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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담긴 미술관>은 어른 손바닥 만한 판형에 두께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만들어진 책이다. 512쪽에 달하는 작은 사전 같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서양 미술 4만년의 역사를 미술관에 옮겨 놓은 듯하다. 책의 외형 설명으로 소개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책의 외형과 편집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잘 쓴 미술사 책은 많지만 여행자의 배낭에 쏙 넣어갈 수 있는 미술사 책은 흔치 않다. 더구나 아이 딸린 엄마의 미술관 나들이에 들고갈 만한 포켓용 미술사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책에 담긴 서양미술의 역사

 

선사시대부터 고대, 고대 후기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18세기, 19세기, 20세기-1945년 이전, 20세기-1945년 이후로 구성된 이 책은 미술의 역사를 빼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데, 한 권의 책에 이 많은 정보를 다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오밀조밀 잘 짜 넣은 편집 방식 덕택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미술' 편에서 손바닥만한 책 두 쪽에 중국 작가 장 샤오강의 <작은 빨간 책>이나 대형 설치작업으로 유명한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3의 스틸 사진>, 네오 라우흐의 <반란>을 도판으로 보여주고,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는 작은 박스에 다카시 무라카미와 조나단 메시, 지니 사빌, 라키브 쇼, 제프 월, 그레이슨 페리 등 당대의 유명 작가와 작품을 적어 두어 궁금한 사람은 더 찾아볼 수 있게 안내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해 설명한 네 쪽에는 <최후의 심판>을 비롯해 4컷의 도판이 실려 개성 있는 작가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게 한다. 작가의 이름이 유래한 조용한 네덜란드의 소도시 세르토헨보스에서 생애 전반을 지낸 듯하다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작가 소개는 그가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형제회의 일원이었고, 보스가 속했던 형제회의 회원들이 부유한 집단이었다는 것, 그의 작품이 생전에 높게 평가됐고 특히 에스파냐에서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까지 잊지 않고 적어두었다.

 

보스 이전에는 괴물과 환상으로 이만한 공간을 채운 화가가 없었다는 미술사적 의의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의 작품이 격언과 말놀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 유럽과 북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후대 미술가들이 그린 복제품이라는 것, 현재 30점 정도만의 그의 진짜 작품이라는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 돼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을 책으로 담은 것 같으면서도 미술사의 유기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아 미술사 개론서로도 손색이 없다. 

 

 

아홉 가지 색으로 페이지를 표시해 두어 원하는 시대별로 빨리 찾아볼 수 있다. 각 장의 시작은 해당 시대에 대한 개관 설명으로, 연표와 4-6쪽으로 압축한 내용이 깔끔하게 요약돼 있다. 전시장 벽에 붙여두는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설명 글이나 큐레이터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들려주는 것처럼 서술돼 있어서, 미술의 역사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진입할 수 있다.

 

그림책 보며 집 안에서 떠나는 미술 여행

 

유럽 미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꽤 유용한 편이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 옆에 두고 보면 그림책에 대해 흥미를 키울 수 있다.

 

그림책과 미술사 책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영국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그는 그림 속 배경에 명화들을 자주 패러디해서 배치한다. 그런 배경 그림은 그림책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바쁜 아빠를 기다리는 딸아이의 마음이 잘 표현된 영국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에는 주인공 한나가 2층 침실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벽에 붙어있는 배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고릴라와 함께 집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현관 벽에 걸어둔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조화-화가 어머니의 초상'이 나온다. 각각 149쪽과 342쪽에서 찾아서 해당 그림을 보여줬더니 신기해했다. 

 

전문가 수준으로 서양화를 이해할 수 있는 엄마는 그리 흔하지 않다. 읽어주는 엄마 역시 그림에 대해서 아이처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모르면서 아는 척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함께 <손 안에 담긴 미술관>을 찾아보면서 그림책에 나오는 명화를 확인하곤 한다. 아이와 참고서적을 뒤적여 가면서 보는 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엄마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찾아보자"고 하면 아이는 더 진지해지고, 찾는 데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한 번 원작의 존재감을 인지한 아이는 재해석된 작품인 그림책을 볼 때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런 경험있는 아이는 전혀 새로운 그림을 볼 때도 습관적으로 유심히 본다.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레이먼드 브리그즈의 <눈사람 아저씨>에는 눈사람 아저씨가 아이의 집에 들어와 벽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잠시 책 읽어주기를 멈추고,<손 안에 담긴 미술관> 389쪽을 보여줬다. 그림책에 나온 해바라기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반 고흐에 대해 잠깐 설명해 줬다.

 

작가가 앤디 워홀의 조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그림책 <우리 삼촌은 앤디 워홀>은 485쪽의 앤디 워홀을 보여줬다. 그림책 겉그림에 등장하는 캠벨 수프 깡통 그림과 그림책 속에 나오는 워홀의 흰 색 가발, 브릴로 박스 등을 보여준 뒤에 그림책을 읽어주면 훨씬 더 재미있어 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 <눈사람 아저씨>를 읽자고 하면 으레 아이는 <손 안에 담긴 미술관>도 같이 꺼내온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스스로 찾아볼 수 없어 엄마에게 찾아달라고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이 배낭 속에 넣고 함께 미술관으로 나들이 가고 싶은 책이다. 미술사에 쉽고 가볍게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이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동양미술사나 라틴 아메리카 미술사 등 다른 문화권의 미술사도 이런 편집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손 안에 담긴 미술관

엘케 린다 부흐홀츠 외 지음, 엄미정 옮김, 수막새(2008)


태그:#미술, #역사, #손, #미술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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