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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모양을 한껏 낸 아이들이 단풍과 잘 어울린다.
 제각각 모양을 한껏 낸 아이들이 단풍과 잘 어울린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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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단정한 교복보다 평상복을 좋아한다. 제각기 멋을 부릴 수 있어서다. 소풍날(23일), 아이들은 아끼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예쁜 옷을 입고, 작은 가방에 과자와 해맑은 웃음까지 가득 담아 왔다. 지각생은 어디에나 있는 법. 250여 명이 애타게 기다리고 담임선생님 손전화가 부지런을 떨고 나서야 한 녀석이 허겁지겁 나타났다. 이제 출발이다.

아이들은 자유롭다. 버스 좌석의 안전띠마저도 속박이다. 앞뒤로 오가며 두어 번의 실랑이가 끝나고 나서야 의자에 몸을 묶는다. 입과 귀는 따로 논다. 귀에서는 음악이 쟁쟁거리고 입으로는 옆자리 친구와 수다를 떤다. 모니터에 보이는 영화는 잠시 눈을 쉬어가는 간식거리쯤으로 여긴다. 고속도로를 지나 지방도와 한참 공사 중인 구불거리는 국도를 지나니 보이는 것이라곤 산등성이 사이로 뱀처럼 구불거리는 개천과 개천을 따라 흐르는 길이다.

섬진 댐은 협곡을 이룬 산 사이를 가로질러 물을 멈춰 세웠다. 극심한 가뭄이지만 가을을 물리치진 못했다. 가파른 산봉우리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켜켜이 가뭄의 흔적을 기록한 댐 가장자리 언덕과 붉은 빛으로 변해가는 산등성이가 화려하다. 오랜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어제는 비가 내렸다. 아이들의 설렘 때문인지 한두 방울 흩뿌리는 빗방울이 그리 밉지는 않다.

이번 소풍 장소는 전북 임실 치즈피자마을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피자와 스파게티 만들기, 경운기 타고 섬진 댐 일주하기, 소달구지 타기, 송아지 우유 먹이기, 풀썰매 타기, 그네 타기 등으로 다양하다. 일곱 학급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없다. 두 세 학급씩으로 모둠을 나누어 순환하도록 했다.

점심을 준비하며 치즈 피자 만들기을 배운다.
 점심을 준비하며 치즈 피자 만들기을 배운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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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스파게티는 아이들의 점심이다. 제공되는 재료를 가지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다. 아이들은 신났다. 각양각색의 모양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제 먹을 것이니 재료를 몽땅 쏟아 넣는다. 좀 시끄러워도 좋다.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선생님들도 자기 점심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마을 할아버지의 구수한 소몰이 강의
 마을 할아버지의 구수한 소몰이 강의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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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구지는 이제 좋은 놀이터다.
 소달구지는 이제 좋은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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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구지가 그린 가을 풍경
 소달구지가 그린 가을 풍경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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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움은 마음이다. 달구지를 끄는 암소는 참 잘 생겼다. 멍에를 지고 코뚜레를 달아 놓았지만 맑고 투명한 눈망울은 단번에 아이들을 다가오게 한다. 마을 할아버지의 구수한 소몰이 강의에 아이들은 목청을 높여 따라한다.

"이랴! 자라자라! 이리 이리! 물러!"

할아버지의 구수한 설명을 따라 해보지만 어디 아이들의 장난스런 말을 나이 든 암소가 쉽게 들어 주겠는가? 악을 써보지만 꿈쩍도 않는 소 때문에 할아버지만 혼났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고삐를 쥐면 묵묵히 움직인다. 소달구지를 타는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즐겁다. 울긋불긋 물든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소달구지, 할아버지와 함께 정겨운 가을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네타기 - 생각만큼 잘 올라가지 않아요.
 그네타기 - 생각만큼 잘 올라가지 않아요.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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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매달린 그네는 놀이터 그네와 다르다. 웬만큼 용을 써도 도통 올라가지 않는다. 친구가 끌어주고 밀어주어야 조금 움직인다.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멈추기도 어렵다. 둘이서 함께하면 더 좋다.

이제 경운기 타기다. 마을 어른들 네 분이 마당에 경운기를 도열했다. 경운기 타고 여행한다면 질색할 일이지만 한적한 산골 호숫가를 산책하는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장난기 어린 몸짓도 경운기 소리가 모두 가려준다. 귀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눈만 바쁘다. 지나는 길목에 보이는 단풍과 억새, 작은 들국화들, 잎이 다 떨어지고 몇 알 남은 붉은 감들이 눈을 행복하게 한다. 엉덩이가 얼얼하지만 한 바퀴 돌아 마당에 들어서면 아쉽다.

풀썰매 타기가 남아 다행이다. 짧은 경사를 오르내리며 타는 썰매는 보기보다 흥겹다. 부딪치고 넘어져도 좋다. 예쁜 선생님도 흥겨워 보였는지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탄다. 하기야 풀썰매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탔으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거운 놀이인가 보다.

경운기 타기
 경운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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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썰매타기, 선생님도 함께 하셨답니다. 선생님을 찾아보세요.
 풀썰매타기, 선생님도 함께 하셨답니다. 선생님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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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교실과 다르다. 교실에서처럼 풀죽은 친구도 없고,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는 석차도 없다. 다툼도 설움도 없다. 수다와 정겨움이 넘친다. 아이들이 제각각 만드는 가을의 풍요로움이 있을 뿐이다. 느리게 걷는 암소의 여유로움, 쉽게 움직여 주지 않지만 정성을 들인 만큼 움직여 주는 그네, 딸딸거리는 경운기의 시끄러운 소음까지 품어주는 산골짜기 단풍들과 남겨진 감을 쪼는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하다. 정성 들인 만큼 움직여 주는 그네에서 아이들은 생활의 셈법을 배운다. 시끄럽게 소리 내며 덜컹거리는 경운기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넓은 가슴으로 품었다.

억새는 산등성이에서 바람과 함께 어울린다.
 억새는 산등성이에서 바람과 함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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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삶의 활력소일 수도 있지만 여유로움 속에서 묻어나는 기꺼운 마음을 죽이는 독약이다. 비록 경쟁이 인류의 물질문명을 풍요롭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하는 행복을 앗아가는 원흉이다. 나누고 함께하는 세상은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비정한 경쟁으로 생산된 풍요로움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삶은 사람들이 어울려 걷는 산책길과 같은 것이다. 달리기 경주가 벌어지는 운동장의 벌건 트랙이 아니다. 함께 어깨 걸고 도란거리며 가는 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도 힘들면 기댈 어깨를 내주며 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앞서 가는 녀석의 뒷모습만 보거나, 뒤에서 나는 거친 숨소리가 두려움으로 다가서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어깨 걸고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이 행복이고 사랑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깨를 나누고 힘든 친구와 언덕배기에서 함께 앉아 도란거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모처럼의 가을 여행이 끝났다. 좁은 콘크리트 교실이다. 가을 동화를 쓰던 아이들의 해맑은 눈들이 벌써 눈꺼풀 속으로 숨는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먹는 새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먹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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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에게 우유먹이기
 송아지에게 우유먹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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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소풍, #농촌체험, #임실치즈피자마을, #소달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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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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