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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경화회관에서 열린 '지역발전을 위한 상상력'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막 끝내고 나온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를 26일 오후 4시경 강연장 입구에서 만났다.

 

경남 창녕군은 박 변호사의 고향으로 이번 강연회는 창녕미래포럼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승용차 안에서 박 변호사와 잠시 인터뷰를 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수입 쇠고기에 대해 촛불집회로 문제제기를 했던 국민들을 이명박 정부가 잡아 가두고 인터넷 실명제나 사이버모욕죄 등으로 여론을 막으려는 것은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과 같다"라며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현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촛불시위를 오히려 좋은 교훈으로 삼는다면 앞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금보다 훨씬 나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또 "어떤 미국인으로부터 대한민국은 '서울도시국가'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으로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지방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도권 중심의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이전 노무현 정부에서 지방분권을 강조했던 것은 바른 정책방향이었지만 소프트웨어가 부족해 이것이 착근되지 못했다"라며 "참여정부에서 내세웠던 이런 노력들이 깊이 뿌리박을 수 있도록 이명박 정부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앙정부가 교부금을 매개로 지방에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재정분권이나 재정자립도가 높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변호사는 "어릴 적에 어떤 사람이 집에 와도 사랑방에 재워주고, 거지들이 오더라도 쫓아내지 않고 음식을 나눠먹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나서 자연히 '나눔의 철학'을 보고 터득하게 되었으며, 성인이 된 뒤 이런 정서가 토대가 되어 행복과 물질을 나누면서 사는 행복제작소, 아름다운재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원순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

 

"현 정부, 국민과 소통하는데 실패"

 

- 이명박 정부는 수입 쇠고기 문제로 불거진 촛불집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여론을 막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결과적으로 현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그래서 대통령이 나와 앞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사과까지 했었죠. 근데 그 뒤에 국민들을 억압적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정부가 정책홍보라든가 소통에 중심을 두고 문제를 해결할 일이지, 수입 쇠고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을 잡아 가둔다든가, 인터넷 실명제로 여론을 막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은 말하자면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쳐다 보는 그런 것과 다름없겠지요. 지금이야 정권 초기니까, 서슬이 퍼러니까, 사람들이 숨을 죽일지 모르지만….

 

제가 그 얘기를 했어요. 촛불시위가 사실은 이 정부를 훨씬 좋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정권 초기에 이런 일을 딱 당했으니까, '국민의 소리가 참 중요하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국민을 다룰 것인지 좋은 교훈으로 삼으면 오히려 정부가 시행착오 대신 앞으로 정치를 더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겠지요.

 

물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에 기분 나쁘고 적대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촛불시위가 일어난 본질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참여정부 지방균형발전정책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야"

 

- 오늘 고향인 창녕에도 오셨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지방과 농촌이 소외되고 중앙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토인비가 이야기 한 것처럼 '건강한 변경이 있어야 중심도 건강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공화국입니다. 미국에 갔는데 거기 어떤 미국인이 우리 일행을 보고는 한국은 한마디로 '도시국가'라고 말했습니다. 싱가포르를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를 평가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서울도시국가라는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죠.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근데 우리나라는 서울도시국가가 아니라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많은 지방이 존재하는데 이를 애써 죽이고 있잖아요.

 

지방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살려내고 지방을 골고루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 관점에서 보면 누구도 균형된 지역발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 않겠어요."

 

-참여정부 때는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어떤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정부에서 아직 그런 정책윤곽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지방분권을 강조했던 것은 바른 정책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구체적인 소프트웨어가 못 따라갔고, 행복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만 생각한 거죠. 지방재생을 위해서 노력하고 예산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좋은 프로그램들이 충분하지 않아 이게 착근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참여정부에서 내세웠던 이런 노력들이 정말 뿌리박을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이번 이명박 정부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교부금 매개로 지방 지배하려 해서는 안돼"

 

-지방자치, 지방분권 등 말을 하지만 사실 각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습니다. 재정자립이 없으면 지방분권이라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습니까. 

"지방예산이 굉장히 취약하니까 그런건데,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해요. 중앙정부는 교부금을 매개로 해서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분권이나 재정자립도가 높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해요.

 

예컨대 세원의 일정한 양을 양도하는 식으로 지방재정을 충실하게 해줘야 됩니다. 동시에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에 너무 기대기만 하거나 한탕주의로 대기업 유치에만 안달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강의하신 제목도 '지역발전을 위한 상상력'인데, 지방에서 기업유치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어떤 식의 활동과 정책을 펴야 할까요.

"실제 지방으로 올 수 있는 대기업은 한계가 있잖아요. 일본같은 경우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라 해서 지역의 여러 가지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자산을 활용해서 기업을 창업하게 하고 키우려는 노력들을 확산시키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가능한 노력은 안 하고 나무 위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희망제작소에서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뉴스도 만들어 주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완주군과 함께 '신택리지' 사업이라고 해서 완주군의 모든 지역자산을 다 조사하고 있어요. 아마 내년 초면 그게 윤곽을 드러낼텐데, 이걸 기초로 해서 지역주민들이 사업도 하고 여러가지 일들을 벌일 수 있습니다. 사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뭐가 있는지 충분히 잘 몰라요.

 

강원도 태백에 가면 산간지역에 설피(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겨울철에 신발 위에 신고 다니는 덧신)란 게 있어요. 그게 일종의 스키란 말이죠. 예를 들면 강원도 정선군에 '하이원 리조트'가 있는데 그 구간의 일부에 설피를 신고 눈 위를 걷거나 타는 장소를 만들면 좋은 체험 관광이 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전통적 자산을 활용해서 작지만 끊임없이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야 됩니다. 이런 작은 것들이 합쳐지면 나중에 큰 변화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한꺼번에 만들어 낼려는 욕심이 있지 않나 싶어요."

 

"지역 특색 잘 살리면 이익" 

 

- 고향인 창녕에 우포늪이 있는데 이번 람사르 총회의 주요 개최지였습니다. 우포늪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우포늪의 존재가 고향사람들에게는 생활에 불편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희생도 필요하고 손해도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자랑일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걸 우리가 잘 활용만 하면 관광객 유치라든지 생태마을조성 등 소득의 원천도 될 수 있습니다.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희생도 감수하면서 관심을 더 가지고 우포늪 지키기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활용하면 소득의 원천도 될 수 있고 이익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주변 지역을 특색있는 마을로 만드는 거죠. 생태 마을이나 문화예술이 함께하는 그런 곳으로. 영국이나 외국에는 작은 자원을 가지고도 잘 가꿔서 그게 아주 유명한 마을로 변화된 곳이 흔히 있거든요. 그런 사례들을 연구해서 향토 자원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잘 활용해서 특색있는 마을, 테마마을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테마 마을하면 무슨 개발, 무슨 건설 이런 걸로 알잖아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나 이런 걸로 얼마든지 경쟁력 있는 마을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어릴 적 고향의 추억담은 없습니까. 

"고향의 모든 기억이 다 남아있어요. 어릴 적에  중학교 다녔는데 거리가 왕복 30리는 되었던 것 같아요. 창녕군 장마면 장과리 집에서 언덕을 넘고 하천을 건너서 영산면에 있는 중학교로 향해 계속 길따라 걸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지금 하체가 튼튼해요. 하하. 고시공부할 때 다른 사람들은 픽픽 쓰러졌는데 저는 3~4년을 정말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가지 않았는데도 끄덕 없었어요. 위장에 탈이 난 적도 없고. 근데 이제는 효과가 다 된 것 같네요."

 

- 하하. 말씀이 재미있네요. 지금은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사시는데 어릴 적 농촌에서 생활하며 경험했던 것들이 성장하면서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어릴 적 농촌생활이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만 아니라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아름다운 재단'을 왜 하느냐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촌집에 사람이 찾아오면, 누가 오든지 사랑방에  재워줬어요. 제가 어릴 때는 다 나누며 살았어요. 우리도 가난했지만 거지들이 와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음식을 나눠먹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 '나눔의 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행복제작소, 아름다운재단 활동을 하게 된 거고요. 시골에서 자란 게 저에게 단순히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과 풍요로움을 함께 준 거죠. 근데 지금은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지만 도시의 어느 부자도 길가는 사람에게 밥을 주고 재워주지 않습니다. 나눔의 정신이 사라진 거죠. 이제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박원순,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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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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