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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허수아비전 마지막 날, 다시 찾은 전시장에서 예쁘장한 개구쟁이를 꼬맹이를 대동한 어머니를 만났다.
▲ 허수아비전에서 만난 가족들 오늘은 허수아비전 마지막 날, 다시 찾은 전시장에서 예쁘장한 개구쟁이를 꼬맹이를 대동한 어머니를 만났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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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가을빛이 무르익을 때면 으레 논밭은 허수아비가 지키고 섰다. 우두커니 서 있는 허수아비를 '허새비'라 부르며, 키가 껑충한 친구들을 빗대어 놀리기도 했다. 그러면 또래들보다 훌쩍 큰 아이는 그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주눅들어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하나도 들어 맞는 데가 없지만, 60년대만해도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탓에 아이들 키가 고만고만했다. 그렇기에 별스럽게 챙겨먹은 것도 아닌데, 유전적으로 체질적으로 키다리는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없다'는 식으로 홀대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쓴웃음이 난다. 사실은 키가 큰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던 것이다.

넓은 화왕산 잔디광장엔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들이 가을 하맞이를 하고 있다.
▲ 너른 잔디광장에 서 있는 허수아비들 넓은 화왕산 잔디광장엔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들이 가을 하맞이를 하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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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

사실 작달막하고 몸집이 작은 사람은 야무지다. 과연 그럴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행동이 크게 굼뜨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대같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들면 우선 자세가 받아주지 않는다. 일하는 모습도 엉거주춤하다.

평균 정도에 맞춰진 농기구가 제 몸에 맞지 않으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돋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난데없이 키 큰 것 가지고도 설움 아닌 설움을 받았다. 요즘 아이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포근하게 분홍옷차림을 한 엄마허수아비 품에 잔뜩 안긴 아기허수아비들 두런두런 얘기가 정겹다.
▲ 엄마허수아비와 아기허수아비들 포근하게 분홍옷차림을 한 엄마허수아비 품에 잔뜩 안긴 아기허수아비들 두런두런 얘기가 정겹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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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창녕 비사벌문화예술제(8일~9일)에는 '허수아비전'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창녕지역이 대대로 농경 위주의 삶을 살았기에 생활 그 자체에 허수아비가 친근하다.

올해도 고사리 손부터 개구쟁이 초등학생, 껑충한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게 만든 허수아비가 전시되어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코흘리개 적 아스라한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허수아비는 언제적부터 만들었을까? 그 명확한 시원은 알 수 없다. 다른 나라들에도 허수아비라고 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랜 옛날부터 허수아비는 농경사회와 함께 해왔다. 이는 농경문화인들의 나름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민들 지혜로 만들어진 허수아비

우리말 '허수아비'는 이름조차 그 기원이 불확실하다. 한자말 허수(虛手)에 우리말 아비가 더해진 합성어라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영어로는 허수아비는 'scarecrow'라고 하는데, 이름을 통해 까마귀를 쫓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허수아비를 썼을 것으로 짐작케 한다. 그러므로 허수아비는 기능상으로는 동·서양의 허수아비 모두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허수아비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취향과 세태를 반영한 게 주류였다. 현재 자기가 드러내고자하는 욕구를 허수아비를 통해서 대리만족했다고 생각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작품의 경우, 엄마아빠의 따뜻한 사랑이 듬뿍 묻어 있었고, 중고등학생의 경우, 친구나 이성친구를 형상화한 작품이 많았다.

개중에 어른들의 작품도 있었는데 다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누구나 유년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게 허수아비전을 열고 있는 근본 취지이기도 하다.

가을햇살 아래 다정스레 밀어를 나누고 있는 한쌍의 키다리 허수아비
▲ 키다리 허수아비 가을햇살 아래 다정스레 밀어를 나누고 있는 한쌍의 키다리 허수아비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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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가족이 억새밭 나들이에 나섰다.
▲ 억새밭 나들이 중인 허수아비 가족 허수아비 가족이 억새밭 나들이에 나섰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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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 아래 다정스런 속삭이고 있는 한 쌍의 정겨운 허수아비를 만났다.
▲ 한쌍의 허수아비 가을햇살 아래 다정스런 속삭이고 있는 한 쌍의 정겨운 허수아비를 만났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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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는 어떻게 만들까? 우선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정한다. 그리고 나서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 대부분 재활용품을 이용한다. 허수아비 만드는 재료는 종이보다 헝겊이 좋다. 적당한 헝겊이 없으면 부직포를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부직포는 다양한 색상이 있고 접착제나 바느질효과도 뚜렷해 한결 더 멋있는 허수아비를 만들 수 있다.

허수아비는 어떻게 만들까

또 매직 등으로 글씨를 쓰거나, 채크무늬 등도 그릴수 있으며, 소품으로 작은 딸랑이를 모자위나 허리에 차도록 하면 바람결에 간간히 들리는 소리도 좋다. 나무젓가락, 스치로폼,  탈지면, 색실, 눈깔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하면 더욱 재미있다.

초등학생 작품으로 다정한 엄마아빠 모습을 허수아비로 표현하였다.
▲ 자랑스런 엄마아빠 허수아비 초등학생 작품으로 다정한 엄마아빠 모습을 허수아비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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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근데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흔히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허수아비의 생김새를 참새가 보고 도망간다고들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허수아비를 만들 때 묻어나는 사람의 냄새와 갑자기 생겨난 물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참새가 허수아비를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허수아비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그런 까닭에 허수아비를 처음 만든 후 며칠간은 참새가 허수아비 근처에 가지 않지만 대략 1주일정도 지나면 오히려 허수아비에 올라타서 쉰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동물들의 대처 행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너구리도 순대를 새장같은 곳에 넣어두면 처음에는 그것을 먹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예전엔 없던 물체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허수아비는 처음에만 효과가 있는 일시적 방편일 뿐이다. 그보다는 허수아비에 사람의 냄새가 묻게 자주 만져주고 땀도 묻히는 편이 참새떼를 쫓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총소리를 녹음해서 불규칙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거나, 밭에 반짝이는 끈을 묶어 빛을 산란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다.

허수아비를 만나고 앙징맞게 포즈를 취한 개구쟁이들
▲ 허수아비앞에 포즈를 취한 두 가족 허수아비를 만나고 앙징맞게 포즈를 취한 개구쟁이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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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우리는 왜 허수아비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유년시절, 한때의 추억이 허수아비와 더불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오늘 허수아비전을 찾았다. 여전히 붐볐다. 하지만 사흘내내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간혹 만나는 아이들에게 허수아비에 대해 물어 보았다.

"험상궂고 이상하게 생겼지만 재미있어요."
"난 키가 작은데 저렇게 키가 컸으면 좋겠어요."
"저 허수아비들처럼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허수아비에 대한 추억이 없다. 단지 재미로, 닮고 싶은 대상물로 생각하고 있을 뿐, 그를 통해서 하나의 이야기거리를 엮어내지는 못한다. 모든 게 쉬 사라지는 세상이다. 물론 그만큼 복잡한 물건들이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허수아비전을 둘러보고 유년의 가을 애상에 젖어보는 것도 우리세대가 마지막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을 억새밭을 지키고 선 허수아비 가족
▲ 억새밭을 지키는 허수아비 가족 가을 억새밭을 지키고 선 허수아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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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허수아비, #키다리, #추억, #농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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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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