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일본 문학가 여러분에게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는데

평양 대동강 강가에서 사진 한 컷 찍고

도쿄 우에노 공원 나무의자에서

잠깐 얘기 나눈 인연으로

이 겨울 문턱에 멀리 도쿄에서

시지 <종소리> 36호를 보내주셨네요.

 

반갑게 시지를 펼치자

구구절절 고향을 그리는

망향(望鄕)의 아픔과

이국에서 보내는 분단 겨레의

한스러운 사연들이 가득 하네요.

 

고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한 곡조 사설이라도 들려주고자

강원도 산골 골짜기까지  

보내셨군요.

 

열여섯 편

다 실을 수는 없고 죄송하게도

두 편만 옮겨 싣습니다.

 

2005. 7. 24.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만난 오향숙 선생과 공지영 작가 사진을 찍은 뒤

오 선생에게는 전할 길이 없어

여태 제 노트북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 기회에 전합니다.

 

사진 값은 조국이 통일 된 뒤

휴전선 평화지대에서 만나는 날 듬뿍 주세요.

 

아무쪼록 피차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 생전에

휴전선 철조망이 걷힌 그 자리에서

만나 한바탕 두둥실 춤을 춥시다.

 

재일본 문학가 여러분,

부디 부디 그리고 또 부디

이국에서 안녕히 계십시오.

 

고국에서 박도 올림

 

 

우리 학교 운동회 날

 

                  정화수

 

가을이 성큼

들어선 오늘은

우리 학교 운동회 날

 

오랜만에

손자손녀들도 볼 수 있지만

많은 반가운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날

 

새로 지은

4층 건물 보이기 전에

우렁찬 확성기소리

먼저 마중해 주네

 

어서 가보자

자택을 지을 돈

학교 건설에 몽땅 바친

내 친구 교육회장

먼저 손잡고 싶네.

 

………………

………………

 

 

 

꽃샘바람

 

            오향숙

 

 

지독스레 추웠던 겨울이었다.

강바람이 으르렁대며 천지를 뒤집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를 흔들어놓았다

하늬바람이 살을 에고

사람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래도 계절은 어기지 않는 법

추운 겨울을 밀어내고

꽁꽁 얼었던 땅이 서서히 녹는다.

이제야 숨을 쉬는 듯, 기를 펴는 듯

엷은 봄빛 속에 실실 입김을 뿜는다.

 

좋구나

해토 무렵 이때가 너무 좋다

땅속에 숨어있던 봄기운이

파아란 움을 틔우고

내 볼을 다정히 쓰다듬어준다.

 

좋구나

몸도 마음도 녹여주는 새봄이 좋다

맵짠 바람보다 훈훈한 바람이 좋고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

동포들과 봄나들이 가는 건 더더욱 좋다

 

하지만 완연한 봄은 저 멀리 있다

기다리는 우리 봄은 아직 멀었구나

아직도 악을 쓰는 몹쓸 놈의 꽃샘바람

언제면 그 질투 그만 할 건가.


태그:#종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