이 된 단풍잎처럼 부서져 사라지고 말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몹시 쓸쓸해진다. 한동안 수타사 절 마당을 거닐다가 수타산 계곡 쪽에 서서 눈 시리도록 푸르른 초겨울 하늘을 바라본다. 호오~ 호오~ 푸더더덕! 코 앞에 있는 산자락에서 갑자기 장끼 한 마리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뭉개구름을 퍼덕이며 반대 편 산으로 날아가는 장끼가 '끽다거(차나 한 잔 마시게)' '끽다거' 하며 허무 의식에 포옥 빠져드는 길라잡이를 마구 비웃는 것만 같다. 아니, 머리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또렷한 장끼가 갑자기 사천왕으로 변해 길라잡이의 얄팍한 속내를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만 같다.

 저 단풍도 불(佛)이요, 삼라만상 모두가 불(佛)이 아니겠습니까?
▲ 수타사 범종루 저 단풍도 불(佛)이요, 삼라만상 모두가 불(佛)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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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는 단풍빛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는 수타사. 그날, 길라잡이는 수타사 절 마당에 서서 마지막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가는 2008년 가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겨울 속으로 떠나는 가을의 그 쓸쓸한 뒷모습이 남기고 가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도 보았다. 떠나는 가을 끝자락을 바라보면서 새 것을 얻으려면 헌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홍천시외버스터미널-홍천4거리 우회전-44번국도 1.5km-우회전 노천 방면 444번 지방도로 4.4km-수타사 표지판 좌회전 800m-좌회전 400m-삼거리 좌회전 2.6km- 수타사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수타사로 가는 버스(20분)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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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타사 계곡, #수타사, #강원도 홍천,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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