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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도 빼먹는다더니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간혹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이 땅에서 잘나가는 엘리트 계층에 속한 사람들 중 무려 4만여 명이 재태크를 하겠다는 구실로 벼룩의 간을 시식했다고하니 출세를 위해서는 양심이나 염치 같은 것은 접어 두는 것 쯤은 적어도 한국사회의 엘리트집단에게 있어서는 낡은 명제가 되고 말았다. 이쯤이면 '양심이나 염치를 챙기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는 출세할 수 없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쌀 직불금을 챙긴 것이 문제가 되서 사퇴한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차관이 "이번 일을 계기로 직불금 제도가 개선돼 실제 가난한 농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사퇴 소감은 가관이다 못해 실소가 절로 나온다. 4천억원의 불법 비자금을 은닉한 것이 드러나자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가겠다."며 마치 순교자라도 된 듯 회견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뻔뻔함을 뺨치는 수준이다.

 

안그래도 성난 국민을 더욱 분통터지게 하는 뻔뻔한 해명의 배경에는 '나만 해 먹은 것이 아니다'거나 '공직사회의 오랜 관행'이라는 그들 나름대로의 변명거리가 있다.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탈세 등 오늘날 불법이나 탈법으로 지탄받는 행위들이 이제까지 한국 엘리트 사회에서는 재테크를 위한 가장 통상적인 수단이었으므로 '어느 정도는 묵인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항변이다. 이것은 잘 나가는 사람치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뜻 이기도 하며 직불금 수령자 명단에 끼지 못한 공직자는 오히려 팔불출로 놀림감이 되야 할 판이니, 무능해서 청렴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과 서민들은 반성할 지어다. 

 

 '쌀 직불금'이라고 불리는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금 제도'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책정한 기준가격이 너무 낮았던 관계로 정작 농민들은 '실익이 별로 없다'고 하여 많은 농민들이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고 일부 농민단체에서는 사업 자체를 거부했던 제도였다. 농민을 위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을 농민들이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 한해 실시한 이 제도를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기 위한 재테크의 수단으로 알뜰하게 활용한 순발력있는 공직자가 4만명이나 된다니 놀랍다. 역시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 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니 이 땅의 서민들은 반성할 지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이 사건의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투는 꼬라지는 성나 활활 타오르는 농민의 가슴을 아예 숯이 돼어버리라고 부채질 한다.

 

사건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정작 농토의 주인이 되야 할 농민들을 제쳐놓고 불법으로 농지를 매입한 투기꾼들이 탈세를 위해 혈세를 수령한 것이 문제이며,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부정을 저지른 것이 문제이며, 소위 개혁세력의 집권기에 시행한 정책에서도 여전히 공직자들이 부정에 대거 개입했다는 것이 문제이며, 공직자의 기강을 세워야 할 감사원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 문제이며, 불법행위자들이 고위 공직에서 활개치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사건을 보고 받고 '격노' 했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청렴하다? 본인만 청렴하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물로 본거다. 작년에 발생한 사건이니 책임은 전 정권에게 있다?

 

정녕 이 정권이 쌀 직불금 수령문제가 우리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척결해야 할 유일한 비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투기나 탈세는 곧 국민의 주머니를 훔치는 범죄이다. 현 정권의 대통령부터 고위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어도 양심이란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신들은 모두 입을 닫으라는 얘기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재테크라는 미명하에 불법 탈법 투기를 일삼은 것은 능력이 아니라 범죄였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돌아가야할 혜택을 가로챈 행위가 벼룩의 간을 빼 먹은 파렴치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이 일은 단지 한국 엘리트 집단의 도덕적 불감증을 드러낸 빙산의 일각일 뿐 이다.

 

직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 시장을 기웃거려 재산을 불리는 범죄행외를 '재 테크'라고 강변하는 공직자의 썩은 의식에 찬물을 끼얹어 씻어주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쌀 직불금, #공직자의 도덕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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