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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 추석연휴에 불영계곡을 다녀왔다. 한참 산모롱이 계곡을 굽이 도는 데 아트막한 산자락에 담쟁이단풍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보이는 아름다움이다.
▲ 불영계곡 담쟁이단풍 지난 9월 14일, 추석연휴에 불영계곡을 다녀왔다. 한참 산모롱이 계곡을 굽이 도는 데 아트막한 산자락에 담쟁이단풍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보이는 아름다움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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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글쎄요. 아직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근데 그건 왜 묻죠? 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촐랑대는 것보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는 게지. 무시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 중 하나야. 그동안 단지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너랑 얼굴 맞대고 얘기하는 것까지도. 이게 얼마만이니? 두 손을 다 꼽을 만큼 한참 됐다 그치?

요즘 들어 누구나 사는 게 팍팍해졌어. 너도 느끼지. 전에 비해 가족나들이도 뜸해졌고. 용돈도 훨씬 줄었잖아. 군것질도. 단지 주머니사정만 그런 게 아니야. 평소 친분을 쌓고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뜸해. 그만큼 삶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거야. 넌 어떠니? 태권도 열심히 다니고 있냐? 어렸을 때부터 몸을 단련해 놓으면 평생 건강하게 살아. 컴퓨터 게임은 얼마만큼 하니? 시간을 종잡을 수 없다고? 그럴 거야. 너 만한 나이에 끊고 맺는 자제력을 가진다면 어디 어린애냐? 애늙은이지. 엄마아빠 눈치보지 말고 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해. 무엇이든 지나놓고 후회하는 것만큼 미련한 바보는 없다.

지내놓고 후회하는 바보

인서야, 그런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잔잔히 흐르는 음악소리, 수풀 속에서 정답게 지저귀는 새소리, 졸졸졸 실개천을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 산자락 억새를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바람, 이제 갓 돌을 지난 새아기의 옹알이, 그런 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일까? 아뇨, 저는 어렵고 힘 드는 사람들을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신문에서 봤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좋은 일을 나누려는 자원봉사자들도 줄고 있대요.

백암온천 곁에 마련된 휴양림에 들렀을 때 80년 묵은 노송이 잘려져 그 아름다운 속내를 보이고 있었다. 안내자의 말을 들으니 가장 가운데 나이테는 3년, 그밖에는 나이테 한 줄이 1년씩 셈하면 나무의 실제 나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 80년 묵은 소나무 나이테 백암온천 곁에 마련된 휴양림에 들렀을 때 80년 묵은 노송이 잘려져 그 아름다운 속내를 보이고 있었다. 안내자의 말을 들으니 가장 가운데 나이테는 3년, 그밖에는 나이테 한 줄이 1년씩 셈하면 나무의 실제 나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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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엷어가는 쓸쓸한 계절이야. 넌 어떠니? 좋기만 하다고? 감상이 짙은 탓인지 난 낙엽을 쓸고 가는 작은 바람에도 헛헛함을 느껴. 가을이기 때문만은 아냐. 뜨겁던 여름날의 지친 몸이 서늘한 기운에 위축되어지는 것 같아. 네 말처럼 쌀쌀해지는 겨울의 문턱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나 아닌 남들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올해는 가뭄으로 지천이던 코스모스마저 키가 작았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에 핀 코스모스는 어른 키만큼 웃자랐다.
▲ 한적한 시골풍경 올해는 가뭄으로 지천이던 코스모스마저 키가 작았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에 핀 코스모스는 어른 키만큼 웃자랐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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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누구든지 남의 잘못을 들추려 하고,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 나라면 조금 더 마음 아픈 사람들 곁에 다가서고, 나라면 이렇게 자신하며 살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 그래서 나의 입장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고, 보다 따스한 눈길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불평불만으로 떼 잡을 일이 없어.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인서야, 넌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난 세상사람 모두가 사랑의 눈길로 이 겨울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은 우리들의 삶의 울타리 안에 내 가족, 내 형제 같은 생각으로 서로 감싸주고, 서로 참아주고, 서로 이해하며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저도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따르고 싶어요. 얼마 전 수업시간에 말씀하셨잖아요. ‘모두가 네 덕이고 내 탓이라’고요. 엊그제도 친구와 다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 큰 것 같아요. 너무 내 것만을 내세웠던 거예요.

인적이 끊긴 한적한 계곡, 수림으로 휩싸인 계곡의 물억새, 찾는 이 없어도 고고하게 잘 피었다.
▲ 한적한 계곡의 물억새 인적이 끊긴 한적한 계곡, 수림으로 휩싸인 계곡의 물억새, 찾는 이 없어도 고고하게 잘 피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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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이 아름다워. 그래야지. 내 잘잘못을 먼저 헤아리고 챙겨야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나라경제사정이 끝 모르게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정부를 불신하고, 정치가를 못미더워하는 세상이야. 경제가 최악으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서민들의 사는 형편에 대해서 나 몰라라 발뺌만 하고 있어. 그들한테는 서민들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

인서야, 창밖을 보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람에도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작은 낙엽들은 솔솔 떨어지잖니. 흔들림 없어도 빛 고운 단풍잎은 아름다운 모양으로 서로 의좋게 물들어. 단풍잎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 그래서 난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정취가 좋아. 그 속에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 이 가을,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인서 너답게 말이야.

가을 들판, 야무지게 잘 자란 벼이삭을 배경으로한 갈대, 당찬 키세움으로 꿋꿋하다.
▲ 들녁에 핀 갈대 가을 들판, 야무지게 잘 자란 벼이삭을 배경으로한 갈대, 당찬 키세움으로 꿋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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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을, #억새, #갈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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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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