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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오개에 만들어진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아현동은 오르락내리락하기 힘든 곳이더군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 비탈을 오르며 사람들이 느꼈을 피로가 느껴졌어요.
▲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 애오개에 만들어진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아현동은 오르락내리락하기 힘든 곳이더군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 비탈을 오르며 사람들이 느꼈을 피로가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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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마을, 쓸쓸한 기운만 맴돌아

국토해양부가 수도권 도심에 10년간 180만 채 공급을 하겠다고 발표한 19일 오후, 곧 철거되어 뉴타운 재개발이 되는 아현동 3지구를 찾았어요. 빽빽한 아파트 숲이 되어가는 서울, 긴 안목이 없는 주거 정책에 안타까움이 생기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아현동 3지구는 쓸쓸하더군요.

아현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 아현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지나갔지요. 평일 오후의 한적함이 느껴지더군요.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 끝에 나타난 달동네로 올라가는 길,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올라가야죠.

많은 집이 이사를 해서 썰렁한 분위기더군요. 아무도 살지 않는 집들 사이를 돌아다니니 공가라고 빨간 글씨가 눈에 띄더군요. '이사가라'는 글씨도 보이는군요. 창문이 깨진 집도 있고 이사를 하려고 물건을 내놓고 있는 집도 있네요. 저 멀리 이화여대 쪽으로 새로 생긴 아파트가 보이는군요. 여기에도 저런 아파트들이 들어서겠네요.

허름하고 좁은 시멘트 건물이지만 누군가 여기서 꿈을 키우며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련해진다.
▲ 공가 허름하고 좁은 시멘트 건물이지만 누군가 여기서 꿈을 키우며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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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안 가려는 집이었나 봅니다. 아니, 이사 갈 곳이 없었던 집이었나 봅니다. 이사가라는 빨간색 글씨, 이제는 비어있는 이 집.
▲ 이사가라 이사를 안 가려는 집이었나 봅니다. 아니, 이사 갈 곳이 없었던 집이었나 봅니다. 이사가라는 빨간색 글씨, 이제는 비어있는 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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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반 이명수어린이의 추억이 담겨있을 비디오, 아현동을 떠나면서 추억도 잊으려 버린걸까.
▲ 비디오테이프 기린반 이명수어린이의 추억이 담겨있을 비디오, 아현동을 떠나면서 추억도 잊으려 버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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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도 편지는 배달되어서 열려지길 기다리고 있고 어떤 집에는 고지서가 쌓여있었지요. 이곳저곳 폐기물들이 쌓여있는 곳을 둘러보니 여러 가지 물품들이 나오더군요. 8월 달에 이사를 가서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번 달 청구용지에 0원이 표시된 지로용지도 있고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도 있군요. 비디오에 담긴 내용보다 더 따뜻한 기억들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을까요? 사랑의 유치원 기린 반에서 생활했을 이 학생은 추억이 담긴 테이프를 버리고 떠났나 봅니다.

이어지는 계단길과 골목에 버리고 간 물품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골목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네요. 한 사람도 지나가기 좁은 골목과 황폐한 집들을 보니 지난 시절이 생각나네요. 집이 없어 전세로 22년을 떠돌다 성남에 집이 생겼을 때 부모의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이들도 자신의 집을 구해 떠나갔길 바랍니다.

남쪽 방향으로 연결된,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쪽으로 가봤어요. 근처에 있는 가게마다 빨간색 글씨로 '공가'라고 쓰여 있네요. 철거사무실은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지네요. 여기저기 적혀있는 '이주합시다'라는 빨간 글씨, 아직 이주를 못하신 분들도 남아 있어서 승합차 마을버스가 운행하더군요. 승합차 마을버스는 처음 봤어요. 험하고 비탈진 골목길 올라오실 때 힘든 짐을 많이 덜어주었을 저 마을버스도 이제 사라지겠지요.

또 나타난 계단을 따라 애오개 마루로 올라가봤어요. 사람이 있는 집이 거의 없더군요. 버려진 집이라는 게 확연한 티가 나고 골목마다 버려진 물건들이 가득하더군요.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 둘러봅니다. 장판지까지 뜯어져서 고스란히 드러난 시멘트 바닥과 깨진 창문들, 그래도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찡하더군요. 망가진 시계만이 덩그러니 바닥에서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네요.

애오개 꼭대기 주변 골목과 집들, 사람들이 떠나가서 썰렁한 분위기였지요.
▲ 사람이 떠나간 골목 애오개 꼭대기 주변 골목과 집들, 사람들이 떠나가서 썰렁한 분위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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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나가고 덩그라니 남아있는 쓸쓸한 집들
▲ 버려진 집 사람이 떠나가고 덩그라니 남아있는 쓸쓸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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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글씨로 3번이나 쓴 철거사무실이 적혀있는 가게
▲ 철거사무실 새빨간 글씨로 3번이나 쓴 철거사무실이 적혀있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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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 저집 돌아봅니다. 문이 꽉 잠긴 집이 많습니다. 붕괴 위험이 있다고 경고장이 붙은 집도 있네요. 사람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골목에 가로등 하나가 쓸쓸히 지키고 있네요.   

이제 문을 닫은 어느 가게에 붙어있는 표를 봤어요. 글이 참 멋지네요. 당신이 오신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거형이네요. 기다림은 그치고 기대하던 만남이 이루어졌을까요?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그치지 않았길 기도해봅니다.

아현동은 이제 철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도 빽빽하게 아파트들이 들어서겠지요.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서울에 아파트가 유일한 대안인지 고민해봅니다. 날로 아파트에 포위되는 서울을 보며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한참을 자리에 머물러 글을 바라보았습니다. 비어있는 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이 글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 당신이 오신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자리에 머물러 글을 바라보았습니다. 비어있는 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이 글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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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현동, #뉴타운, #골목길, #사진풍경,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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