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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이자 이장님, 고층 아파트 건립에 맞서 싸우다

경영대 교수(고려대)이면서도 마을 이장(조치원 신안리)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강수돌 교수. 그가 오래 전부터 지역의 고층 아파트 건립 계획에 맞서 싸워오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왔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이 ‘허위 민원서’로 인해 아파트 건설이 가능한 땅으로 둔갑됐고 계속해서 주민들이 항의를 해왔다는 소식.

이후로 강수돌 교수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궁금했는데, 지난 27일 한겨레신문 칼럼 ‘시골 마을 흉물 아파트, 어찌할 건가’를 통해 최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시멘트 덩어리만 흉물로 남은 채 공사가 중단된 신안리의 고층 아파트 공사 현장.
 시멘트 덩어리만 흉물로 남은 채 공사가 중단된 신안리의 고층 아파트 공사 현장.
ⓒ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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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법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주민 저항과 행정 및 사법의 그물망을 피하면서 사업은 강행되었다. 이제 약 1천 가구, 최고 20층짜리 아파트가 시골 마을에 열두 동 빼곡히 들어섰다. (…) 누가봐도 잘못된 사업이다.

아니나 다를까, 1천 가구 가까운 단지에 분양 실적은 2퍼센트도 안 된다. 언론보도를 보니 16가구가 분양되었으나 타산성이 없어 외부 공사만 하고 공사를 중지한다 한다. (…) 처음 ‘행정수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인근 아파트에 투기 수요가 몰려 분양 경쟁이 10대 1을 넘은 적도 있다. 아마도 그런 걸 기대했을 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게다가 투기 수요는 거품이요 사상누각 아닌가. 이게 터지기 시작한 거다.”

1천 가구나 되는 거대 시멘트 덩어리만 남긴 채 중단된 공사. 전문 운동가도 아닌 풀뿌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펼친 집단행동이 철저히 무시당한 결과물이 결국 그런 휑한 풍경이라니. 사람을 위함이 아닌 돈만을 위한 투기가 만들어낸 흉물 아파트가 주는 씁쓸함이란.

강수돌 교수의 강연, '지역 운동과 생태적 삶’

강수돌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적잖은 의심도 보냈다. 혹시, ‘교수’라는 큰 권위가 담긴 직함으로 그저 ‘명예 이장’정도로만 생색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가 여러 저서를 통해 주장해온 생명경제, 생태적 삶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1인 시위, 행정당국과의 면담 등 이장으로서 고층 아파트 건립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해온 모습을 보며 그의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미 교수라는 충분한 기득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마을 이장으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일까. 최신식 아파트에서 첨단 문명을 누리면서 살 수도 있을텐데 왜 굳이 시골 마을에서 손수 귀틀집을 지어 ‘불편한’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 싶은 마음에, 지난 25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SDS(소셜디자이너스쿨) 2기생들을 대상으로 열렸던 강수돌 교수의 강연에 참석해 그를 직접 만나보았다. 

3년 반이 넘게 지역의 고층 아파트 건립 계획에 맞서 싸워오고 있는 강수돌 교수의 1인 시위.
 3년 반이 넘게 지역의 고층 아파트 건립 계획에 맞서 싸워오고 있는 강수돌 교수의 1인 시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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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의 주제는 ‘지역 운동과 생태적 삶’. 그는 고층 아파트 건립에 맞서 너무 많은 시위를 하느라 제 목소리를 잃었다며 청중에게 작은 사과를 건넨 후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는 출세와 성공의 패러다임, 사다리 질서 속에서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불행하게도 높이 올라간 사람이나 아래쪽에서 헤매는 사람이나 참된 행복을 찾기 힘듭니다.

지금과 같은 패러다임에서는 국민들에게 ‘그동안 경제를 살리느라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국민여러분, 이제 행복합시다’라고 말할 지도자는 없습니다. 또 747을 향해 행복은 끊임없이 뒤로 미뤄질 뿐입니다. 상층 지배자들은 내일 행복하려면 오늘 고생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냈습니다. 늘 내일 타령이지요.

그런데 우리 개개인도 결국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요. 구조가 문제라지만 그에 연류된 우리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대안적 개념이 사다리 질서가 아닌 원탁형 구조입니다. 사다리 질서에서는 상부의 소수가 대부분의 기득권을 독점하지만, 원탁형 구조에서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소질과 소망에 따라 잠재력을 키워내고 그것이 개인 행복과 사회 행복에 기여하는 한 사회적으로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어서 그는 원탁형 구조의 단초를 지역 운동을 통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기후 위기, 고용 위기 등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의 모순이 거칠게 다가올수록 역설적이게도 삶의 근거지 내지 운동의 근거지로서 ‘지역’(community)이 중시됩니다.

저는 기존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산업주의, 팽창주의, 위계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 자신의 외면과 내면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이 바로 ‘생태적 자율공동체’라고 봅니다. 마을이나 지역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은 그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 과정이자 삶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 운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태적 삶을 위한 마음가짐이 중요한데요.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잘못된 생활 방식을 근원적으로 고쳐, 더 적게, 더 느리게, 더 낮게 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원을 적게 쓰며 너무 배불리 먹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 사회적으로는 대안 에너지를 개발하고 대안 에너지의 사용을 촉진하며 유기농 농업, 대안 교육을 의식적으로 장려해야 합니다.

개인들은 그러한 사회 변화가 가능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그렇게 되도록 새로 디자인하고 새롭게 채워나가야 하겠죠. ‘지금 우리는 후손들이 써야 할 지구를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좋은 마을이 가장 좋은 복지 사회다’라는 말처럼 더불어 사는 공동체 마을 이상으로 좋은 사회는 없습니다. 국회,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바랄 것은 많이 없습니다. 주민들이 나서서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지요.

다만 나라 전체적으로 이런 틀은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사다리 질서’ 대신 ‘원탁형 구조’가 가능해지고 서로가 팔꿈치로 밀쳐내는 ‘팔꿈치 사회’가 아닌 ‘상부상조의 사회’가 가능해질 겁니다.”

사다리 질서를 넘어서서 원탁형 질서를 만들어가자는 강수돌 교수의 강연회 현장.
 사다리 질서를 넘어서서 원탁형 질서를 만들어가자는 강수돌 교수의 강연회 현장.
ⓒ 이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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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경쟁, 대량 생산, 대량 폐기의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다리 구조의 사회. 생태적 삶을 위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한 지역운동을 통해 사다리 구조를 넘어서자는 주장. 지금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서로 돕는 원탁구조의 생태적 자율공동체를 구성하여 행복해지자는 주장.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행복한지 불행한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어야만 값어치 있는 삶,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그를 위해 전력투구하라고, 그렇게 끊임없이 매일 매일의 치열한 경쟁 속으로 던져지는 사람들.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강수돌 교수가 외치는 주장이 과연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까.  

강연을 마치며 건넨 그의 마지막 말은, 가슴을 울렸다.

“행복은 은행 이자와 다릅니다. 다음에 이자 붙여 찾을 수 없는 것이 인간 행복이지요. 행복은 반드시 매 순간마다 찾아야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 쯤으로 미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늘 행복은 내일로 미루면 안되지요. 오늘도 행복, 내일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터나 삶터,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에서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마을이 중요해지는 까닭입니다.”


태그:#강수돌, #신안리,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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