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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좌석의 오페라홀이 가득차고 50분의 공연시간에 41번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와 올 여름 오사카, 우베, 도쿄 등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20일간 12회의 순회공연이 끝난 후 일본에서 150여명의 풍물패 회원이 자연적으로 생겨 가르치는 선생을 일본에 파견했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문제로 시끄러운 민감한 시기에 공연을 본 일본인이 "어려운 시기에 넓은 마음으로 일본에 은쾌히 와 준 것이 고맙다. 일본이 잘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며 일본이 지난날 한국에 대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일본을 대신하여 사죄를 청한다"며 눈물을 흘렀다.

 

이것은 올해 여름 마당극 전문 극단인 '큰들'이 일본에서 일으킨 사건이다. 이런 전설적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유명한 가수나 서양뮤지컬, 대형오페라가 아니라 한국의 토종 마당극이란 사실에 놀람과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마당극이 일본사람을 울리다니. 거, 희한하네.

 

도대체 극단 '큰들'이 어떤 단체인지, 어떤 마당극을 공연하길래 일본에서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18일 저녁8시, 마침 '큰들'의 우수마당극 퍼레이드가 진주성 야회공연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있어 '기회다 싶어' 성급한 마음에 조금 일찍이 발길을 그 곳으로 옮겼다. 

 

공연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하니 극단 단원들이 산에 푸른 나무와 연분홍 꽃이 그려진 무대를 세우고 음향기기를 한창 점검하고 있는 중이다. 공연장 좌석에 앉아 있으니 모자를 쓴 젊은 여성이 팜플렛을 들고 다가와 "어제도 마당극 했는데 오늘 8시에도 합니다. 넘 재미있어요. 꼭 보세요"라며 이쁜 미소와 함께 팜플렛을 친절히 건네주고 갔다. 공연장 앞쪽에는 관객들의 엉덩이에 흙이 묻지 않도록 길게 이어진 푸른색의 자리를 깔고 있다. 무료공연인데도 관객들을 위한 극단의 배려가 세심하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플래카드를 설치하기 위해 양쪽에서 끈을 당기고 있던 남자의 엉덩이가 음악리듬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흔들 실룩거린다. 신난 모양이다. 철제로 조립된 크고 무거운 조명을 옮기는 중에 "어~어~ 조심하고. 넘어질라" 소리쳐도 웃음이 나오고 활기가 넘친다. 소품인 배에 돛대도 달고 배우들이 나와 악기에 반주를 맞춰가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배사공~" 노래를 부르며 사용할 마이크를 최종 점검한다. "저음이 좀 약하네. 소리가 확 트이지 않아요"라며 조율을 하다가 "오케이! 됐습니다"는 사인이 음향팀에서 나오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엥, 관객이 아니라 출연할 배우들과 단원들이 먼저 신나서 난리다. 준비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조명이 켜지고 500여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빙 둘러 앉았다. 드디어  시작이다. 조금은 재빠르게, 건들 건들 각설이의 웃기는 몸동작과 현란한 말솜씨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어중간하게 박수를 친다. "아따, 박수를 칠려면 제대로 치야제"하며 각설이가 양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까딱거리자 신기하게도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댄다. 분위기가 초반부터 배우들 의도대로 흘러간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던 어부 두명이 어떤 아주머니 관객에게 다가가 한 어부가 "어, 이거 인어같은데"라고 하자 다른 어부가 "그거 인어 아니다"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 느닷없이 아주머니 관객이 "저 인어맞아요!"라며 끼어들자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럼 함 벗겨보자"는 배우의 추임새에 관객들은 너무 웃겨 뒤로 넘어간다. 진주성에서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 든 의로운 영혼 논개님도 오늘은 '큰들'의 마당극을 보시고 환한 웃음을 지었으리라. 

 

 

배위에서 화투판이 벌어졌다.

 

"났다 났어."

"뭐가 났노. '청단'이 났나 '홍단'이 났나?”

"'분단'이 났다"

 

화투판에서 재치있는 말로 남과 북의 전쟁과 3.8선을 단박에 설정하는 모습에서, 전쟁으로 부인과 헤어지게 된 어부가 노인이 되어 아들 며느리와 더불어 금강산 관광을 할 적에 북측 여성 안내원이 나와 "금강산에서는 비로봉, 장군봉, 옥녀봉...등 10대 절경이 있습니다. 근데 요즘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게 뭔냐면 바로 '상봉'입니다"는 말솜씨에서도 슬며시 배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거 참, 잘하네'라는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금강산 관광에서 노인이 자신의 마누라 사진을 북측 안내원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노인이 30대 남성 관객과 50대 여성 관객에게 다가가 "이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묻자 "안면이 있는것 같은데요", "좀 본 것도 같네요"라고 응대하는 모습에서 관객과 배우가 하나가 되어 서로 어울려 즐기는 마당극의 진수를 보는 듯 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전쟁으로 부인과 헤어지게 된 노인이 마누라를 잊지 못하고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줄려고 꽃고무신과 선물을 싼 보자기를 매일 만지작 거린다.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노인에게 구박을 하자 "이제 내도 갈란다"며 배위에서 자살하려고 하자 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북쪽에 어머니가 살아계신다고 합니다"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슬픔에 젖어 있던 관객들의 기쁨의 박수소리에 공연장이 들썩거렸다.

 

이렇게 시간은 재미있게 흘러 마당극 공연이 아쉽게도 끝을 맺었다. 진주에 사는 하은정(23)씨는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공연이 있으면 티켓을 사서라도 꼭 보고싶네요"라는 소감을 밝혔다. 극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전쟁으로 헤어진 노인과 아내가 서로 만나는 장면"이라고 대답하는 아가씨의 말에 오늘 공연을 본 관객들 대부분이 동감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순간 순간의 재치와 추임새,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마당극이면서도 깔끔한 진행이 돋보이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면서도 '찡'한 감동과 눈물이 있는, 현란한 몸짓과 말솜씨, 실력으로 무장된 배우들의 연기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놀이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극단 '큰들'의 마당극 '순풍에 돛달고'는 오래만에 만끽하는 즐겁고 흥겨운 잔치상이었다. 이번 진주성 마당극을 보고 일본순회공연중에 일어난 일들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극단 큰들, #순풍에 돛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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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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