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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 국회에 갈일이 있어서 여의도에 다녀왔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더니 결국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 자리에까지 밀어올린 결과를 보고 섣불리 진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의 민주당에도 화색이 돌고 있다고 하는데, 미국 민주당이 잘 나간다고 한국의 민주당이 저절로 잘 나갈리는 없는 법.

 

그래도 정치적인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민주당에 미국의 소식은 희망인 것이 분명하다. 계속해서 이런 신세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래도 그 희망은 스스로의 혁신과 노력이 없이는 현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민주당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의 당직자도 아니건만 '내가 민주당의 홍보담당자라면'이라는 가정하에 글을 쓰는 것은 그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마음이기도 하고, 충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동네 번화가에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그 현수막을 보면서 든 생각을 쓴다.

 

그 현수막은 바로 민주당에서 내건 종부세 폐지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다. 우리 동네에도 있으니 다른 동네에도 걸려있겠지. 민주당 홈페이지에 가보니 동네에 걸려있는 것과 똑같은 현수막 파일은 없고, 거의 다를바 없는 현수막 파일이 있어서 가져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이 현수막을 한번씩 봤을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이 현수막을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진부함이다. '어쩜 이렇게 감각없이 현수막을 만들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나는 이 현수막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전쟁같은 출퇴근 시간에 봐야하는 현수막이 투쟁과 선동이라니, 눈과 마음이 모두 더 피곤해지지 않을까?

 

민주당이 종부세 폐지를 반대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민주당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국고보조금으로 만든 현수막에서 까지 친절하게 '이명박이 종부세 폐지하려고 한대요. 우리는 종부세 폐지 반대해요'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지겹도록 신문과 방송에서 이 소식을 접한다. 그런데 피곤하게 이런 현수막을 다시 봐야 하나? 국민과 대면하는 정당, 여론을 먹고사는 정당이 더군다나 정치적 불황기를 맞아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정당이 국민의 불쾌감과 분노를 유발해서 지지를 얻어보려는 관성을 그대로 답습해서야 쓰겠는가? 

 

내가 민주당 홍보 담당자라면 이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WHO ARE YOU?'라고 쓰겠다. 그리고 그 밑에 작은크기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민주당은 종부세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쓰겠다. 다 아는 얘기말고, 관심을 끌만한 감각적인 카피로 피곤에 지친, 그리고 정치권의 싸움에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노력해 보겠다.

 

민주당이 누구의 정당인지, 그리고 이 현수막을 보고 있는 사람은 과연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시간을 주겠다. 무턱대고 '반대한다!', '웬말이냐!'라는 과거의 카피가 주는 불쾌감은, 물론 그 불쾌감을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우선적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람들의 피로감을 조장하는 데에만 일조할 뿐이다.

 

'내가 민주당 홍보담당자라면'이라는 상상을 해본 계기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민주당의 로고다. 민주당은 얼마 전 당의 로고를 소나무로 결정하고 발표했다. 소나무는 지조와 기개 그리고 성실과 생명을 상징하며 그런 푸르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국민 곁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소나무 로고가 국민과는 한참 떨어진 '독야청청' 로고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이 밝힌대로 소나무는 기개와 지조를 뜻한다. 정치인 그리고 정당이 갖춰야할 품성이 바로 이 소나무와 같은 성품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 해야하는 일.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 곁에 다가가 국민의 마음을 얻어 친밀한 친구로 거듭나는 일에 이 소나무가 걸림돌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소나무와 같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소나무같이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하루하루 땀흘리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들꽃과 같이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민초들의 삶이다.

 

자, 민주당이 그런 사람들에게 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시도는 좋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이 국민에게 받고 있는 시선이 이런 소나무에 합당한가? 얼마 전 언론보도에서 12개의 직업군 가운데 국회의원이 12등 즉, 꼴등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근거를 갖다 대지 않더라도, 국민이 얼마나 정치를 불신하고 조롱하고 있는지는 어린이들도 다 안다.

 

이런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민주당은 자유로운가? 지금은 진한 화장으로 쌩얼을 감춘 채 '나는 소나무입니다.'라고 말할 때가 아니라 국민에게 벌거벗은 모습을 보이고, 정말 혁신에 혁신, 변화에 변화를 하겠다는 각오와 눈물을 보여줄 때이다.

 

소나무는 국민이 선망하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상향과도 같은 것에서 국민과 동떨어진 상징일 수 있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민으로부터 조롱받는 정치권이 소나무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잡기에는 아직 정신차리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민주당 홍보담당자라면 들꽃 한송이를 로고로 사용하겠다. 들꽃과 같은 99%의 사람들의 정당, 그리고 그런 들꽃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정이품송을 보살피듯 정성을 다해 보호하고, 키우는 정당이라는 것을 표현하겠다. 또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서 동떨어진 소나무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국민과 같은 들꽃의 정체성을 갖겠다는 것을 과시하겠다.

 

내가 너무 오지랖도 넓게 한 정당의 홍보문제에 끼어들었다. 민주당에 관계된 분들이 이 글을 볼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미국에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곧 있으면 자동적으로 봄날이 올거라는 호들갑에 꼭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당신들 아직 멀었다고, 작은 홍보문제 하나에도 치열한 변화와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의 오바마는 거저 탄생하지 않았다.


태그:#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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