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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북관계 전면 차단'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며, 강경기조의 대북정책에 손을 댈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국의 문턱에 온 남북관계는 그 문턱을 넘어 '잃어버릴 5년'을 향해 가고 있다.

 

북한이 12일에 남북관계와 관련해 취한 조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71년 개통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 남북적십자 채널을 끊은 것이다. 남북 당국간 핫라인 역할도 해온 이 채널이 끊어짐에 따라, 남북 당국간 연락망은 군사직통전화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또 하나의 조치는 12월 1일부터 "위임에 따라 1차적으로 군사분계선를 통한 모든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경고한 '개성공단 등 남북관계 전면 차단' 경고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20일간의 여유를 주고, '전면 차단'이 아니라 '1차적으로 엄격히 제한, 차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추후 방침을 정하겠다는 의미도 전달했다.

 

이에 따라 남한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파국을 막을 순 있겠지만, '악의적 무시'를 계속한다면 개성공단 중단 등 남북관계 전면 차단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MB의 6·15, 10·4 선언 '위반'에 뿔난 북한

 

북한의 강경기조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북한이 통지문에서 "남조선 괴뢰 당국의 반공화국 대결 소동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며 "역사적인 두 선언에 대한 남조선 괴뢰당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비난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선언의 핵심적인 기초는 내정 불간섭 및 상호 비방 중지,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공동의 이익 실현 등이다. 선언의 이행은 이러한 정신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앞장서서 유포하면서 북한 급변 사태 발생시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작전계획 5029'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내정 간섭과 비방 수준을 넘어 체제 전복 시도로 북한이 받아들일 만하다.

 

남한 민간단체들의 '삐라 살포'는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에게 상당한 불쾌감과 위협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간단체 활동을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북한은 '촛불집회는 강경 진압하면서 삐라 살포는 방조하고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MB 정부의 '작전계획 5029' 논의와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 행위를 북한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민관 합동작전'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 역시 북한은 6·15와 10·4 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본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이 실시된 2006년에는 인권결의안에 찬성을, 10·4 선언에서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이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2007년에는 기권을 했다.

 

아, MB 정부여!

 

북한의 조치들이 유감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MB 정부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는 6·15와 10·4를 부정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위에서 든 몇 가지 사례는 이미 '위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의 열쇠는 MB 정부가 쥐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반공화국 책동"이라는 비난을 야기하는 언행을 함으로써 대화 분위기 조성에도 역행해왔다.

 

북한에 대한 MB 정부의 '악의적 무시'는 남북관계 개선시의 전략적 이익과 악화시의 전략적 손실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악의적 무시'는 1기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상징이었고, 북한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이를 돌파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책은 '부시도 바꿨는데 MB를 못 바꾸겠냐'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남북관계 악화시 전략적, 경제적, 안보적 손실부터 주목해야 한다. 만약 북한이 다음 조치로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고 남북관계를 전면 차단한다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잠잠해졌던 '코리아 리스크'는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한국에 대한 해외 투자의 감소와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최종적인 조치로 개성공단 사업체들을 철수시키고 그 자리에 다시 장사정포 부대 배치를 추진하게 되면, 한국이 입게 될 손실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게 된다.

 

결론은 MB 정부가 은근슬쩍, 그러나 전면적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우선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과 북쪽에 통신 설비자재 제공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13일 국방부가 서해지구 군 통신망 정상화를 위한 자재, 장비 제공 문제를 협의하자고 북측에 제의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는 북한의 추가적인 악화 조치를 방지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북한은 남측의 협의 제안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군불떼기'를 시작으로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존중과 이행 의지를 밝히면서 대화를 제안하면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관계는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실용적 관점에서 볼 때,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남한에게도 큰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코리아 리스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활성화는 고사 위기에 놓인 남쪽의 중소기업에게 활로를 열어줄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투자 조건도 훨씬 좋아지고 있다.

 

또한 10·4 선언을 이행하면 MB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건설 경기 살리기와 자원외교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건설자본의 활로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남쪽의 부동산이나 대운하라는 '좁은 시야'에서 볼 것이 아니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및 북한을 통한 유라시아 대륙 진출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외교 역시 먼 나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휴전선 너머에 있는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부터 주목해야 한다.

 

MB가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상생과 공영'을 통한 남북한 '경제살리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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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대북정책, #남북관계,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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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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