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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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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참석했던 유모차부대 카페의 운영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무슨 대단히 전투적 조직의 수괴처럼 보입니다만 실체는 현재 활동인원 20명 내외의 반상회 수준도 못되는 규모입니다. 게다가 추진력을 보자면 7월에 이미 카페 이름을 바꾸자고 투표 완료해놓고 새 이름으로 그림파일 하나 작업하는 데 3달이나 걸려 겨우 바꾼 정도의 수준이죠.

그게 빨랐다면 그나마 부드러운 이름으로 알려졌을 텐데 좀 아쉽습니다.

광우병 등 사회문제를 제가 처음 접한 곳은 약간의 고가의 수입옷과 장난감 등을 구매하는 정보를 주로 나누는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였습니다. 많은 아기 엄마들이 저와 비슷한 경로로 소식을 접하고는 그에 대해 애태우기만 했습니다. 그런 문제가 눈에 띌 정도로 여유가 있는 아기 엄마들은, 아마도 속된 말로 그나마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일 겁니다. 이게 사실 저희 집단 정체성(?)의 기반일 듯합니다. 그래서 촛불이 계급투쟁이다란 식의 해석은 지금도 공감하기 힘듭니다.

그림파일 하나 바꾸는 데 석달, 이게 전투적인 조직?

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있는 가운데 '유모차부대'가 참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광장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있는 가운데 '유모차부대'가 참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광장에 등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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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5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일에 인도로 가던 유모차 몇 대가 경찰들에게 가로 막힌 소식을 듣고 분노한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일명 유모차 부대란 게 실체로 탄생하였습니다.

한창 촛불 분위기가 뜨던 중 하이힐 부대·여고생 부대도 모이는데 유모차 부대는 왜 안 모이느냐는 반 농담성 말들이 이번에 한번 모여보자고 인터넷에 떠돌던 중 우연히 실행이 된거죠.

그 이후 다른 시국관련 카페들처럼 저희 카페도 나중에 탄생했고 사람 모인 곳이면 다툼이 있다보니 (자칭) 성격좋은 제가 도중에 운영자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있다보니 대단히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그런 사람을 상상하실 듯하지만, 촛불이 한창일 때 자유 발언 한번 안 하려고 내내 도망다닐 정도로 부끄럼을 타는 성격입니다. 게다가 여태 해본 조직생활(?)이란 게 동네 반상회와 온라인게임 길드 정도가 다일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했고 카페 내에서도 사실 발언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구차한 얘기를 길게 먼저 드린 이유는, 심지어 촛불집회에 긍정적으로 참여하시던 분들이 바라보는 저희의 모습도 실제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 듯 해서입니다. 저희가 남들보다 더 분노하고 더 용감해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요.

아기 엄마들이 함께 다니는 건 서로 소개 한번 나눌 정신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점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다닐 사람을 찾고 싶어할 만큼 소심한 분들입니다. 오히려 아기 데리고 홀로 다니는 분들이 훨씬 용감한 분들이라 봅니다. 또한 몇 달간 지켜본 저희 엄마들은 근본적으로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깊은, 어찌 보면 천진난만한 분들이셨습니다.

이전까지 제대로 집회란 걸 접해보지 못한 것이 원인일 듯도 합니다. 정작 과거 학생운동에 한 때라도 몸담았던 분들은 오히려 "무슨 일 생길지 어찌 알고 나가냐"며 불안해하고 소극적이었습니다. 과거에 어땠는지 경험이 없어 연상할 수도 없으니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나 봅니다.

위법 사례 조사하는 경찰, 순진하게 믿었더니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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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심하고 조금은 순진한 엄마들 중 그나마도 별로 눈에 띄지 않던 한 명이었던 제가 며칠 전 국정감사란 곳에 참고인 자격으로 섰습니다.

촛불집회 관련해 경찰의 위법하거나 과도한 조사의 피해 사례 참고인으로 소환됐고, 국정감사 자체의 목적이 경찰 행정력이 제대로 공정하게 합법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니, 당연히 질문도 그에 관련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또 한번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질문시간 자체를 촛불집회가 반정부조직들이 기획해 주도한 것이라고 꿰어맞추기 위한 홍보시간으로 쓰는 느낌이더군요. "2012년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고, 국가전복 목적으로…" 운운할 때에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처음 형사가 찾아왔을 때 단순히 겁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나서야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고 일명 '유모차 부대'에 대한 소화기 난사 사건으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문제되고 있어서, 유모차를 밀고나온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고 우겨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하지만 저희가 아직 이리도 늦습니다.

채증 사진이나 놓고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엉뚱한 질문들에 당혹스러웠던 그 기분을 그 곳에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국정감사 목적은 경찰이 어떻게 공권력을 집행하고 있느냐인데, 제가 평범한 주부든 아동학대범이든 아니면 정말 빨갱이든, 경찰의 수사 합법성 여부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것을 논점으로 삼는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어떻게 하든 '비정한 엄마'라고 광고하고 싶은 의원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가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자 "잘 대답하라"고 참고인에게 요구하고 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정혜원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가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자 "잘 대답하라"고 참고인에게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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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문제가 된 질의시 고함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인격 문제이니까요.

정말 비판해야 할 것은 국회의원님들이 국정감사 목적에 어긋난 엉뚱한 질문을 하며 제한된 그 짧은 질의 시간을 보내는 점이라고 봅니다.

야밤에 아기 엄마가 교대하는 물대포차에 항의하러 간 사건-저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고 봅니다, 어찌 아기엄마가 물대포를 가로막겠습니까-을 한 개인의 우발적인 행동이라고 하기엔 구미에 맞지 않으셨나 봅니다.

무관한 단체인 저희라도 끌어다 공권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아기들을 내세운 비정한 엄마들이라고 광고하고 싶었나 봅니다.

엉뚱한 동영상과 사진들을 끌어다 편집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이들은 평범한 주부들이 아니다'라고 우겨야 할 정도로 자신이 없으면 그 정책을 바꾸시는 게 옳지 않을까요?

편들어(?) 주신 국회의원님께는 죄송하지만 단순히 감정에 호소해 저희의 선처를 호소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위에 구구절절 설명한 대로 소심하고 순진한 엄마들이 모여 무슨 큰 위법행위나 위험한 일을 했겠습니까.

사실 처벌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법하게 조사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에 맞게 처벌을 하는 것이 옳고, 다만 조사과정에 과도한 행위나 위법성이 없도록 지적이나 하셨으면 충분할 일입니다.

방송사에 가스통 들고 뛰어든 사람도 조사하는지 물었어야

"경찰력 집행의 위법성을 따져 묻는 자리인 만큼 방송사에 가스통 짊어지고 뛰어드셨던 분들도 같은 기준으로 적법하게 조사하고 처벌했는지, 그 배후도 밝히려 애쓰고 있는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사진은 지난 6월 13일 저녁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LPG가스통을 묶은 승합차를 앞세우고 간간히 가스를 틀어대며 여의도 KBS본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장면.
 "경찰력 집행의 위법성을 따져 묻는 자리인 만큼 방송사에 가스통 짊어지고 뛰어드셨던 분들도 같은 기준으로 적법하게 조사하고 처벌했는지, 그 배후도 밝히려 애쓰고 있는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사진은 지난 6월 13일 저녁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LPG가스통을 묶은 승합차를 앞세우고 간간히 가스를 틀어대며 여의도 KBS본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장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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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진정 공정한 법치주의를 세우기 위해 유족들도 반대하는 추모제를 하겠다고 광장을 점령하고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한 분들, 방송사에 가스통 짊어지고 뛰어드셨던 분들도 같은 기준으로 적법하게 조사하고 처벌했는지, 그 배후도 밝히려 애쓰고 있는지를 물으셨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나가던 행인들도 과잉진압에 많이 구금되고 다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행정소송 낸 것, 전혀 진척이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 일도 제대로 진행하라고 독려하셨어야 할 일입니다.

6월 25일 경복궁역 앞에서 대낮에 단순히 인도에 앉아만 있던 사람들이 고지도 없이 끌려가는 걸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이들 말고는 단순한 시위 참여자는 구금한 일이 없다"고 답변하시는 경찰청장님을 보고 발언권이 없는 게 너무도 원통했습니다.

저희보다는 이미 불합리한 처벌이 집행된 촛불 자동차나 엄청나게 위법한 조사구금 과정을 겪은 촛불예비군 사건이 다뤄지지 않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심지어 그 분들은 실제 시위대라기보다는 의료봉사단과 같은 도우미 성격이 더 강한 분들이셨습니다.

국정감사란 게 단순히 감정에 호소해 "얘들은 빨갱이에요" 혹은 "불쌍한 주부들 그냥 봐주죠"라고 할 만한 자리가 아니란 건, 많이 배우지 못한 저도 압니다. 제 세금(많이 냅니다!) 아깝지 않게 올바른 적법한 정치 해주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그렇게 이슈가 될 줄 꿈에도 모르고 머리도 못 감고 방심하고 나갔다가 카메라 플래시 터진 순간이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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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혜원씨는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입니다.



태그:#유모차,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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