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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토요일이 노는 토요일인가? 넷째 주 맞지?"

"그러네요. 무슨 계획이 있으세요?"

"아냐. 전 선생이 쉬는 날인가 해서."

"그야 쉬겠죠. 산에 가고 싶으세요?"

"나야 산에 가면 좋지! 그런데 전 선생 밭일하느라 바빠서 갈려나?"

 

지난 토요일(27일)이다. 우리 이웃인 옆집 아저씨가 엊그제께 새집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라며 내게 은근슬쩍 꺼낸 이야기다. 아침부터 바삐 땅콩을 거두는데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왔다. 말씀을 하시는 폼이 할아버지를 둘러대며 빨리 일을 끝내고 산에 가자는 압력(?) 비슷하다.

 

하늘 높은 날, 문수산에 오르다

 

하늘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다. 산행을 하자는 말에 마음이 급하다. 그래도 일을 시작했으니 끝을 내는 수밖에. 땅콩을 거두고, 씻어 말리려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내 금방 마칠 게요. 산에는 점심 먹고 출발하는 걸로 하죠."

 

아저씨는 일 바쁜 사람 훼방 놓은 게 아닌가하고 미안해한다. 그래도 함께 가자는 내 말에 얼굴이 환해지신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이다. 옅은 안개가 걷히면서 하늘이 정말 높다.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배낭에 과일하고 음료수부터 챙겼다. 차 시동을 걸었다. 벌써 산행을 함께 할 이웃들이 나를 기다린다. 옆집 아저씨, 건넛집 아저씨, 새집 할아버지 모두 모였다. 팔순을 넘기신 새집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다.

 

건넛집 아저씨가 차에 오르면서 말씀을 꺼낸다. 아저씨는 힘들게 오르는 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뒷동산인 마니산 장군봉에만 오르려하신다.

 

 

"전 선생, 어디로 가는 거야? 나도 오를 수 있는 곳이지?"

"문수산요. 산성을 따라 걸으면 그리 힘들지 않아요."

"강화다리 건너 있는 문수산 말하는 거지? 그곳이면 나도 거뜬해!"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강하구가 멋져요. 북한땅도 건너다 볼 수 있구요."

 

아저씨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새집 할아버지가 끼어드신다.

 

"한강하구면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지는 곳 아냐? 조강(祖江)이라는 곳!"

"그렇죠. 그곳에선 북한땅이 아주 가까워요."

 

고향이 북한인 새집 할아버지는 벌써 기대에 차신 표정이다. 할아버지는 차창을 내려 맑은 하늘을 쳐다보신다. 시야가 탁 트인 날씨여서 북한땅을 훤히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라하신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한껏 멋을 부린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하늘하늘 춤을 춘다. 들판엔 알알이 여문 벼이삭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온통 가을색이다.

 

민초들의 아픔을 느끼고, 자연의 예술품을 감상하다

 

30여분 차를 달려 문수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강화대교를 건너면 바로 문수산이 버티고 있다. 문수산은 37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초입은 꽤 가파르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벌써 건넛집 아저씨가 뒤쳐지기 시작한다.

 

"시삐 볼 산이 아니네. 좀 쉬었다 가자구! 전 선생, 막걸리는 챙겼나?"

"벌써 막걸리 생각나세요. 산꼭대기에서 막걸리를 파는 분이 있는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 그거 맛있겠는 걸!"

 

막걸리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들 입맛을 다신다. 숲길에서 풀벌레 소리가 발길에 힘이 보태준다.

 

 

한참을 오르니 문수산성이다. 이제부터는 산성을 따라가면 된다. 산성길이 편안하다.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 조선 숙종 때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를 방어하기위해 축성한 산성이다. 당시는 6km 산길에 축성하였는데 현재는 4km가 남아있고, 복원이 되었다.

 

새집 할아버지께서 산성을 내려다보며 말씀을 꺼내신다.

 

"이 높은 곳에다 산성을 쌓느라 고생깨나 했겠어! 예전 사람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호된 명령에 시달리고 쌓았을 거 아냐! 우리가 그때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산성을 쌓으며 민초들이 겪었을 아픔은 얼마나 컸을까? 오늘날 같은 변변한 장비도 없었을 것이며, 고달픈 다리를 끌고 피멍든 손으로 모진 고생을 했을 것이다. 산성의 성벽에 깃든 선인들의 땀과 숨결이 느껴진다.

 

산성에 걷다 시야가 좋은 곳에서 쉬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강화땅이 한눈에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황금색으로 변한 들판이 한가롭다.

 

 

가까이 보이는 염하(鹽河)의 물줄기가 도도히 흐른다. 염하는 김포땅과 강화도 사이의 강화해협을 따라 강물처럼 흐른다. 강화해협이 만들어낸 예사롭지 않은 물줄기도 목격된다.

 

"저기 좀 보세요. 물줄기가 흐르면서 한반도 지도를 그리고 있네요."

"우리나라 땅모양이라고? 어! 정말 그러네!"

 

자연이 만든 예술품에 모두 감탄사를 연발한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우리 고향사람들 모두 잘 있을까?"

 

문수산 산행은 지루하지 않아 좋다. 소나무숲길은 좀 빠르게 걷다가 호젓한 산성을 따라 갈 때는 여유를 부린다. 그리고 가파른 길에선 발걸음에 힘을 보탠다. 숲길에선 신선한 산림욕을 즐기고, 산성을 걸을 땐 탁 트인 시야로 아름다운 산하를 감상한다.

 

어느새 홍예문을 지나 중봉 쉼터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깔딱 고개를 넘어 땀을 흘리니 어느새 정상이다.

 

수차례 문수산에 올랐지만 오늘처럼 시야가 탁 트인 경우는 처음이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진 한강하구가 눈앞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가 장관이다. 크고 작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작은 물줄기들이 합쳐 큰 강물이 되고 바다로 몸을 섞이기 전, 닻을 내리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평양 순항에 고향산천을 두고 온 새집 할아버지와 황해도 연백인 고향인 건넛집 아저씨가 강 너머를 바라보며 말씀을 나누신다.

 

 

"아! 저기가 조강이지요? 강 너머가 북한땅이고요!"

"그렇다네. 우리 고향도 여기서 멀지 않은데! 고향사람들 모두 잘 있을까?"

"이 좋은 날, 우리 동생은 뭐할꼬! 나 보다 두 살 아래니까 많이 늙었겠네."

"세월은 가고, 나이는 먹고! 고향땅을 언제나 밟을 수 있으려나! 다 틀렸지?"

 

한참을 서서 북녘땅을 바라다 보이는 두 분 모습이 남다르다. 두고 온 고향산천과 피붙이 생각에 강 너머 산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두 분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무심한 하늘은 높고 또 높다. 오늘따라 새털구름이 너무 아름답다.

 

발길을 돌리기 싫은 두 분을 옆집 아저씨가 한사코 팔을 끈다. 정상 아래에서 파는 막걸리가 생각나시는 모양이다.

 

"자, 이제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요. 머지않아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오늘은 막걸리로 고향생각일랑 날려버리고요!"

 


태그:#문수산, #문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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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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