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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코스를 우리가 가야한다.
▲ 우리가 종주해야 하는 길 이런 코스를 우리가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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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의 고도와 거리 표시
 등산로의 고도와 거리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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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들 꼬임에 넘어가다

10월은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등산을 별로 하지 않는다. 20대 시절인 70년대에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는 대부분의 산은 올라보았다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 신문 광고란을 통해 가고 싶은 산을 결정하고, 일요일 새벽에 광교 조흥은행 부근에 시간 맞추어 나가면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이를 이용해 산행을 하였다.

80년 이후 약 30년 동안 조기 축구를 한다, 테니스를 한다, 낚시를 한다 하여 산행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던 중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다 보니 동창들 등산모임이 만들어졌고, 동기들 성화에 못 이겨 올해 용문산, 해명산, 팔봉산, 마니산을 등산한 것이 고작이다. 말하자면 등산에는 왕초보인 셈이다.

그러던 차 동창모임에서 10월 특별 산행으로 지리산 종주계획을 세웠다며 꼭 참여하라고 성화다. 지리산 종주가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장비도 부실하다. 산행중 다른 동반자들에 피해나 주지 않을까 싶어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가장 허물없는 사이라고 하는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카페 글을 통해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동참할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카메라 외에 지팡이, 무릎보호대, 우의, 헤드랜턴 등을 준비하는데 거금 13만원이 들었다.
▲ 새로 준비한 등산장비들 카메라 외에 지팡이, 무릎보호대, 우의, 헤드랜턴 등을 준비하는데 거금 13만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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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섭렵한 동기의 조언을 받아 보니, 야간 산행이 필요해 헤드랜턴이 있어야 하고, 무릎관절 보호를 위해 무릎보호대와 등산용 지팡이 등이 있어야 한단다. 어쩔 것인가? 나름대로 거금을 들여 장비를 몇 가지 준비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등반일정을 알아보니 이건 보통이 아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모두 해보고 싶어하는 코스란다.

1박 2일 코스에 노고단에 올라 천왕봉까지 가는 도면상 거리가 30km에 가깝다. 산에서 1박을 하고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첫날엔 10시간 넘게 산행을 하는 계획이 잡혀 있으니 등산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매우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 돌이킬 수도 없는 일.

왕 초보의 도전은 시작되다

노고단을 지나서 임걸령을 향하는 별빛이 쏟아지는 숲속의 야간산행 모습
▲ 친구들의 야간 산행 모습 노고단을 지나서 임걸령을 향하는 별빛이 쏟아지는 숲속의 야간산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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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저녁 10시 반에 지하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산악회 버스를 타라는 동기 박대장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여 금새 열명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다시 무진고속도로를 따라 전라북도 남원군 지리산 뱀사골 입구에 도착하니 새벽 2시쯤이다. 미리 예약한 식당 주인이 잠도 안자고 준비한 된장국에 식사를 하려니 혀끝이 까칠하기만 하다. 하지만 다음 식사가 아홉시라니 허기를 위해 먹지 않을 수없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산행에 꼭 필요한 짐만 챙겨서 배낭에 넣고 나머지 짐은 버스에 남겨뒀다. 매일 새벽 6시에 치러야 하는 용변을 미리 보아야 하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니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등산로 입구인 성삼재에 도착하니 순천에서 합류한 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입산 허용 시간이 새벽 4시라고 하나 몰려드는 인파가 너무나 많아서인지 3시 40분에 입산을 가로막고 있던 출입문이 열린다. 이제 1박 2일간의 산행이 시작이다. 별빛 쏟아지는 칠흑 같은 숲속 길을 해드랜턴 불빛으로 길을 잡아 해발 1502m 높이의 노고단에 도착하니 테니스 하다 다친 적이 있는 오른발 인대가 시큰거려 걱정이다. 쉬는 시간 스트레칭을 하며 주물러 주니 많이 풀린 듯하다.

해발 1600고지의 연하천 대피소에서 전어회를 먹다

삼도봉 도착하기 전 일출 모습
▲ 지리산 일출 삼도봉 도착하기 전 일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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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이지점에서 나누어 진다.
▲ 삼도봉 표지석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이지점에서 나누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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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를 출발해 노고단을 지나고 임걸령, 노루목을 지나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삼도가 갈라진다는 삼도봉에 도달하니 해가 떠 있다. 날씨는 좋았으나 숲속을 걸어온 관계로 장관을 이루었을 법한 일출구경은 놓치고 말았다.

산행을 계속하면서 지나치는 지명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성삼재, 노고단, 돼지령, 임걸령,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등 모두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 또 한번 우리말의 멋스러움과 조상님들의 혜지에 감사한다. 화개재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해가 중천에 올랐다. 원칙적으로 야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텐트속 젊은이들의 아직도 깊은 밤중인 양 코고는 소리가 힘겨운 우리의 발걸음에 활력소가 되어준다.

순천에서 합류한 친구가 여수에서 운반해온 전어회 상자를 1600고지의 연하천 대피소에서 개방하다.
▲ 산상의 전어회 순천에서 합류한 친구가 여수에서 운반해온 전어회 상자를 1600고지의 연하천 대피소에서 개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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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계속되어 1533m의 토끼봉을 지나고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대충 아침 아홉시쯤이다. 평상시 같으면 오전근무가 시작될 시간이지만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 모두 준비해간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한다. 우리 팀의 점심 식사는 메뉴가 기발하다.

순천에서 합류한 동기가 여수에 내려가 전어회를 떠가지고 아이스 박스에 넣어서 이곳까지 운반해 온 것이다. 운반해온 전어회 박스를 개봉하니 환호가 대단하다. 다른 등산인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먹는 1600고지의 지리산 연화천 대피소에서의 전어회 맛을 정녕 누가 알 것인가? 또 하나의 기록일 것이다.

이들이 전쟁포로인가? 피난민인가?

이국적이고 운치가 있는 벽소령 대피소 전경
▲ 벽소령 대피소 이국적이고 운치가 있는 벽소령 대피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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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내미는 철이른 단풍의 붉은 얼굴을 보면서 봉우리를 넘고. 등선을 지나고. 바위 사이를 통과한다. 숲길을 지나는 무거운 발걸음은 계속 되어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니 이름만 이국적인 것이 아니라 경관도 너무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벽소령을 지나니 발걸음이 천근같이 무거워진다. 이 구간이 마의 구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여기를 왜 따라 왔는고?"하는 한탄들이 쉴새없이 터져 나온다. 1박 숙영지인 세석 대피소에 도달한 시간이 오후 다섯시다. 꼬박 열세시간 이십분의 산행을 한 셈이다.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이 길을 올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고 마음속으로 으쓱해 한다.

준비한 도시락에 소주도 한잔씩 걸치며 시끄러운 저녁식사를 마친다. 우리야 운좋게 대피소 숙박을 미리 예약해 걱정이 없었지만, 절대 부족한 숙소 사정으로 예약하지 못한 등산인들은 빈 공간만 있으면 텐트를 치려 했다. 국립공원관리소측에서 "야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야영을 하시면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계속 한다.

하지만 훈련소 막사를 방불케 하는 숙소는 이미 예약이 끝났다. 숙소를 얻지 못한 수백여명의 등산인들 중 관리소 측의 배려로 대피소 내 통로라도 자리를 얻은 노약자나 여성들 중 일부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화장실 앞이든 어디든 평평한 공간만 있으면 비닐을 깔고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마치 커다란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듯하다.

논산훈련소 내무반을 생각케하는 세석 대피소의 숙소 모습이다. 이 숙소라도 확보한 사람은 아주 다행이랍니다.
▲ 세석대피소 논산훈련소 내무반을 생각케하는 세석 대피소의 숙소 모습이다. 이 숙소라도 확보한 사람은 아주 다행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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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 산장 내에 숙소를 구하지 못한 등산객들이 산장 밖 평지에서 침낭에 의지해 잠을 자고 있는 모습
▲ 침낭에 의지한 야외 숙영 세석 산장 내에 숙소를 구하지 못한 등산객들이 산장 밖 평지에서 침낭에 의지해 잠을 자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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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하기 좋은 성수기 주말에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 숙소를 확장하려 하니 비수기 때 비워두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고 성수기 때는 이렇게 부족하니 국립공원 관리공단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싶다. 국립공원 전체가 야영 금지 지역이나 곳곳에 야영이 이뤄지는 게 사실이다. 차라리 대피소 부근에 일정한 공간을 만들어 이곳에 한해 야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어떨까.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전쟁포로도 아니고 피난민도 아닐진대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왕봉 일출 구경을 포기하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노고단과 반야봉이 구름속에 잠겨있다. 우리가 저 봉우리를 넘어 왔답니다.
▲ 노고단과 반야봉이 구름 위에 제석봉에서 바라본 노고단과 반야봉이 구름속에 잠겨있다. 우리가 저 봉우리를 넘어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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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숙소여건이 피란민 수용소 같기는 하지만 열 시간이 넘은 산행에 전어회에 몇 잔의 술을 걸쳤다. 베개 대신 생수통을 베고 잠을 청했지만 머리가 닿자마자 금방 곯아떨어진다.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싶어 12시 반쯤 잠을 깨어 하늘을 보니 별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끼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어려울 듯 싶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천왕봉 일출을 평생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 것인가?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등산객이 새벽 2시 정도가 되니 일어나 부스럭대며 짐을 챙긴다. 우리 일행 역시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4시에는 떠나야 한다며 모두 일어나, 라면 몇 개 끓이고 식은 밥 말아 아침요기를 마친다.

그렇게도 아름답다던 해뜰 녘의 세석평전을 어둠속에 남겨둔 채 장터목을 향해 다시 야간산행이 시작된다. 경험이 많은 친구 말에 의하면 지리산 종주 코스 중 세석평전에서 장터목 구간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는데 야간산행이어서 아쉽다고 한다. 하지만 혹여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을지 모를까 하는 마음에 모두가 발길을 재촉한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도록 하늘에는 구름이 꽉 끼어 별 한점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천왕봉 일출은 보기 힘들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캘린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제석봉 경치라도 구경하자 싶어 커피를 한잔 끓여먹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먼동이 터오자 저 멀리 우리가 처음 정복했던 노고단 정상이 보이고 지리산 두 번째 봉이라는 반야봉도 아스라이 보인다. 우리가 저 길을 왔단 말인가? 너무 멀어 보인다.

지리산의 품은 너무나 넓고 깊다

예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 숲길을 따라 산행은 계속되고
 예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 숲길을 따라 산행은 계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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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정상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풍선을 날리는 상술이...
▲ 천왕봉 정상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정상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풍선을 날리는 상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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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목표인 지리산 왕중왕 봉우리 천왕봉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이름도 정겨운 장터목 산장을 돌아 경사 급한 계단을 올라서니 1800고지의 제석봉이라! 고사목과 어우러진 등산로의 아름다운 경치도 경치려니와 생태복원을 위한 노력도 가상하다.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한 후 마지막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도록 지리산 주봉인 천왕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마치 구중궁궐 가장 깊은 곳에 거처를 마련한 황제폐하라도 되는 듯 코앞까지 갔는데도 천왕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아서 천왕봉이라 이름 하였는가?

정상을 보기를 포기하고 거친 숨을 몰아 철제 계단을 한 계단 한계 단 밟아 대는데 갑자기 가슴이 확 트인 듯하다. 고개를 드니 바위로 된 주봉 천왕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정상 표지석 옆에 증명사진을 찍느라 아우성인 속세 인간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한 컷은 남겨야 하겠지 하며 무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여기는 천왕봉17시간 만에 지리산 종주 완료"라는 휴대폰 문자를 마누라와 아들, 딸에게 보냈다. 역시 섬세한 마누라나 딸은 "축하한다" "수고했다" 답이 있으나 아들놈은 답이 없다. 친구 배낭속에서 나온 정상주 한잔이 목 줄기를 타고 드니 온몸이 짜릿하다.

1박 2일간, 21시간의 산행을 하면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의 가슴은 너무나 넓고 깊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첫 번째 봉우리인 노고단을 시작으로 1500고지가 넘는 봉우리를 8개를 지나서야 1915m의 주봉 천왕봉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넓고 넓은 지역을 보듬어 안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인가? 이름에 걸맞은 주봉이다 싶다.

4시간에 걸쳐 하산하는 동안 빨치산 이현상의 은거지가 되었다는 법계사 부근의 로타리 대피소의 입지도 볼 만하다. 이제 경상도라 산청땅 장산리로 하산하므로 긴 여정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한양 하산주라며 신나게 마셔댄다. 서울 양재동에 도착해 해산할 때는 해산주를 마실 것이다. 나를 꼬득인 친구에게 "덕분에 좋은 경험했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국립공원 지리산"이라는 표지석에 새겨진 남명 조식 선생의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선생은 임금이 수차례 벼슬을 준다 해도 마다한 산청지방의 기개 높은 대학자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뜬 맑은 물에 산경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 남명 선생

산청군 쪽의 로타리 대피소는 유명한 빨치산 이현상의 은거지였다고 합니다.
▲ 하산길 마지막 대피소 산청군 쪽의 로타리 대피소는 유명한 빨치산 이현상의 은거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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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방 기개높은 대학자셨던 남명 조식 선생이 쓴 시가 새겨져 있다.
▲ 산청군 장산면의 지리산 국립공원 표지석 이 지방 기개높은 대학자셨던 남명 조식 선생이 쓴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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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리산, #전어, #순고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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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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