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8년 전 어머니가 아들의 중학교 입학선물로 영어사전, 국어사전, 옥편을 사준 그 곳.

인천 중구와 동구를 두 동강내 정겨운 마을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1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심 주택가를 쓸어버리고 화물트럭을 다니게 할 목적으로 50m폭으로 건설중인 산업도로로 망가지고 파헤쳐진 그 곳.

인천 중구-동구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 배다리 마을 주민들이 싸우고 있다.
 인천 중구-동구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 배다리 마을 주민들이 싸우고 있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바로 인천시 동구 서남쪽에 있는 금곡동 13번지에 자리한 헌책방 거리, 배다리입니다. 배다리는 옛날에 수문통이라고 해서 송현동에서 갯골을 따라 물길이 들어왔고, 그 물길을 오가는 배가 닿는 곳에 다리가 있어 "배다리"로 불렸다 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송림동 삼익악기 공장 옆 인천교 아래로 갯골이 있었고 그곳으로 바닷물이 오가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매립(인천의료원이 있는 자리)되어 물길을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만큼 예전 배다리에도 물길이 오갔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1883년 제물포항의 개항 이후 일본.미국.중국.영국 등 열강들이 조선의 자원수탈을 위해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각국의 조계지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그 땅에 원래 살던 주인인 조선인들은 강제로 외세인들에게 삶터를 빼앗기고 쫓겨나야 했고 그 외세인들이 만든 신작로(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와 부락 중 하나가 바로 "배다리"라 합니다. 개항장이 형성되자 조선의 각지에서 일거리를 찾아 부두를 찾아온 조선인들이 개항장 안에서는 살 수 없어, 그 주변에 자리를 잡아 마을을 형성했다고도 합니다.

인천의 역사와 추억이 어려있는 배다리 삼거리 일대에는 헌책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인천의 역사와 추억이 어려있는 배다리 삼거리 일대에는 헌책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 네이버지도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인천의 역사와 민중들의 고된 삶이 살아있는 배다리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헌책방 골목입니다. 가난한 학생들이 헌책을 구하기 위해 찾거나 책방에 책을 팔러오기도 했던 골목으로,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 리어카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 들면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공부 좀 했다는 학생들은 한번씩 찾아봤을 추억의 골목입니다.

그런데 인구가 5000명도 채 안되는 작은 마을과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헌챙방 골목을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과 동인천 북광장 개발사업 등 주변의 개발압력으로 인해 옛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배다리 마을사람들은 사라져가는 인천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헌책방 서점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도 벌이고, 산업도로 반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일(30일) 옛 인천양조장(스페이스 빔 1층 우각홀)에서는 '배다리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_지역통화 '띠앗' 출범식'도 열린다고 합니다.

관련해 자전거를 타고 둘러본, 고즈넉하고 쓸쓸한 배다리 삼거리와 헌책방 골목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관련 사이트 :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http://www.vaedari.net/



태그:#배다리, #헌책방, #자전거, #배다리삼거리, #인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