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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창 청소 중에 박언형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처와 함께 식사 차 헤이리에 와있습니다. 함께 식사하실 수 있나요?"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아서…."
식사 후 도맡아 식사 값을 치르곤 하시는 박 선생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사모님과의 오랜만의 나들이에 방해될까도 싶어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이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5분 뒤 두 분께서 모티프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희는 오늘 시간이 많습니다. 선생님, 천천히 청소를 끝내세요."
박 선생님은 청소를 도와주겠다고 윗 재킷을 벗으며 청소기를 쥐려했습니다. 함께 아침과 점심을 겸한 식사를 맛나게 즐겼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 박선생님께서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요일 헤이리의 가을 햇살을 맞으며 트리플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제가 헤이리의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 본 경험은 거반 박 선생님의 초대에 의한 것입니다.
박 선생님은 한 다국적 기업을 책임지고 계시는 CEO이자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가닥을 찾아낼 줄 아는 낙천주의자입니다.

김기호 선생님의 사심없는 나눔의 실천은 늘 귀감입니다.
▲ 앤틱 등과 다리미 김기호 선생님의 사심없는 나눔의 실천은 늘 귀감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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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잠시 집을 비운사이에 제 서재 책상 위에 앤틱소품 3점이 놓여있었습니다. 오래된 목재 토막과 닭이 장식된 숯불다리미, 옛날 배위에서 사용됐음직한 이동용 등이었습니다. 모두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가직한 귀중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모티프원에는 영국에서 온 마이클이 머물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그 친구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이 떠날 때 왜 네 물건들을 가져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것이 아니야."
저는 이 물건의 주인이 몸씨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제 책상 위에 놓였는지도 ….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거야'란 추측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할 때쯤 한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김기호 선생님께서 자신이 한 일임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저희 집 구석에 있는 그 물건들을 치우려다 선생님이 생각났고 그 물건들이 선생님께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티프원을 지나다가 문을 열었더니 아무도 안 계셔서 책상위에 두고 온 것입니다."

김 선생님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이런 일을 했습니다. 제게 소용이 닿겠다 싶은 캔버스와 쇳가루 같은 미술재료를 수시로 두고 가시곤 했습니다. 지난 주에 집 앞의 넝쿨을 걷었다며 수세미와 박 두 개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김기호 선생님은 헤이리에서 크레타를 운영하고 계신 화가입니다.

본인에게도 귀중했을 이 오래된 안경을 선뜻 이웃에게 선물했습니다.
▲ 앤틱 안경 본인에게도 귀중했을 이 오래된 안경을 선뜻 이웃에게 선물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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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효섭 교수님 댁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할 때였습니다. 안경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경에 관한 이런 저런 대화의 말미에 저는 작고 둥근 돋보기안경 하나를 구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반색을 하시면서 그런 안경이 하나 있으니 가져와보겠다는 것입니다.

서재로 올라가서 가져온 그 안경은 작은 글씨조차 읽을 수 있을 만큼 알맞은 도수에 테가 둥근 영국산의 앤틱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제게 잘 어울리니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글씨를 읽어야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저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한미란 사모님은 별난 반찬을 만들 때면 꼭 제 몫을 한 접시 따로 챙겨두시곤 합니다. 두 분은 바로 저의 앞집 청향재의 주인입니다.

홍콩에서 플로럴 아티스트(floral artist) 로우디 콴(Lowdi Kwan)씨께서 오셨습니다. 이 분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시는 분으로 한국에도 다양한 인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모티프원에 묵으면서 모티프원에 반한 그녀는 며칠동안 한국의 지인들을 모티프원으로 모셔와 저보다 더 모티프원의 소개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 중에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플로럴아티스트인 헨크 멀더(Henk Mulder)의 부인이자 스스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플로럴아티스트인 이윤주 선생님이 계십니다. 남편분의 한국 내 강의 때문에 네덜란드를 오가시면서 남한산성 인근에서 작품을 하고 계시는 이윤주씨를 로우디 콴씨는 구태여 모티프원으로 모셔왔습니다. 저와 길지 않은 대화 후에 흡족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저의 겹친 몇 가지 스케줄 때문에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음을 미안해하며 문밖에서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윤주선생님이 떠난 5분 뒤 다시 서재에 나타나셨습니다.

"제 차에 잘 익은 탱자 2개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틀 전에 지방에 갔다가 두 개를 얻었습니다. 이 탱자의 향기를 선생님의 서재에 두고 싶습니다."
이윤주 선생님은 차 안의 자연향을 위해 탱자를 두셨다가 그것을 제게 주고 싶어 다시 차를 돌렸던 것입니다.

탱자의 향기가 코 끝을 스칠 때마다 제게 나눔의 기쁨을 일깨워주곤합니다.
▲ 탱자 탱자의 향기가 코 끝을 스칠 때마다 제게 나눔의 기쁨을 일깨워주곤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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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젊은 부부가 오셨습니다. 부인께서 꼭 헤이리를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출판단지에서의 업무에도 불구하고 모티프원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도착하자마다 잘 장정된 두툼한 책 한권을 제게 건넸습니다. <조선시대 통신사 행렬>이라는 책으로 대마도종가문서의 통신사회도 전체와 부산 초량의 왜관을 그린 왜관도를 모두 실은 도록입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작은 선물입니다."
비매품임으로 살 수도 없는 이 책을 주시면서 하신 얘기입니다. 이 분은 부산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에서 '고서점'을 운영하시는 양수성 사장님입니다.

조선통신사행열도는 국가간 나눔의 소중함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조선통신사가 파견되었던 그 시절 호혜9互惠0의 관계 돌아간다면 한일간의 모든 문제는 봄 햇살에 눈 녹듯 할 것입니다. 펼쳐진 부분은 부산 초량의 왜관을 그린 왜관도입니다.
▲ <조선시대 통신사 행렬>도록의 왜관도 조선통신사행열도는 국가간 나눔의 소중함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조선통신사가 파견되었던 그 시절 호혜9互惠0의 관계 돌아간다면 한일간의 모든 문제는 봄 햇살에 눈 녹듯 할 것입니다. 펼쳐진 부분은 부산 초량의 왜관을 그린 왜관도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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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의 공양왕고릉제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가의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가게 안은 참 별천지였습니다. 멀지않은 과거들이 그 안에 박재되어있었습니다. 세월이 느껴지는 오디오들과 미군불하물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쓰레기통으로 사용할 뚜껑 있는 미군용 양동이를 하나 샀습니다. 함께 갔던 일행이 구석에서 쌓아 논 지갑들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주인께서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지라했습니다. 두 분의 일행은 하나씩 골랐습니다. 저는 지갑을 잘 사용치 않으므로 갖지 않았습니다.

저의 행동을 보고 계시던 그 분은 선생님께 어울릴 만한 것이 하나있다면서 뒤쪽 선반에서 끈이 긴 작은 가죽 숄더백을 꺼내 제게 내밀었습니다. 오래된 가죽만이 낼 수 있는 그 중후함이 한 눈에 마음에 딱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서브용 카메라와 여분의 배터리와 메모리카드를 넣어 다니면 더 없이 좋을 크기였습니다.

"판다면 10만원을 받을 것입니다. 어쩐지 오늘은 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은 고양에서 '고물섬'이란 앤틱가게을 하시는 김상걸 선생님입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드라도 낼 수 없는 세월의 귀중함이 담긴 귀중한 물건을 공으로 건넸습니다.
▲ 세월이 밴 숄더백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드라도 낼 수 없는 세월의 귀중함이 담긴 귀중한 물건을 공으로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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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젊음을, 그러나 50대처럼 능란함이 넘치는 분이 오셨습니다. 광고대행사에서 PI(Personal Identity)전문가로 일하신다는 분이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삶의 가치와 그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모티프원을 떠나면서 본인이 저술한 책 한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킬링포이트>(북하우스 발행), 아무리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앞에 두어도 결국 상대를 굴복시킬 수밖에 없는 기획의 비밀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이 분은 광고대행사들의 숙명인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 대부분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보기획 총괄 부사장으로 계신 유재하 선생님입니다.

유재하부사장님은 MBC스페셜 '광고전쟁, 끝없는 생존게임'에 소개된 1등의 주역으로, 여성 광고학 박사 1호인 분입니다. 유재하 선생님의 모티프원 여행은 13살이나 아래의 후배이지만 친구로 교우하는 용기 있는 여성, 세라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세라는 올해 일본 국전에서 큰 상을 받았거든요. 인생의 깨달음이 담긴 아래의 유머는 그 세라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들려준 얘기입니다. "여자 나이 40이면 예쁜 년이나 못생긴 년이나 다 같고,50이면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다 같고, 60이면 돈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다 같고, 70이면 서방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다 같고, 80이면 산에 누운 년이나 방에 누운 년이나 다름이 없다."

이 말씀을 박찬욱 감독의 어머님인 심성구 선생님과 데이트(?) 중에 들려드렸드니 40이면 아직 자신의 피지컬한 아름다움에 대해 여전히 관심 있다며 그 나이를 10년쯤 뒤로 물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 킬링 포인트 유재하부사장님은 MBC스페셜 '광고전쟁, 끝없는 생존게임'에 소개된 1등의 주역으로, 여성 광고학 박사 1호인 분입니다. 유재하 선생님의 모티프원 여행은 13살이나 아래의 후배이지만 친구로 교우하는 용기 있는 여성, 세라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세라는 올해 일본 국전에서 큰 상을 받았거든요. 인생의 깨달음이 담긴 아래의 유머는 그 세라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들려준 얘기입니다. "여자 나이 40이면 예쁜 년이나 못생긴 년이나 다 같고,50이면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다 같고, 60이면 돈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다 같고, 70이면 서방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다 같고, 80이면 산에 누운 년이나 방에 누운 년이나 다름이 없다." 이 말씀을 박찬욱 감독의 어머님인 심성구 선생님과 데이트(?) 중에 들려드렸드니 40이면 아직 자신의 피지컬한 아름다움에 대해 여전히 관심 있다며 그 나이를 10년쯤 뒤로 물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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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벼룩시장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버님이신 박돈서교수께서 아주 중후한 다기 한 벌을 제게 그저 주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관이 빠져있었습니다. 사용하다가 깨졌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저희 서재에 오동나무 박스에 곱게 포장된 다기 한 벌이 놓여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박 교수님께서 주신 것과 동일한 도공이 만든 다기였습니다. 다관도 모두 갖추어진…. 나중에 그 다기 박스를 두고 가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내게는 몇 개의 다기세트들이 있는데 그냥 묵혀두기가 아까웠어요. 모티프원에는 손님도 많이 오곤 하니 나 보다 쓰임이 있을 것 같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값나 보이는 것을 드린 것이요."
그것은 헤이리의 전명현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차를 마실 때 마다 이 다기가 여기에 있게된 경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 다기 차를 마실 때 마다 이 다기가 여기에 있게된 경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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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꽃꽂이를 장식으로 활용하진 않지만 생명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화분을 내치지는 않습니다. 모티프원에 있는 대부분의 분재들은 모두 누군가가 제게 주신 것이며 그 중 많은 부분이 한 열정적인 할머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헤이리에 이사 오셔서 뜰을 가꾸고 화초를 돌보는 것이 인생의 큰 위안으로 여기는 분입니다. 그 분은 저를 만나면 정성스럽게 손수 가꾼 것 중 튼실한 것을 골라 하나씩 건네주시곤 하십니다. 그렇게 받은 것 중 저의 게으름으로 약해진 것을 되돌려 드리면 또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어 되주시곤 합니다. 수빈뜰의 이명희 여사입니다.

유양옥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한나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관심사도 다양하고 또한 각 분야마다 깊은 식견을 갖고 계신분이라 이 분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의자 위에 놓인 캔버스를 보시고 즉흥적으로 저의 얼굴을 그리셨습니다. 아직 미완성이라며 두고 가셨습니다. 이 분의 명성을 아시는 분이라면 이처럼 쉽게 그림을 그려주기가 쉽지않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임배환 목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맥주가 동이 나도록 밤이 이슥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달쯤 뒤 이 부부가 다시 오셨습니다.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한 새집이 넓지 않으므로 제가 가진 원목 나무의자들을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사 가기 전날 그것들을 저희 집에 옮겨놓았습니다.
"오래된 기와에 키우던 난도 함께 있었던 것이니 선생님이 맡아야 옳습니다."

이웃마을에 사시는 답초께서 한 번 올 것을 청했습니다. 가을에 통통하게 살이 올랐을 미꾸라지를 논에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직접 잡은 민물 게를 넣고 10년 넘게 묵은 된장을 풀어 끓인 추어탕을 앞에 두고 '탁탁' 모닥불 타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떠날 때 답초께서는 직접 통나무를 파서 홈을 만들고 아래에 작은 다리를 달아 놓은 통나무홈을 차에 실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모티프원 서재의 책상위에서 모든 필기구를 품고 있습니다.

모티프원의 예쁜 방명록 몇 권은 소엽선생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예쁜 노트가 생기면 제게 가져오곤 하십니다. 모티프원을 방문하시는 소중한 분들이 글을 남기는 방명록으로 쓰이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끼니때가 되면 간혹 전화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밥 드시러 오세요."
제가 주로 혼자 있고, 끼니에 별로 신경쓰지않는다는 것을 아시는 코지하우스의 유해분 선생님은 제가 끼니를 건너뛰는 것을 몸씨 가슴아파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사는  "밥 드시러 오세요"입니다.

야초스님이 오셨습니다. 떠나실 때 테이프로 동여맨 봉투하나를 차에서 내려 저의 처에게 건넸습니다. 고구마 봉투였습니다. 어느 보살이 보시했을 고구마를 배즙 두 봉지와 함께 모티프원에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헤모와 헤라와 함께 산책 중 빈우당의 김경중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자 꼼짝 말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시더니 쇼핑백봉투를 들고 나오셔서 제게 내밀었습니다.

"아시는 분 중, 민통선안에 과수원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지난봄에 배나무 두 그루를 우리 몫으로 주셨습니다. 지난봄과 여름 몇 번가서 나무를 돌보았더니 배가 제법 달렸습니다. 자랑삼아 드립니다."
그 봉투 안에는 아기 머리만 한 배 네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안상규 화백께서 요즘 부쩍 최치원의 시를 자주 암송하시곤 합니다. 시화로도 그려 두셨습니다.

"주머니속 넉넉하면 술 한 잔 사주게나
나도 돈 생기면 자네 술 사줌세
늬였늬였 서산에 해걸리면
안고갈거요 지고갈거요"
▲ 최치원의 시 안상규 화백께서 요즘 부쩍 최치원의 시를 자주 암송하시곤 합니다. 시화로도 그려 두셨습니다. "주머니속 넉넉하면 술 한 잔 사주게나 나도 돈 생기면 자네 술 사줌세 늬였늬였 서산에 해걸리면 안고갈거요 지고갈거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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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벗님, 안상규 화백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술자리에 함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공영석 선생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는 곳이 있습니다. 겨울이 눈앞이므로 오늘 그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겨울용 잠바를 8천원에 사고, 바지도 만원에 샀습니다. 그러데 가죽으로 된 마도로스용 모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안 선생님께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 선생님께서 가신 곳은 금산리 삼거리길 옆의 중고 옷가게입니다. 그곳에서 공 선생님은 안 선생님을 생각했고 그 모자를 전하자 안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기억해주신 그 성의에 감읍해서 소주를 세 병째 비우고 계셨습니다.

소주자리가 끝날 쯤에 정성운 사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모티프원에 와 계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자 최효수 사모님은 모티프원을 불쑥 찾아오신 게스트를 안내하고 계셨습니다.

"천안에 출장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길가에서 촌로가 파시는 홍시가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몇 개 가져왔습니다."

정 사부님 부부는 먼 길 다녀오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 홍시를 제게 전하기 위해 어두운 저녁시간 차를 돌리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최효수 사모님은 새로운 출판사의 사장님입니다. 요 근래에는 출장이 잦은 편입니다. 저는 김경중 선생님께서 주신 배 2개와 야초스님이 주신 고구마를 봉투에 담아 들려 보냈습니다.

공주님이 귀한 분이라며 지혜가 가득한 분으로 보이는 할머님 한 분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저의 책상위에 있던 일력에 자꾸 눈길을 주셨습니다. 그 일력은 숙대 자수박물관의 소장품을 곱게 찍어 우리 선조들의 규방문화를 하루에 한 장씩 감상케 한 365장짜리 달력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력이 그 어른에게 더 값지게 쓰일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지나간 사진들까지 챙겨서 내밀자 더 없이 기뻐하셨습니다. 그 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자 제 마음이 더 기뻤습니다.

소엽 선생님은 중견 서예가이십니다. 선생님을 스스로를 메뉴작가라고 할 만큼 마음에 드는 식당의 메뉴까지 쓰서 선물하시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않으신 대가로 전국에, 아니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친구를 얻었습니다. 그 분은 제발 한 번 방문 해달라는 그 친구들의 성화에 답하는 것으로 여생을 다 보내도 시간이 모자랄 판입니다.

저는 사진 찍는 것을 즐깁니다. 제가 즐거운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잘 압니다. 저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까지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제 카메라가 아무리 자주 병원을 출입하드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나눔보다 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저의 웹사이트 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되었습니다.



태그:#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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