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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들의 디레버리징(de-leveriging·이하 부채 줄이기)으로 국가 대외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안 좋은 부분 때문에…"(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우리나라가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피치가 지난 11월 4일 세계 전망을 부정적인 톤으로 바꾼 탓이다."(송인창 국제금융국 국제금융과장)

 

10일 오전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Fitch)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브리핑은 취재진에게 되레 혼란스러움을 주었다. 당국자들의 말이 불과 몇 분 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먼저 최종구 국장이 "피치의 이번 결정은 국내 은행의 부채 줄이기 탓"이라고 밝혔다. 이후 브리핑에 나선 송인창 과장은 "우리나라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는 "신용등급이 유지된 것을 주목해 달라"며 이번 등급 전망 조정 영향을 최소화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당국자들은 피치의 자료를 정확히 전하기보다 이를 해명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 결과, 외국의 객관적 평가를 애써 무시하려는 모습과 함께 당국자간 말이 엇갈리는 탓에, 정책 당국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 한국만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 재정부 "문제 없다"

 

먼저, 이날 피치의 결정 사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피치는 이날 오전 A+인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부정적'은 내년 4월 연례협의 때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치는 지난달 21일 한국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어, 불과 20여일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또한 등급 조정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은 2003년 3월 북핵 위기 이후 처음이다.

 

피치의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신용등급이 BBB~A인 17개 투자적격 신흥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중 신용등급(BBB~BBB+)이 상대적으로 낮은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4개국 신용등급이 한 단계씩 하락했다.

 

17개 신흥 국가 중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수준인 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칠레·러시아 등 6개국의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긍정적→안정적 또는 안정적→부정적)됐다.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6개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만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조정됐다는 점이다. 우리와 같은 신용등급(A+)인 중국·대만을 비롯해 태국·인도 등 아시아 4개 나라 신용등급과 등급 전망은 그대로 유지됐고 말레이시아는 등급 전망이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배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송인창 과장은 "우리나라에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난 4일 피치가 '국제 경제 전망'에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위기에 대한 시각을 부정적인 톤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대외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등급 전망을 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과장의 말과는 달리, 등급 전망이 유지된 대만의 대외의존도는 우리보다 높다. 이러한 지적에 송 과장은 "대만은 경제 규모가 작지 않느냐"고 얼버무렸다. 경제 규모가 작으면 세계 경제 침체에 더욱 취약하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 것이다.

 

송 과장은 계속해서 낙관적인 견해만 강조했다.

 

"신용등급이 유지됐다는 부분을 봐달라. 세계 경제에 가장 크게 노출된 나라에서 등급이 유지된 것은 긍정적이다. 또한 제임스 맥코맥 피치 아시아 신용평가 책임자는 금융 불안에 따른 한국 정부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문 보도자료를 보면 나와 있다."

 

하지만 영문 보도자료에는 오히려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된 이유가 담겨 있다. 이미 앞선 브리핑에서 최종구 국장이 그 이유를 털어놓은 터였다. 

 

피치, "한국 은행 시스템 문제" 지적... 재정부는 묵묵부답

 

 

최종구 국장은 "한국에 대한 피치의 보도자료에는 좋은 부분과 안 좋은 부분이 있다"며 "국내 은행들의 부채 줄이기로 인해 우리나라의 대외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피치가 한국과 말레이시아에 대한 전망을 조정하다(Fitch Revises Outlooks on Korea and Malaysia)'라는 피치의 영문 보도자료를 살펴보자. 보도자료에는 아시아 6개국의 등급 조정을 언급된 뒤 바로 한국 경제 상황을 전하는 제임스 맥코맥 책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한국의 등급 조정은 한국의 외부 신용 건전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은행 시스템의 부채 줄이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환율을 지지(방어)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수반될 경우 더욱 그렇다"

("The revision to Korea’'s Outlook reflects concerns that the de-leveraging of the banking system may contribute to an erosion of the sovereign’'s external credit strengths, especially if it were accompanied by central bank interventions in the currency market to support the exchange rate,”" said James McCormack, head of Asia sovereigns at Fitch.)

 

이후 보도자료에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 관련 부분의 결말은 "한국은행 시스템의 부채 줄이기가 외부 신용 건전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 더욱 그렇다"는 재차 경고로 끝난다.

 

"우리나라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던 앞선 송인창 과장의 말은 실제 보도자료 내용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앞선 브리핑에서 그는 "등급 전망 하향 조정이 꼭 등급의 하향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 또한 기획재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이날 오후 제임스 맥코맥 책임자가 인터넷 경제신문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면, 신용등급이 하향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상황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등급 하향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내년 연례협의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한국은 국제 유동성(자금) 부족이 문제가 됐다, 해외에서 돈을 지속적으로 빌려와야 한다"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이 같은 문제에 노출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피치의 등급 전망 하향 조정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다"는 입장을 밝힐 뿐, 피치가 지적한 한국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태그:#신용등급,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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