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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진도리 친환경농업마을 - 녹색농촌체험마을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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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이는 마을이 1천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각종 보조금, 지원사업비의 명목을 붙인 나랏돈을 받아 벌이는 판이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큰 돈이 전국 방방곡곡에 뿌려지고 있다. 저마다 '농촌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과 목적을 내세운다.

하지만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마을 원주민들이 '마을 만들기 사업판'에서 주인 노릇을 하기는 쉽지않다. 태생적으로 농사가 주특기인 마을 사람들은 행정에서 요구하는 마을 만드는 방법과 기술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을 주민들이 마을만들기 일을 주도적이고 창조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인력을 양성해보려는 다종다양한 농촌지역개발 교육프로그램은 연중 상시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마을만들기 일이라는 게 새삼 서둘러 배운다고, 넘치는 의욕만 가지고 능히 잘 해낼 수 있는 만만한 일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마을만들기 사업 판은 그저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지침과 양식대로 외부의 전문개발업자 또는 컨설팅업체들이 주도하고 계도하는 하향식·일방적 역학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 있다. 이토록 제한된 경험과 편협한 역량에 갇힌 공무원이나 업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마을발전 계획서를 찍어내고, 식상하고 을씨년스러운 '제2의 새마을'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말 농촌지역개발에 참여하는 컨설팅업체의 등록제를 실시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최대 70억원 규모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컨설팅업계의 부실컨설팅 사례와 폐해가 심각하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농촌지역개발 일을 제대로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컨설팅업체를 가려내겠다는 정책목적을 노린 것이다. 농촌지역개발 사업을 벌여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지켜보려는 농민들로 하여금 더불어 일할 좋은 업체를 고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역시 제도일 뿐, 현실은 또한 엄연한 현실로 여전히 남아있다.

문제는 마을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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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 부래미마을 -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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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제도와 지침마다 마땅히 농민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 계획부터 세우고 사업도 꾸려가도록 규정하고 명시해놓고 있다. 하지만 평생 농토에만 매달려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민들은 사업지침대로 그런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농민들은, 심지어 '필요악'으로까지 부르는 일부 농촌지역개발컨설팅업체와 엮일지도 모르는 우려를 안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설사 더불어 일하기 원하는 마을만들기 일꾼이나 업체가 있다고 해도 오로지 마을 주민들 뜻대로 업체를 선택하지 못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할 업체를 정하려면 경쟁입찰이라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일을 잘 할 수 있는 업체보다 입찰경쟁에서 이기는 기술과 방법론이 뛰어난 업체들이 일을 맡게되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이다.

이같은 일부 마을만들기 컨설팅업체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농업이나 농촌이라는 화두를 크게 고민하고 연구해보지 않아 전문성과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농업과 농촌을 잘 모르고, 애정과 열정을 투자해본 적이 별로 없는 업체들이라는 말이다.

결국 이같은 농촌지역개발컨설팅 업계의 문제가 농촌지역개발 사업의 정책목적과 가치, 나아가 농업과 농촌의 터전이 크게 훼손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관련 업계와 농촌에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주로 생태, 환경, 조경, 관광, 건축, 도시계획, 농학 등을 학교에서 공부한 대부분의 농촌지역개발 컨설팅 업체와 전문 컨설턴트들은 생업 이상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 돌아오는 농촌, 살맛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마을도우미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들 위해 일하고 있는 대다수 마을만들기 일꾼들의 진정성과 자긍심을 지켜주고 살려주는 게 정부가 펼치는 마을만들기 정책의 사업적 효과와 가치를 높이는 열쇠라 할 수 있다.

본디 '마을 만들기'란 일의 속성 자체가 신이 아닌 한낱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만족스럽게 잘 해내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일거리다.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지난한 일로 여겨질 때가 많다. 마을과 마을 사람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와 깨달음이 없다면 선뜻 나서서 맡아하기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으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는 것은 물론, 그전에 농업과 농촌, 무엇보다 농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으면 능히 해내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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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 문당리 친환경농업지구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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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마을만들기 사업시행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모습대로, 오로지 건축하거나, 조경하거나, 교육하거나, 정보화하거나, 체험관광하는 곳이 아니다. 마을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체험용'이나 '관광용 마을'이 아니라, '생활용'이자 '생업용' 마을이어야 마땅한 것이다.

다행히 비판과 반성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대안 사례들이 차츰 나타나고 있다. 농촌마을 주민들이 주도적이고 내발적으로 계획하고 개발하는 상향식, 쌍방향식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도시 귀농인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하는 생태적인 기획 전원마을 등이다. 마을 문제를 우선 사람으로부터 풀어보려는 마을사무장 제도도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1차 농업을 뛰어넘어 2차 농식품 가공을 아우르고, 마침내 도·농 직거래, 도·농 문화교류 등의 도·농 상생프로그램을 마을 만들기 사업의 중심에 놓으려는 진취적인 사례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계획의 목표가 체험용 마을인지, 생활용 마을인지, 어떻게, 어디까지 하겠다는 속셈인지 구체적인 사업목적과 궁극적인 지향점이 뚜렷하지않은 마을이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고 명쾌하게 던져줄 정답은 아직 없는 듯하다. 이럴 때는 처음으로,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 살피는 것도 좋은 해법이다. 정부에서 주로 펼치고 있는 각종 '마을 만들기' 사업의 내부와 이면을 새삼 들여다보자. 그리고 ‘마을로 가는 길’의 구체적인 대안과 실증적인 해법은 없는지 짚어보자.

‘체험’ 말고 ‘생활’하는 마을로

흔히 쓰고 있는 ‘마을 만들기’란 용어는 일본의 ‘마찌 츠쿠리’에서 비롯되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관련 정책과 제도는 일본이나 유럽 등 농촌개발 선진국의 벤치마킹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가꾸기, 또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는 시각과 임하는 방법에 따라 제2의 새마을운동, 도시계획의 연장, 대안 지역사회 운동, 오래된 미래같은 전통 공동체의 복원 등의 모습과 활동으로 실천되곤 한다.

전체주의적인 ‘새마을운동’조차 민간주도의 지역사회개발운동, 지역사회공동체의 생활운동을 지향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 이래 대한민국 정부의 마을 정책은 획일적 하향식 정부주도 사업시스템에서 맞춤형 민간기획 또는 상향식 주민참여 사업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마을 계획 또한 물리적 하드웨어(H/W) 공간계획 중심에서 문화적 소프트웨어(S/W) 운영계획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시작은 타당성 검토와 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지한 사전검토와 사업구상도 없이 감당하지 못할 사업을 선뜻 받아 곤경에 처한 마을이 한두 곳이 아니다. 타당성 검토가 결여된 마을사업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로 작용한다. 주요 사업, 인력 등 사업 조직, 농지 등 토지 활용, 자연과 공동체 등의 환경영향 등을 사전에 철저히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은 자원조사이다. 그 마을의 정체성을 규정할 자원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원의 총합은 결국 농촌의 경쟁력을 담보할 어메니티(Amenity, 농촌다움)를 이룬다. 대기, 물, 토양, 기후, 지형, 동물, 식생, 환경 등의 자연환경 자원, 그리고 문화재, 전통건축물, 마을 구조물·상징물, 유명인물, 풍수지리, 전설, 축제, 놀이, 음식 등의 역사문화자원을 공을 들여 조사하고 발굴해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마을만들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농업경관, 산림경관, 수경관, 마을경관, 공공기반시설, 농업 등 산업시설 같은 경관시설자원도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잘 짜여진 계획서나 넉넉한 사업비가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인적 자원이 부족한 농촌마을에는 사람의 중요성이 배가된다. 사람만이 미래 농촌의 희망이다. 기획, 사무, 농업, 교육, 체험행사, 전통공예, 식품조리가공, 정보화 등의 일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면 마을 만들기는 할 수도 없고, 아예 시작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야말로 성공적인 마을 만들기를 위한 최고의 자원이다. 동호회, 행사, 관혼상제부조, 친목계, 품앗이, 작목반, 협의체, 씨족, 마을관리규범 등.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함께 뭉치고 서로 어우러져야 비로소 쓸모있는 힘이 된다.

이같은 자원의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중장기 마을발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일찍이 충남 홍성의 문당리 같은 경우는 마을 주민들 스스로 돈을 모아 외부 연구소에 마을발전계획 수립 용역을 맡겼다. ‘생각하는 농민, 준비하는 마을’을 슬로건으로 한 이 100년 계획을 금과옥조삼아 차근차근 마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다. 마을마다 100년 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5년 내지 10년 계획은 세워두는 게 옳을 것이다.

우선 마을의 하드웨어 설계는 공원 등 경관 개선, 주택 등 기초생활시설, 소득기반시설, 정주기반정비, 하천, 산림 등 환경 보전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 개발은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연체험, 농사체험, 전원생활체험, 역사문화체험, 건강보건체험, 만들기체험, 레포츠 체험 등 다양한 농촌체험프로그램들이 개발, 시행되고있다. 이때 다른 마을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그 마을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다.

이른바 소프트웨어 사업은 날로 비중과 가치가 커지고 있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경우에는 전체 사업비의 10%에 달하는 수억원의 사업비가 책정될 정도다. 마을활성화 또는 발전 컨설팅, 주민역량강화 교육 및 선진지 견학, 브랜드 개발 등 홍보· 마케팅, 홈페이지 개발 등 정보화 분야가 주요 사업과제로 진행된다.

타당성 검토, 자원조사 및 분석, 하드웨어 설계, 소프트웨어(프로그램) 개발 등 일련의 마을만들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마을들은 방법론과 지향점에 따라 몇가지 마을로 분류할 수 있다. 굳이 ‘생태마을’로 분류할 수 있는 경우는 초기부터 주로 대학 연구소, 관련 시민단체 등이 개입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도가 높았던 홍성 문당리, 무주 진도리, 양평 명달리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귀농인들이 모여 스스로 투자하고 계획한 귀농공동체마을로는 산청 갈전교육생태마을, 무주 광대정마을, 함양 청미래마을, 장수 하늘소마을, 영주 에듀코빌리지 등을 들 수 있다. 진안 새울터마을, 서천 산너울마을, 남원 지리산작은마을 등 주로 건축이나 경관 엔지니어링 업체가 설계하고 시행하는 전원마을도 도시민들의 생태적 삶의 터전으로 거듭 나고있다.

정부가 지원하고 농촌지역개발컨설업체가 계획을 주도한 전형적인 농촌체험마을로는 진안 능길마을, 화천 토고미마을, 이천 부래미마을, 단양 한드미마을, 남해 다랭이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2002년도에 첫 시행한 녹색농촌체험마을조성사업 1세대인 이들 마을은 이른바 선도마을 또는 스타마을로 불리며 정보화마을, 농촌전통테마마을, 팜스테이, 산촌생태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등의 후속, 연계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혜, 추진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밖에 마을을 넘어 지역 단위의 광역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신활력사업,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등의 사업이 농림수산식품부, 행정안전부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마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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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능길마을-으뜸마을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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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만들기 또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은 마땅히 농정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 에서 거의 총괄한다.

우선 2017년 까지 전국의 1천여 권역에 5조800억원을 들여 농촌을 종합적으로 개발하려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농촌지역개발 사업 판을 견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일한 생활권이나 영농권 등으로 동질성을 가지며, 발전 잠재력이 있는 1개리 이상의 법정리 마을들‘을 묶고 엮어 소권역단위로 개발하려는 사업이다. 마을주민들이 직접 예비계획서라는 주민제안서를 작성해 신청하는 상향식 추진방식이다. 하지만 마을주민들 스스로 작성하기는 힘에 겨운 작업이라,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외부의 전문가나 업체, 또는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수고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농촌 주민들의 최우선 숙원사업인 소득기반 확충 사업분야에 자부담 20% 조건으로 사업비를 투자하는 게 특장점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주민 자부담으로 인해 소득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기본계획 수립, 지역역량강화(S/W)사업에는 농촌지역개발컨설팅등록업체로 불리는 외부용역업체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공동화되고 있는 농촌지역에 도시민 유치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원마을 조성사업’도 2013년까지 총 300개소를 목표로 개소당 10~30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해 추진중이다. 주거환경의 편리성과 쾌적함 못지 않게 마을의 공동체 형성도 사업의 주요 성과물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2002년도 시작, 가장 널리 시행된 마을만들기 사업인 '녹색농촌체험마을 조성사업'은 마을당 2억원의 사업비를 투여해 1~2년간 친환경적인 체험마을을 조성, 농촌체험관광(그린투어리즘)을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유사한 사업으로 볼거리, 먹을거리, 쉴거리, 체험거리, 놀거리, 살거리, 알거리 등 마을 고유의 테마와 부존자원 발굴 등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 개발에 사업을 집중했던 농촌진흥청의 ‘농촌전통테마마을사업’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완료되었다.

대신 농촌진흥청에서는 마을당 3년간 1억5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노년층 구성비가 특히 높은 마을을 대상으로 한 ‘농촌건강장수마을’을 2011년까지 800개소 목표로 추진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마을 지원정책을 주도하려는 행정안전부도 ‘정보화마을’,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등의 사업을 내세워 마을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한해 30여개 안팎의 마을을 선정하는 ‘정보화마을’은 조성 보다는 운영에 문제가 많다는 안팎의 평가가 적지 않다. 아무래도 정보화 환경과 농민의 생활방식은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운영이 극히 부진한 마을, 활성화 가능성이 희박한 마을은 선정을 해제한다는 방침이다.

농촌은 물론 지역을 넘어 도시와 광역을 아우르자는 게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이다. 시범사업으로 추진중인 47개 지역을 모델별로 분류하면 생태형이 28%로 가장 많고 문화형, 산업형, 관광형, 가족형, 교육형·건강형, 평화형의 순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공간적으로 2~3개 마을을 묶어 단편적인 사업 위주가 아닌 물적, 인적, 지역공동체, 운영체계 등 마을 전체를 재설계한다는 점이다.

소규모공원과 쉼터 조성, 화단 가꾸기, 꽃길 조성, 벽화 그리기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업 위주로 마을당 2천만원을 지원하는 ‘참 살기좋은 마을가꾸기’도 활발하다.

지자체에서는 지역 주민 내발적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려 추진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전북 진안군은 전국 최초의 지자체 차원 마을만들기 사업인 ‘으뜸마을 가꾸기’를 펼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동남아에 수출까지 하는 농어촌개발모델을 갖고 있다. 일찍이 1998년부터 매년 30여개의 마을마다 5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는 자율적, 상향식 농촌개발운동 '새농어촌건설운동'이 그것이다. 단위마을 지원사업으로는 남다르게 소득사업에 사업비를 쓸 수 있도록 한 점이 주목할만 하다.

경기도에서는 ‘슬로우푸드마을조성사업’을 내세운다. 농촌의 향토지적재산을 테마로 발굴, 마을당 5~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산 (地産), 지공(地工), 지소(地消), (地發) 전략을 부르짖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곧 사람과 조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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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승안동마을- 새농어촌건설운동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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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정부가 농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아무리 다양한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편다한들 한계와 문제는 뚜렷하다. 무엇보다 지금 농촌에는 마을만들기 일을 할 사람과 조직이 없다. 문제가 분명할수록 해결 방법 또한 분명히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바로 사람과 조직을 바탕으로 한 마을만들기 정책을 펴야 한다.

가령 귀농인 등의 ‘사람’을 중심으로,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 같은 농업경영체 또는 ‘마을기업’ 같은 ‘조직’을 기반으로, 생활농촌과 생태농촌을 지향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농업경영체가 마을만들기 사업 또는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자 기반이 되면 원주민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귀농인들도 체계적인 영농체험과 안정된 소득원의 방편으로 삼을 수 있다. 결국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농업경영체 또는 마을기업을 매개로 지역에 정주할 수 있다. 또한 농업회사에서 일하는 원주민과 그리고 귀농인끼리 동지적으로 연대하여 새로운 영농 및 귀농사업을 공동으로 모색할 수도 있다.

농업경영체로서도 자본, 경영, 기술의 능력을 갖춘 귀농인들을 적정·전문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획, 관리, 생산, 영업, 연구개발 등 사업 및 업무 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농업경영체의 모양과 수준을 갖출 수 있다. 귀농인들이 모여 일하고 사는 농업경영체가 마을사업과 마을경영을 주도하는 이른바 ‘마을기업’으로 앞장에 서면 차별적이고 창의적인 민간 주도의 마을개발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이른바 정부 주도 체험농촌이 아닌, 민간 주도 생활농촌을 설계하고 건설할 수 있다.

이때 마을기업의 궁극적 사업목적은 1차 친환경 농산물 영농, 2차 농식품 가공, 3차 판매 및 유통, 그리고 농촌문화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이른바 생활농촌 공동체 건설이 되면 좋을 것이다.

또 마을만들기의 관문이자 동력으로 생태건축 학교와 같은 생태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농촌·환경 관련 중앙정부와 귀농하는 도시민을 유치하려는 지자체 처지에서 주택의 친환경적 개조 및 신축의 정책적 필요성과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는 추세이다. 전주, 무주, 진안 같은 선진적인 지자체에서는 마을회관, 관공서 등 공공시설의 생태건축 , 공공디자인 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등 지역개발 및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근대적인 건축기법을 지양하고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공공건축을 적극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귀농인과 지역 주민의 교육과 시공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생태건축 마을학교’ 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상설해 운영하면 어떨까. 생태건축 교육 및 생태주택 시공에 따른 예산의 보조 지원을 통해 도시민의 귀농 기회와 정착 가능성을 확장하고, 지역 주민의 생활과 정주 쾌적성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활성화되면 아울러 생태건축 시장과 산업의 안정화도 촉진되고, 생태적인 농촌 정주 및 생활공간이 조성됨은 물론, 도농교류·도농상생 프로그램도 덩달아 활성화돼 살기 좋은 마을과 지역 건설도 앞당겨질 것이다. 이렇게 정부를 비롯해 마을만들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아무도 가지 않은 마을로 가는 길’로 한발씩 더 들어서면, 농촌은, 마을은, 지역은 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마을연구소 마을과사람(http://cafe.daum.net/Econet) 막일꾼 정기석이 쓴 이 글은 월간인물과사상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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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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