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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시민단체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까지 나서 기업들을 상대로 시민단체 기부금 내역을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정원이 국가정보 및 국내 안전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 범죄조직)의 수집·작성·배포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한 국정원법 제3조 1항을 위반했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1994년 국내정치 개입금지 등을 뼈대로 한 안기부법 개정 이후 14년이 지난 시점인데 이같은 방식으로 국정원이 기업을 상대로 자료를 요청한다면, 과거처럼 정치개입도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 대변인실은 "검찰과 별도로 시민단체 후원내역에 대해 정보를 취합하거나, 기업들에게 자료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녹색연합·환경연합 등과 공익사업 벌인 공기업에 자료제출 요구

 

최근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 공기업 A사는 지난 9월 말 국정원의 2개 라인으로부터 "최근 3년간 집행된 시민단체 후원 내역 일체를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라인은 평소 A사를 출입하던 정보관이었고, 다른 라인은 A사의 기획예산팀에게 직접 연락했으나 구체적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은 국정원 관계자였다.

 

A사는 이미 9월 17일 검찰에 출두해 시민단체 기부내역과 관련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때와 마찬가지로 A사는 연도별 시민단체 지원 금액과 대상, 사업내용 등을 정리해 A4용지 2쪽 분량으로 자료를 만들어 국정원 관계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이 회사는 올해 14개 시민단체, 지난해는 6~7곳의 시민단체를 지원했다. A사와 협력사업을 벌인 시민단체들은 녹색연합·에너지시민연대·환경운동연합·환경재단·환경정의 등이다. A사는 대한환경경제학회·대한설비공학회 등에 대한 학술비 지원내역도 국정원에 제출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강압적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며 "그러나 공기업 입장에서 국정원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하거나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기는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이 왜 이 같은 자료를 요구하는지 묻지 않았다"며 "설사 질문한다고 한들 그 쪽에서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민간기업 B사도 국정원으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았다. 국정원 국내파트 관계자가 지난 9월 29일 B사 회계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건과 관련해 연락을 드렸다"며 "정보수집 차원이니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지원 내역을 요구한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B사 직원에게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재단에 그동안 얼마의 후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입금했는지 등을 묻고 관련 내용을 서류로 만들어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B사는 사내 회의 결과 회계 담당자가 정리할 수 있는 내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시민단체 담당자가 직접 관련 내역을 정리한 뒤 지난 9월 30일 A4 용지 1장 분량의 자료를 국정원에 보냈다. 

 

이 기업 역시 국정원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자료를 내놓았다.  

 

 

"시민단체 정보 수집은 국내 보안 정보에 해당되지 않아"

 

한 시민운동가는 "왜 국정원이 기업체들에게 이런 자료를 요구했는지 모르겠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단 한 번도 국정원이 기업에 전화를 걸어 시민단체 후원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유식 변호사는 "국정원의 이같은 행동은 국정원법이 정한 국내 보안정보 수집, 작성 및 배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명백히 국정원 직무범위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법 제3조 1항 1호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가정보 및 국내 안보정보(대공·대 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배포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국정원의 직무 범위와 국내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자 아예 활동 가능한 업무 분야를 적시해놓은 것이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법 제3조 1항 1호는 기업의 시민단체 지원활동 등에 대한 정보 수집행위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며 "시민단체 정보 수집은 국내 보안정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방첩 업무의 하나로 산업스파이 색출을 위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시민단체 후원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말이다.

 

장 변호사는 "한나라당이 국정원 직무범위를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데 만일 한나라당 안대로 확정된다면 이런 일은 앞으로 수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민주정부 10년간 국내정치에 손을 뗐던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들어 국내정치의 보폭을 넓히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단순 정보기관을 넘어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욕구가 여러 곳에서 드러났는데 그 정지작업의 하나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국정원의 자료 요구만으로도 충분히 기업들의 시민단체 후원금을 끊는 효과가 있다"며 "이는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으로 수사대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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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정원, #시민단체 기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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