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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 만든 거북선은 아직까지도 완전한 복원을 하지 못했다던 것 같던데 사실일까?"

"거북선? 아마 그럴 거야. 확실한 자료도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옛 거북선을 인양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웬 거북선?"

"이곳이 충무공의 옥포해전 유적지이고 저 앞에 저렇게 엄청 커다란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거북선이 생각난 거지."

 

옥포조선소를 감싸고 돌아가는 도로를 달려 옥포만 입구 언덕에 자리 잡은 공원에서였지요. 동생이 갑자기 거북선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거제도 남부면 다대리 언덕에 있는 매실나무 밭에서 오전까지 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관광길에 나섰습니다. 전날 둘러본 곳들을 그냥 지나쳐 학동 몽돌해수욕장과 망치를 지나 구조라에 도착했습니다. 입구 도로에서 내려다본 구조라는 이름만큼이나 모양도 특이했습니다.

 

양편에 포구와 해수욕장 거느린, 자라목처럼 생긴 구조라

 

지형이 장구통처럼 생겼는데 가운데 부분이 가늘게 좁은 형태로 그 좁은 지형의 양쪽이 한쪽은 해수욕장, 다른 한쪽엔 포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간 곳엔 나지막한 산이 불쑥 솟아 있었습니다.

 

 

"저 해수욕장, 여름엔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포구도 거제에선 손꼽히게 큰 편이고."

동생부부는 농장을 오가는 길에 몇 번 지나치긴 했지만 해수욕을 해본 경험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구 규모가 광장이 컸습니다. 다른 작은 포구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은 포구였으니까요.

 

'구조라'라는 지명은 기묘하게 생긴 지형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바다 속으로 불쑥 들어간 모습이 목이 가는 자라가 목을 쑥 내밀고 있는 모습과 흡사해서 생긴 이름이지요. 그래서 본래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등으로 불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거제도에서 제일 큰 항구인 장승포에 버금가는 규모인 구조라 포구엔 크고 작은 선박들이 많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장승포가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에는 이 섬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포구가 있는 좁은 목 반대편에는 풍치 좋은 해수욕장까지 자리 잡고 있었으니 천혜의 지형이랄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구조라였습니다.

 

구조라 포구와 해수욕장을 둘러보고 다시 해안가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섬은 대부분이 산지였지만 골짜기엔 작은 논과 밭들이 있어서 이 지역의 식량을 자급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바닷가 움푹 들어간 곳엔 어김없이 작은 포구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역시 작은 어촌이 형성되어 있었지요.

 

 

와현 마을과 포구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골짜기 안쪽엔 논과 밭이 있고 바닷가엔 작은 해수욕장이 있는 이 마을 풍경은 그림 같았습니다. 그러나 10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선 주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언덕을 휘감고 돌아가는 도로 옆 버스정류장엔 50대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그 옆 공터엔 쉼터가 만들어져 있고, 잎이 넓은 몇 그루의 나무들이 심겨져 있어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습니다.

 

여긴 장생포가 아니라 장승포, 거제에서 제일 큰 항구

 

작은 포구마을을 지나 잠깐 달려 산 중턱을 휘감고 돌아간 언덕을 내려서자 도시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장승포 항이었지요. 바로 거제도에서 제일 큰 항구입니다.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엔 차량 통행량이 많아 조심스럽게 내려갔습니다.

 

항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여객선 터미널 근처로 다가가자 단정한 제복차림에 가슴에 명찰을 단 여성 두 명이 미소를 짓습니다. 여객선 승무원이냐고 물으니 인근 호텔에서 손님들을 모시러 왔다고 합니다. 여객선에서 내릴 예약된 단체관광객들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고래 고기 파는 데가 어딥니까?"

호텔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여행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와 내게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승포라면 고래잡이 전진기지와 이름이 비슷합니다. 순간적으로 헷갈린 내가 머뭇거리자 호텔 종업원들이 웃으며 그들의 말을 받았습니다.

 

"여긴 장생포가 아니라 장승폽니다. 고래잡이를 하는 곳은 울산의 장생포지요."

장생포와 장승포, 이름이 너무 비슷하여 착각을 한 것입니다. 여행객들이 "아 그렇군요"하며 머리를 긁적입니다. 장생포인 줄 알고 모처럼 고래 고기를 맛보려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장승포항엔 거제도 제일의 항구답게 정박해 있는 배들도 많고 드나드는 배들도 많았습니다. 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타원형 바닷가에 늘어선 모습이었지요. 이곳은 인구도 많아 거제시청 소재지와 거대한 조선소가 있는 옥포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담하고 작은 포구들이 훨씬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니까요. 장승포를 출발하여 옥포로 향했습니다. 옥포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도로에 올라서자 저 아래 거대한 선박들이 빌딩 숲처럼 가득한 곳이 내려다보입니다.

 

 

옥포조선소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소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습니다. 조선소를 관광하기엔 시간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견학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냥 조선소를 안고 돌아가는 도로를 따라 달리며 주마간산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충무공이 왜군을 맞아 첫 대승을 거둔 옥포만과 효충사

 

그렇게 옥포만 깊숙한 안쪽 길을 돌아 도착한 곳이 조선소와 옥포만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 위의 공원이었습니다. 텅텅 비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자에 오르니 눈앞이 훤합니다. 옥포만으로 들어오는 푸른 바다가 좁아진 해협을 가로질러 방파제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방파제 안쪽은 모두 조선소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공원 언덕 아래 자락으로 우거진 소나무 아래 바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라보이는 해협 안쪽의 바다는 조선소가 모두 차지하고 있었으니 정말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었지요.

 

그러나 방파제 바깥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라보이는 석유시추선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석유를 시굴중인지 아니면 석유시추선을 제작하고 있는 모습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 동생이 충무공의 거북선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공원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몇 가족이 보였습니다. 젊은 부부들이어서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일 것 같아 물어보니 통영에서 온 가족과 부산에서 온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거제를 찾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만 저쪽 충무공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갑시다."

동생의 말을 따라 효충사로 향했습니다. 효충사는 공원에서 내리막길로 들어서 바닷가 길을 구불구불 돌아가야 했습니다. 효충사 경내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길가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몇 대의 승용차는 대부분 바닷가에서 갯바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타고 온 차였습니다.

 

효충사로 오르기 전 마당에 세워져 있는 공덕비 세 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가가 살펴보니 역시 임진왜란 무렵 이 지역에서 수군만호를 지낸 김형구와 이운룡, 그리고 김창우를 기리는 불망비였습니다. 충무공의 사당인 효충사는 훨씬 위쪽에 있었습니다.

 

홍살문을 들어서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간 곳에 경춘문이 서있었습니다. 경춘문을 들어서 더 올라간 곳에 효충사가 자리 잡고 있었지요. 효충사 안에는 정면에 충무공의 초상화와 영정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효충사를 둘러보고 있을 때 허름한 차림의 노인 한 분이 올라왔습니다. 노인은 아무런 말없이 영정을 바라보다가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두 번의 절이 끝나기를 기다려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충청도에 사는데 충무공의 후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충무공께서는 저에게 직계 할아버지는 아니고, 먼 친척뻘 되는 할아버지지만 우리 가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조상이지요."

노인은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옥포해전 전적지인 이곳에 충무공의 사당이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알고 참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효충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동안 다른 사람은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효충사에서 바라보는 옥포만이 아련한 모습이었습니다. 계단 옆 일직선으로 이어진 담장 너머로 바라보이는 옥포만 어느 곳에서도 임진왜란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해맑은 가을 햇살 아래 푸른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일 뿐.

 

효충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와 다시 해안 도로를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리자 오른편으로 들어가는 비좁은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동생은 그 도로를 따라 마을 안길을 조심조심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언덕 아래 역시 작은 포구가 나타났습니다.

 

"형은 이런 포구 좋아하잖아?  봐요, 저 앞 바다와 섬 사이에 다리 공사하는 것 보이지? 저 다리가 바로 거가대교야. 부산에서 가거도를 거쳐 이 거제도로 연결되는 다리야."

 

 

동생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 저 멀리 섬과 섬 사이를 잇는 교량공사가 한창인 모습이 바라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포구 부두 한쪽엔 교량공사용 자재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인부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거제도가 대도시인 부산과 다리로 연결되면 어떻게 될까?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게 될 테니까 아무래도 섬 주민들의 소득에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반대로 청정해역인 바다가 많이 오염될 염려도 있겠고."

 

거제도 주민들, 특히 관광지 주민들은 거가대교가 빨리 완공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라고 합니다. 대도시인 부산이 그만큼 가까워져서 생활도 많이 편리해질 것이라는 주민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섬과 바다의 오염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은 그 현장을 보여주려고 이곳으로 안내한 것이었습니다.

 

포구에서 다시 도로로 나와 달리는 길가 어느 밭에는 조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구부러진 오이처럼 늘어진 조 이삭이 참 정겹고 탐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법 넓은 조 밭이 한쪽은 그물로 덮여 있었습니다. 야생조류들로부터 조 이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곳 역시 농사짓는 것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이거, 큰일 났네, 장문포 왜성을 돌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어."

갑자기 동생이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은 어느새 바다 건너 통영 앞바다 저 쪽으로 한 뼘 쯤 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석양빛이 고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석양을 느긋하게 감상할 겨를도 없이 동생은 급하게 차를 몰았습니다.

 

어두워진 밤에 찾은 장문포 왜성에서 슬픈 흐느낌을 듣다

 

'장문포 왜성'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는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고 차를 몰았습니다. 길은 처음엔 시멘트 포장길이다가 비포장 좁은 길로 바뀌었습니다. 숲속 산 뒷길로 접어들자 금방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그런 길을 한참을 더듬어 들어간 곳에서 장문포 왜성이 나타났습니다.

 

이 장문포 왜성은 장목만의 서쪽 입구 산위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왜성은 바다건너 500m 쯤 되는 곳에 세워져 있던 송진포 왜성과 함께 당시의 왜군들이 장목만의 입구를 막기 위해 이 지역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쌓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두운 산길 옆에 남아 있는 흔적을 더듬어 숲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무너져 내린 성벽의 흔적은 대단할 것이 없었습니다. 전등도 없는 빈손으로 어두운 산속에서 성벽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형! 이제 그만 내려와요. 어두운데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차가 세워져 있는 길에서 기다리던 동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간 약골인 형이 염려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숲속에서 역시 무너져 내린 성벽의 잔해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장문포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에게 해전에서 밀리던 왜군들이 그들의 주둔지를 지키기 위해 현지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쌓은 성입니다. 침략군들에게 국토를 점령당한 힘없고 불쌍한 백성들이야 어쩔 수 없는 노역이었을 것입니다. 왜군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피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어두워진 길에서는 동생부부가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숲속은 어두움이 더욱 짙었습니다. 승용차에 오르기 전 뒤돌아본 왜성 터에서는 당시 침략자 왜군들에게 강제 노역으로 울부짖던 백성들의 슬픈 흐느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충무공, #거북선, #옥포만, #장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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