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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는 날에는 몸이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다. 이따금 깨어지고 불에 타고 사라져 버린 아픈 역사의 흔적 앞에서 마음이 스산해지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의 지혜와 뛰어난 예술적 감각에 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느낀다.

거제 경남산업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건선 선생님을 주축으로 한 우리 문화유산 답사 팀이 지난달 27일 찾아간 곳은 경상북도 의성 지방이었다. 오전 8시 20분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의성군 단촌면 관덕1리 목촌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께. 마침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 어렵지 않게 의성관덕동삼층석탑(보물 제188호)을 찾을 수 있었다.

화려함 돋보인 삼층석탑도 보고, 밤도 줍고

 
▲ 의성관덕동삼층석탑(보물 제188호)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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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은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초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65m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사면(四面)마다 두 개의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고 위층 기단은 왼쪽에는 사천왕상을, 오른쪽에는 보살상을 사면마다 조각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의 사면에 보살상을 돌아가며 새겨 놓았다.  

문득 2년 전 경주에 놀러가서 봤던 월성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月城獐項里寺址西五層石塔, 국보 제236호)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 수법도 뛰어나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 받는 그 석탑에서는 삼국 통일의 여세를 몰아 계속 쭉쭉 뻗어 나가려는, 웅장하면서도 진취적인 기상 같은 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은 웅장함은 덜하나 조각을 많이 하여 장식적인 화려함이 훨씬 더해졌다. 그리고 위층 기단 네 귀퉁이에 암수 두 마리씩 해서 돌사자 네 마리도 있었다 한다. 1940년 무렵 한 쌍을 도난 당하고, 남은 한 쌍(보물 제202호)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암사자의 조각이다. 암사자 배 밑에 세 마리 새끼 사자가 있는데다 보기 드물게 한 마리가 어미젖을 빨고 있는 모습이라는 거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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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예전에는 절터였을 그곳에서 우리는 석조보살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36호)도 볼 수 있었다. 목 부분이 잘려 나간 것을 올려 놓은 상태였고 얼굴 또한 심하게 닳아 있었다. 그러나 갸름한 얼굴에 신체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들이 즐거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는 밤송이였다. 잠시나마 발로 밤송이를 까서 밤알 줍는 재미에 푹 빠졌다.

울창한 솔숲의 절집, 고운사

 
▲ 울창한 솔숲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고운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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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께 우리는 등운산 고운사(孤雲寺,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를 향해 출발했다. 의성의 특산물로 마늘과 사과를 드는데, 차창 밖으로 한데 묶어 쭉 매달아 둔 마늘과 주렁주렁 열려 있는 탐스러운 사과들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날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너무 예뻐 우리는 이따금 환호성을 질러 댔다. 더욱이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운치 있는 길을 지날 때는 노란 은행잎이 빚어내는 늦가을의 멋진 풍경을 그려 보는 달콤함에 젖기도 했다.

고운사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20분께.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도로는 꾸밈이 없이 자연 그대로 나 있는 길이라 포근하고 정감이 넘쳤다. 그래서 우리는 한가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그 길을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며 걸어갔다. 일주문을 지나 절의 경내로 들어서자 어느새 울창한 솔숲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밭에 들어앉았다. 

 
▲ 고운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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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세운 고운사의 첫 자는 본디 높을 고(高)였다. 신라 시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최치원이 여지(如智), 여사(如事)라는 두 스님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뒤로 그의 자(字)인 고운(孤雲)을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최치원은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고운사 종각 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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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최치원이 지었다는 고운사 가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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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 한 마리는 기어오르고, 한 마리는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 석등을 받치는 석주에 새겨진 동물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한 마리는 기어오르고, 한 마리는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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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이 16.2m, 최고 높이 13m의 누각으로 세 쌍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가운루(駕雲樓, 경북유형문화재 제151호)를 살펴보았다. 팔작지붕으로 초익공계(初翼工系)의 공포를 두고 있는데, 건물의 귀퉁이에 세워진 기둥만 특이하게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며졌다. 그곳에 서 있으니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가운루 밑으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더욱 멋스러울 텐데 날이 가물어 물이 말라 버렸다.

지난 1992년에 완공되어 오래된 법당은 아니지만 울창한 솔숲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고운사 대웅보전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앞뜰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세워 둔 석주가 있어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석등을 받치는 부분으로 쥐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동물이 새겨져 있다. 한 마리는 위로 기어오르고, 또 한 마리는 땅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 고운사 연수전과 산의 생김새를 닮은 만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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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절집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하기 위해 조선 영조(1744년) 때 건립한 연수전(延壽殿, 경북문화재자료 제 444호)이 바로 그것이다. 고운사가 자리한 곳이 연꽃이 반쯤 핀 형국으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이라고 들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생명 연장의 뜻을 담은 건물 이름에다 벽면에 불교와 관련이 없는 태극 문양도 그려져 있었다. 전남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분합문짝에 있던 태극 문양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3칸 규모의 대문인 만세문(萬歲門) 또한 산의 생김새를 닮아 예쁘고 독특한 맛이 있다.

 
▲ 고운사 연수전의 벽면에 그려져 있는 태극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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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에 법고, 범종, 목어에다 구름 모양의 운판까지 달아 놓아 모처럼 사물(四物)을 볼 수 있었던 고운사 절집.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드릴 때 사용되는 운판은 허공에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해 치거나 재당(齋堂)이나 부엌 앞에 매달아 공양 시간을 알릴 때 쓰이기도 했다.

솔밭 길을 내려가면서 전깃줄에 납작 엎드리듯 한 줄로 앉아 있는 잠자리들의 편한 휴식이 가을을 더욱더 한가하게 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고운사 절집에서 나와 점곡면 사촌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남안동 I.C→5번 국도→(우회전)의성, 대구 방면→고운사(입장료 없음)

* 이어서 경북 의성군 사촌마을 역사 기행을 쓸 예정입니다.



태그:#관덕동 삼층석탑, #고운사, #태극문양, #최치원,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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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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