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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망산 공원에서 본 통영항
 남망산 공원에서 본 통영항
ⓒ 박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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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고통을 호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쌀쌀하니 옷을 잘 챙겨 입고 외출하라는 염려의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 무덥던 여름에도 가을을 예비하고 있는 조물주의 섭리가 있었듯이 이 계절에 당연히 겨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모처럼 나선 여행길. 릴케의 시처럼 볕은 과일과 곡식에 뜨거운 힘을 마지막까지 쏟고 있는 듯하다. 10월 12일 20여 명의 문인협회 회원들의 행선지는 통영. 청마 유치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침 여덟시에 광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고성의 공룡나라 휴게소에서 잠깐 쉬게 되었다.
고성은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하고 공룡관련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온갖 멸종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룡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특히 남자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하여 공룡의 종류에 대해서 잘 알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많이 그린다.

고성 공룡나라 휴게소 벽화
 고성 공룡나라 휴게소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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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7 ~ 6. 7(73일간)  "놀라운 공룡세계 상상"이란 주제로 경남고성세계공룡엑스포가 열린다. 무엇이든지 특화되어야 살아남는 경쟁의 시대에 공룡의 매력이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길 바란다.

통영은 의외로 가까운 곳이었다. 북통영 IC를 지나니 충무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친구가 나타날 것 같다.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해저터널을 친구와 걸으며 멋지다는 생각보다 바닷물이 넘쳐 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에 구경은 뒷전인 채 빠른 걸음으로 터널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우습다.

통영대교를 건너 미륵도 관광특구를 둘러보았다. 리아시스식 해안을 버스는 그야말로 S라인의 길을 달리고 또 달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오른쪽을 끼고 달리는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눈부신 햇살이 점점 구름 사이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퍼지고 있었다. 섬들은 바다에 또 다른 생명력을 주고 있었다. 섬이 있어 아름다운 바다.

물고기가 가을 햇살에 잘 말라가고 있다
 물고기가 가을 햇살에 잘 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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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가 장관이라는 달아 공원을 지나오는데 마을이 80년대의 수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S라인의 길이 주는 멀미 기운에 다리에 힘이 없었으나 남망산 국제 조각 공원에 오르기 위해 한숨 돌리는 시야로 생선을 말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비린 바다 냄새와 함께 바다처럼 강한 삶의 모습이 느껴졌다.

유치환과 김상옥 시비
 유치환과 김상옥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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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의 시비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풋풋했던 스무 살 적 그대로 시비는 변함없건만 시비 앞에서 사진 찍던 나와 친구는 어디로 갔는지. 옆에 있는 일행과 시간의 빠름과 세월의 무상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며 살기도  짧은데 왜 안달복달하며 사는지 모르겠다고.

조금 더 올라가자 시조시인 김상옥의 시비가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봉선화>라는 시조가 시비에 새겨 있었다. 거기서 단체 사진을 찍고 더 올라가다 보니 통영시민문화회관이 있고 그 앞에는 조각공원이 조성되었다. 신기한 조각물들이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철학적인 세계관까지 품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끌렸다.

4개의 움직이는 풍경- 하늘과 바다와 대지,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이 수직으로 만나는 지점을 상징한 움직이는 (키네틱)조각. 수직 스테인레스판들이 수평으로 360도 회전하면서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를 갖는다
 4개의 움직이는 풍경- 하늘과 바다와 대지,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이 수직으로 만나는 지점을 상징한 움직이는 (키네틱)조각. 수직 스테인레스판들이 수평으로 360도 회전하면서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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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조각공원은 세계 10여 개국 유명 조각가 15명이 구성한 특이한 조각품이 있다. 그 중에서 길게 늘어진 비닐가닥 사이를 지나면서 시간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직접 비닐 사이를 들어가 보니 멀미가 더 심해졌다. 시간과 공간은 지나온 과거이든 다가올 미래이든 거쳐야 할 변함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통과 가능한 입방체- 길게 늘어진 비닐 가닥들 사이를 직접 통과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체험한다
 통과 가능한 입방체- 길게 늘어진 비닐 가닥들 사이를 직접 통과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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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올라가니 남망여관이라는 건물이 담쟁이에 둘러 싸여 남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망 좋은 이런 곳에 방치된 건물이 너무 낡아 보여 나는 그 건물에 귀곡산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원에서 내려와 청마 문학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참을 걸어가면서 거리가 정말 80년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청마 문학관 입구의 돌계단이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돌계단은 문학관에서 생가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 저기 꽂힌 깃발은 청마의 시 <깃발>을 연상시켰다.

청마 흉상과 유필원고 , 초기 시집
 청마 흉상과 유필원고 , 초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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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는 나지막한 담을 담쟁이 덩굴이 감싸고 있는 아담한 곳이었다. 원래는 이 곳이 아니었으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지금의 장소에 생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청마 생가와 청마 문학관 입구. 청마의 시 <깃발>을 생각나게 한다
 청마 생가와 청마 문학관 입구. 청마의 시 <깃발>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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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바닷가 횟집에서 먹었다. 특이한 음식이 있었는데 무 채 썬 것을 고춧가루로 버무려서 미더덕과 함께 양념하여 무쳐 낸 것이었다. 시원하고 특이한 맛에 자꾸 젓가락이 갔다. 점심 후에 유난히 안주거리에 집착하는 분이 바다 바위 얕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을 돌로 따기 시작했다. 싱싱한 자연산의 그야말로 웰빙 안주거리였다. 역시 굴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안주거리는 웬일인지 별로 인기가 없어서 그 분이 처리하셨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 곳에서 예정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삼천포로 빠지자고 해서 또 웃었다. 일몰을 보러 가다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충무 김밥을 먹었다. 무김치와 쭈꾸미,오징어 무침이 일품이었다.

싱싱하고 단맛이 나는 굴을 직접 웰빙 안주로 삼았다
 싱싱하고 단맛이 나는 굴을 직접 웰빙 안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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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정말 짧아져 점심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다보니 금방 날이 저무는 듯했다. 해는 자꾸 서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도 가는 해를 잡으려는 듯 들길 따라 바다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석양이 기가 막히다는 그곳의 풍경은 바다 안개로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지만 해 질녘의 사물은 모두 예뻐 보이는 법인지 정겹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낭송을 하며 문학의 향기를 마음 속에 담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여고 때부터 좋아했던 유치환의 시 <바위>를 낭송했다. 조촐하고도 즐거운 문학 기행이었다.  문학과 짙은 포옹을 하면서 만난 이 가을의 통영과 유치환이 참 좋다.

날이 흐렸지만 그래도 일몰은 아름답다
 날이 흐렸지만 그래도 일몰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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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통영, #청마,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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