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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후원의 으뜸은 창덕궁 후원이라지만 건청궁·태원전을 복원하여 한층 시야가 넓어진 경복궁 향원지 영역이 이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은 담장과 굴뚝을 산뜻하게 단장하여 한결 아름다워졌다.

경복궁 후원은 교태전 뒤뜰인 아미산과 향원지 영역 그리고 조금 성격이 다른 경회루 영역으로 나누어 진다. 그리고 자경전 뒤편에는 생김새로 보면 후원으로 간주하기 어렵지만 후원 역할을 하는 자경전 굴뚝이 있다.

교태전과 자경전 그리고 향원지 후원은 개인적인 휴식공간으로서 사적 성격이 강한 반면 경회루 영역은 사신이 오면 접대하고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연회를 베풀고 과거시험을 치른다든가 나라에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낸 자리여서 공공적 성격이 강하였다.

평상시 경회루는 침전과 바로 연결되어있는 금원(禁苑)이었다('06.7.15 촬영)
▲ 경회루에서 내려다본 침전영역 평상시 경회루는 침전과 바로 연결되어있는 금원(禁苑)이었다('06.7.15 촬영)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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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경회루 영역이 공공성만 강조된 것만은 아니었다. 왕과 종친들이 휴식을 취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예전의 경회루는 지금의 경회루와 많이 달랐다. 연못주변은 담으로 둘러싸여, 쉽게 들여다 볼 수도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었다.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서쪽에 붙어 있는 경회루는 행사가 없었을 때는 주로 왕과 왕실의 전용공간이었다. 세조와 구종직과 관련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경회루는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관료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금원적(禁園的)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경회루 영역은 엄격한 질서 속에 설계된 경복궁을 감안하면 약간은 파격적인 면이 있다. 경회루는 경복궁 중심축에서 벗어나 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광화문-근정전-강녕전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이 엄격하고 권위적인 형식에 따라 지어진 반면 경회루 영역은 근정전 일곽과 같은 규모이면서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소 자유롭게 꾸며졌다. 침전과 편전영역에서 느껴지던 답답함이 경회루 영역에 들어서면 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품위있는 경회루와 숱없는 나무, 장대한 경회루와 초라한 나, 부조화다
▲ 부조화 품위있는 경회루와 숱없는 나무, 장대한 경회루와 초라한 나, 부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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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영역은 창덕궁 후원에서 맛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 가벼운 기분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엄숙한 느낌이 들어, 작업복보다는 정장이 어울릴 것 같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경회루를 보려면 멀리 떨어져 갈수록 그 멋이 더하다. 경회루를 정면으로 보고 있을 때보다 서쪽 멀리서 바라다보는 맛이 더 좋고 경회루 하나만 보기보다는 멀리 북악의 봉우리를 함께 보면 그 멋이 더 하다.

경회루를 이고 있는 장대한 돌기둥을 보고 있으면 한 왕조를 지탱해온 힘이 느껴진다. 소박한 문화에 길들여지고 크기에 자존심이 상해 왔던 우리에게 힘이 되고 큰 위안이 되는 것이다. 연결한 흔적이 없는 이 큼직한 돌을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에 앞서 아랫동아리와 윗동아리의 굵기를 달리하여 곱게 다듬은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왕비의 후원이라고는 하나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 아미산 왕비의 후원이라고는 하나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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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동쪽 일각문을 들어서면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이 나온다.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이용하여 인공으로 쌓은 산이라고는 하나 그리 높지 않은 언덕 수준이다. 왕비의 후원이나 지나치게 사치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정도전의 글에서도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정도전은 "궁원의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사치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 했다. 검소하고 질박한 집에 거처한다는 생각이 백성을 위한 기본이라 여긴 것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굴뚝이다
▲ 아미산 굴뚝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굴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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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산의 이름을 빌어 온 것이다. 몇 단의 화계를 쌓아 화초를 심었고 굴뚝과 석함으로 장식하였다. 아미산 굴뚝이 산뜻해졌다. 깨지고 뭉개진 벽돌을 다시 쌓았고 밝기도 밝아져 더욱 환해 보인다. 경복궁을 찾는 사람 중에 이 아미산을 빼놓고 지나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좋은 곳이 되었다.

굴뚝에선 국화향기가 솔솔 피어나고...('06.9.30 촬영)
▲ 굴뚝과 국화 굴뚝에선 국화향기가 솔솔 피어나고...('06.9.30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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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굴뚝에선 옆에 만발한 국화향기가 솟아오르고 꽃담에는 꽃이 가득하다. 담과 굴뚝 모두 담홍색 색채를 띠어서 환하며 곱고 품위가 있다. 경회루가 남성적이어서 엄숙하고 남성의 힘이 있다면 아미산은 여성적이어서 여성의 향기가 난다.

교태전 동쪽엔 대원군이 조대비를 위해 지었다는 자경전이 있다. 서쪽 담장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장식한 꽃담이 있고 뒤편에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을 새겨 넣은 굴뚝이 있다. 교태전처럼 화계를 꾸미지 않았지만 굴뚝 하나만으로 후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굴뚝하나로 훌륭한 후원을 꾸몄다('05.1.9촬영)
▲ 자경전 굴뚝에 새겨진 문양 굴뚝하나로 훌륭한 후원을 꾸몄다('05.1.9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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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연꽃,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안에서 사슴, 학, 거북이 한가롭게 놀고 있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고 구름위로 해가 환하게 솟아 있다. 이 굴뚝 하나에는 어지간한 후원이 갖지 못하는 동·식물을 다 갖고 있다. 굴뚝으로 후원을 꾸밀 생각을 하였다니 그 생각이 기발하다. 자경전 담 너머엔 햇살에 수줍어하는 노란 은행잎이 굴뚝 담을 수 놓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꽃담 대신 '단풍담'을 만들어 놓았다
▲ 자경전 뒷담 노란 은행잎이 꽃담 대신 '단풍담'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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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 영역을 벗어나면 멀리 북악의 봉우리가 들어온다. 겨울철 흰 눈이 쌓여 희끗희끗 보이는 봉우리가 최고라 생각했는데 연한 가을색 옷을 입고 있는 봉우리도 아름답다. 북악에 맞춘 눈을 그대로 따라 내려오면 연못(향원지) 한가운데에 또 다른 봉우리가 있다. 향원정이다.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은 이름도 예쁘다. 향원정을 연결하는 목조나무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醉香橋)다. '향기가 멀리 퍼져 향기에 취한다'는 향원정(香遠亭)과 취향교(醉香橋)는 기막히게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취향교는 지금은 남쪽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처음 만들어 질 때는 북쪽 건청궁으로 연결된 다리였다. 지금도 향원정 북쪽에 그 연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향원정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예전엔 향원정 북쪽 건청궁 방향으로 나 있었다
▲ 향원정의 옛 모습 향원정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예전엔 향원정 북쪽 건청궁 방향으로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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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에는 고종의 침소인 장안당과 명성황후의 침소인 곤령합이 있으며 궁중 나인이 주로 사용하던 옥후루가 있다. 옥후루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이거나 시해된 후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소여서 비운의 장소로 남아 있다. 명성황후는 시해된 후 녹산에서 불태워져 일부는 향원지에 뿌려졌다. 연못 주변의 빨간 단풍나무가 향원지 영역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장소임을 암시라도 하듯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다.

빨간 단풍이 물든 향원정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07.11.3촬영)
▲ 향원정과 단풍나무 빨간 단풍이 물든 향원정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07.11.3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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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지 근방에는 20리목으로 불리는 시무나무, 오리마다 심었다는 오리마무, 상서로운 나무로 귀히 여겨 궁궐에 많이 심었던 회화나무, 열매를 기름으로 짜서 등유로 사용하였던 쉬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이 밖에 뽕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벗나무, 느티나무 등 낙엽송들이 향원지 근방의 가을 운치를 더해준다.

경복궁 후원 여행은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이 있는 곳에서 갈무리하는 것이 좋다. 특히 가운데 건물인 집옥재는 출입이 자유로워 거기에 들어가 만월창, 반월창 등 이색적인 창문을 감상해보고 창문을 통해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가을정취를 감상하는 맛이 색다르다.

집옥재에서 바라다본 가을('07.11.3촬영)
▲ 향원지 가을 집옥재에서 바라다본 가을('07.11.3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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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철저히 망가졌고 명성왕후가 시해된 비운의 터인 건청궁이 복원되고 군부대가 주둔했던 태원전이 복원되어 집옥재로 들어오는 햇살이 더 따사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태그:#경복궁,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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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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