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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힘든 게 아니고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도 기쁘게 운전대를 잡는 그.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손님을 만나러 즐겁게 운전하네요.
▲ 버스 출발하기 전 운전대에 앉은 고창석씨 "일은 힘든 게 아니고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도 기쁘게 운전대를 잡는 그.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손님을 만나러 즐겁게 운전하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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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버스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어요. 고창석(54)씨가 운전하는 603번 버스를 탄 승객들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승객들을 즐겁게 하는지 궁금하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15일, 으스스한 토요일 오후에 603번 버스를 탔습니다.

"가난하고 작은 집에 와주신 손님들 고맙네요. 차를 대접 못하니 음악으로 대접할게요."

다정한 멘트와 함께 <before the rain>, <가을의 속삭임>, 비발디 사계 중 <가을>이 이어서 나오네요. 중간 중간 노래소개와 노래에 따라 알맞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기막히더군요. 정감서린 목소리로 한곡 소개할 때마다 덩달아 듣는 사람들 표정도 한결 풀어지네요.

차가 목동을 지나 한강을 건너 홍대방향으로 들어서자 젊은 손님들이 많아졌지요. 그러자 빅뱅의 <붉은 노을>, 원더걸스의 <nobody> 같은 최신 인기곡을 틀어주더군요. 어느 여학생은 "아저씨, 센스 있어"라며 감탄하고 여기저기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타자, 앉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네요. 출발할 때도 "손잡이 꼭 잡으세요"라는 말을 한 뒤 출발하더군요.

서희진(22)씨는 목동에 살아서 DJ버스를 많이 타봤다고 하네요. "버스기사들은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 분은 지루하지 않게 노래 선정을 하고 참 친절하시다"고 알려주네요. 처음 버스를 탔다는 윤석민(28)씨는 "이런 버스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라고 감탄을 하네요.

이옥진(60)씨는 지하철이 빠르지만 일부러 버스를 탔다고 하네요. DJ버스를 타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아 오늘까지 세 번 탔다고 하시네요.

"저 기사님 만나면 하루가 기분이 좋아요. 버스를 보면 사람들끼리 너무 삭막하고 서로 말도 안 하잖아요. 저렇게 말씀을 재미있게 해주시니까 공감가고 분위기가 좋고 참 편안해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버스DJ 고창석씨와 인터뷰를 했어요. 그는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말을 하더군요. 한바탕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구구절절 배울만한 것들이 많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그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버스는 사무실, 찾아온 손님들에게 음악을 대접"

공부하고 기록해둔 공책들. 틈틈히 다시 보면서 곡들을 소개하는 고창석씨가 진정한 DJ네요.
▲ 고창석씨 보물 공부하고 기록해둔 공책들. 틈틈히 다시 보면서 곡들을 소개하는 고창석씨가 진정한 DJ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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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는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제 노트북 폴더를 보면 클래식, 최신인기곡, 386세대를 위한 70~80년대 곡, 어른들을 위한 트로트, 팝송, 영화음악 등 노래들을 나눠놓았지요. 승객들 연령대를 보고 취향에 따라 틀어줘요. 어쩌다가 띄엄띄엄 우는 아이 있으면 동요도 들려주지요. 나이 있으신 분들 타면 아바 노래 <I have a dream>, <워털루>처럼 향수어린 곡을 내보내요. 타는 사람들 표정과 느낌을 보고 상황에 맞게 노래를 틀어줘요.

저는 제 사무실에 손님이 왔다고 생각해요. 차를 내놓지 못하니 음악으로 대접하겠다는 신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잘 모셔야 하니 시집과 책을 틈틈이 읽어 곁들일 멘트를 준비해야 하고 가수와 노래 소개해야 하니 공부도 하지요. DJ를 어떻게 하는지 많이 참조하고 자료집을 연구합니다. 가까운 책방 자주 들어가 좋은 구절을 기록해둬요. 그런 기록들을 보다보니 기억이 되고 말이 늘어나더라고요." 

- 버스DJ를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손님들이 탈 때 일어서서 인사를 했었어요. 그랬더니 시간이 지나자 입소문이 나고 회사도 승객들도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살다보니 기분 좋은 일은 세 가지더군요. 첫째 음악 듣기, 둘째 자연을 벗 삼아 쉬는 일, 셋째 자기가 좋아하는 일하기, 제가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예전 다방 DJ를 생각하면서 손님들과 데이트한다고 여기고 노래를 틀어줬지요. 신청곡도 자연스럽게 받고.

이 일은 남을 위한 친절이 아니라 제가 기분이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집을 나와 가장 처음 만나고 일끝난 뒤 돌아갈 때 배웅하는 사람이 버스기사에요. 제가 해야 할 도리를 조금만 해도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느끼고 감동받지요. 손님이 탈 때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 진심 담아 인사하면 서로 기분 좋으니까요. 

서울시에서 인사하고 커브돌 때 안내방송 미리 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어요. 기사들이 안 하는 것이죠. 저는 이왕 하는 거 큰 소리로 하자라는 생각으로 해요. 어서 오세요, 반갑게 인사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몰라요. 살아가는 자체가 사랑이기에 사랑을 모르고 살아요. 이 말 멋있네요. 저도 처음 해보는 말이네요."

그는 활짝 웃으며 이 말 까먹는다고 메모지에 자신이 한 말을 적네요. 인터뷰 도중 틈틈이 자신이 한 말을 메모하네요. 그리고 그는 인기가 좋아서 인터뷰 도중에 팬들에게 메시지가 오더군요. 얼마 전 수능 본 학생은 수능 봤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네요. 활기찬 모습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네요.

"DJ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

버스DJ 고창석씨, 그는 승객 모두가 자신을 보고싶어 탄 손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하지요. 그렇기에 승객들은 감동하지요.
▲ "어서오세요. 버스DJ 고창석입니다." 버스DJ 고창석씨, 그는 승객 모두가 자신을 보고싶어 탄 손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하지요. 그렇기에 승객들은 감동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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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운전하는 것만으로 힘들 텐데 언제 DJ를 하는지.
"버스를 운전하다보니 차 막히거나 신호 대기하는 시간이 엄청 많아요. 저는 정지시간을 활용할 뿐이에요. 달릴 때는 DJ를 안 해요. 음악을 소개하고 말할 때는 꼭 정지할 때죠.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아무래도 DJ를 하게되다보니까 더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DJ하고나서 6년 동안 한 건의 사고도 없었어요. 예전에는 나를 위해 운전을 했는데 이제는 손님을 위해서 운전하니까요.

손님이 버스 잡으려고 뛸 때 저는 저를 보고 싶어 뛴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요. 서로 기분 좋잖아요. 몇 초 기다려주면 그 사람은 버스도 타고. 정류소에 많은 사람이 서있지요. 저는 '저렇게 많은 사람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요.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서로 웃고, 얼마나 좋나요."

- DJ 하지 말라는 항의 없었는지.
"지금까지 3번 있었어요. 처음에는 전화하는 어떤 분이 전화하고 있으니까 시끄럽다고 하셨고, 출근시간 때 어떤 분이 쉬고 싶다고 조용히 해달라고 한 분도 있었지요. 출근시간에는 민감하니까 조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DJ 멘트와 정규방송이 겹쳐 나와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네요. 

자기들 위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해를 못한다고 기분 나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나아질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배웠고 발전하려고 했지요. 남의 말을 무시하지 않아야 해요. 남의 말을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세상에 쉬운 말이 없어요. 그때 입에서 나오지만 오래 쌓인 말이거든요. 동료기사들이 뒤에서 저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들려왔어요. 제가 이런 DJ버스를 하면서 자신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쓸데없이 저런 거 한다'고 쑥덕쑥덕 한 적도 있지요."

"세상은 자신이 한만큼 돌아오는 부메랑"

- DJ를 하시면서 보람을 느낀 점이 있다면.
"현대백화점 팀장이 탄 적이 있나 봐요.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고객감동을 버스에서 배웠다고 하면서 직원교육을 했대요. 그 얘기를 뒤에 들었지요. 홈플러스를 사복입고 간 적이 있는데 제가 DJ아저씨라는 걸 안 할머니가 제 엉덩이를 두드려주더라고요. 제가 쉰 네 살 인데 누가 엉덩이를 두드려준 것은 40년 만이에요. 그때 기분은 말로 못하겠네요.

지금까지 버스에서 승객들이 다섯 번 노래를 했어요. 3번은 버스 전체가 했고요. 2번은 일부 사람들이 노래했지요. 영국 사람이 탄 적이 있어요. 제가 비틀즈의 yesterday를 틀어주니까 흥얼거리더라고요. 그 사람 안내하는 한국 사람이 이 외국인이 무척 좋아한다고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제가 '외국인이 이렇게 좋아한다, 한 번 더 틀겠다'하고 멘트를 날리며 다시 노래가 나오는데 버스에 탄 사람 반 이상이 <yesterday>를 불렀어요. 또 한 번은 애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탔어요. 제가 동방신기의 <풍선>을 틀어줬는데 아이들과 엄마들이 같이 부르더라고요. 참 보기 좋았지요.

늘 먹는 밥이라고 생각하면 그 밥이 그 밥이죠. 하지만 마누라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밥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귀하고 맛있는 밥이 되지요. 저는 그 느낌을 생활에서 갖고 살려고 해요. 남 탓하고 세상을 원망해봤자 돌아오는 건 분노밖에 없거든요. 부메랑 같아요. 제가 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죠."

- DJ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싸우면서 버스를 탄 부부가 있었어요. 제가 부부를 위해 사랑과 부부를 위한 노래를 틀어주고 조심스럽게 멘트를 했지요. 둘이 처음에는 따로 앉았는데 감동받았는지 같이 앉아 손을 잡더라고요. 그러더니 내릴 때 이혼하려고 했는데 기사님 말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밥을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을 때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밥 천 번 사는 것보다 더 기쁘겠다고 했지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기뻤지요.

제게 선물을 준 분이 있어요. 웬 거냐고 하니까, 그 분 동생이 강원도 버스기사였는데 죽었데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보면 동생 생각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차를 타려고 1시간이나 기다려서 타시더니 동생 주고 싶은 거였다고 저를 주시더라고요. 상암동 사는 꼬마가 있었어요. 굉장히 맹랑하더라고요. 아빠 같아서 아저씨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부모가 없다며 솔직한 가정사를 털어 놓는데, 찡하더라고요."

"사랑에서 태어나 사랑으로 돌아간다"

인기가요를 다운 받아 틀어주기 위해 컴퓨터도 배웠다는 고창석씨. 향수어린 곡부터 인기곡 순위까지 소개해주는 그를 손님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네요.
▲ 최신곡을 다운 받고 있는 고창석씨 인기가요를 다운 받아 틀어주기 위해 컴퓨터도 배웠다는 고창석씨. 향수어린 곡부터 인기곡 순위까지 소개해주는 그를 손님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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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7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서울역을 돌아 다시 신월 7동으로 가지요. 이 날은 비도 내리고 주말이라 차가 무척 막혔지요. 신촌쯤에서 고창석씨가 "오늘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막히네요. 괜찮아요?"라고 묻자 놀랍게도 승객들이 한꺼번에 '네'라고 대답하더군요.

버스가 막히면 짜증날 법한 상황인데도 고창석씨의 따뜻한 배려에 승객들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올라오는 시민 하나하나 인사를 하고 내리는 승객에게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라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요. 한 어린이는 버스를 타면서 "앗, DJ 아저씨다"라고 외치며 반가움을 표시하더군요.

"고창석 기사처럼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마음은 있는데 입 밖으로 안 나와요. 공부도 많이 해야 되고. 운전만 하는 것도 힘든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꾸준히 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이 동료로서 사회 선배로서 부러워요."

동료 기사 전대식씨의 말처럼 그가 보여주는 마음 씀씀이는 쉬운 게 아니지요. 자신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자신도 사업이 망한 뒤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창 너머를 쳐다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 그를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이끌어준 것은 사랑이지요. 사람은 '사랑으로 빚은 걸작이며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는 그는 "사랑과 사랑 사이가 우리 삶인데 왜 이렇게 사랑을 놓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하네요.    

사람들은 점점 각박해지고 표정은 굳어지고 있지요. 게다가 경기가 안 좋다보니 더욱 딱딱해지고 있지요. 친절이 드물고 남을 향한 배려가 귀해진 세상에서 고창석씨는 DJ를 하면서 사람들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네요. 무엇을 하든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지지요. 날로 싸늘해지는 분위기에서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된다는 걸 새삼 배우네요.


태그:#고창석, #버스DJ, #603번, #버스기사,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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