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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를 낳고 한달간 육아휴직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둘째는 정말 제대로 해보리라(자료사진).
 첫째 아이를 낳고 한달간 육아휴직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둘째는 정말 제대로 해보리라(자료사진).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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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이유로 두 번째 휴직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난 2005년 6월 한 달을 쉬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10월부터는 한 해를 쉬고 있다.

사실 두 번째라고 하기엔 좀 겸연쩍다.

첫 휴직 때는 말이 육아휴직이지 한 달 동안 온전히 육아에 집중한 게 아니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는 육아에 동참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들었기에 둘째를 낳을 때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성실한 사람으로 만나고 싶었다.

1년을 휴직하겠다고 회사에 말했다.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큰 법이기도 하지만, 취재기자라고 해봐야 고작 세 명 뿐인 기독교 인터넷신문사(<뉴스앤조이>)에서 6년 간 일한 사람이 1년을 쉬는 건 제법 큰 손실일 텐데 회사는 휴직을 승낙했다.

방인성 대표는 우리 신문사에서 육아휴직의 전통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방 대표의 말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렇게 지난해 10월 육아휴직을 해서 벌써 일 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육아를 위해 집안에서 지내는 주부로 살아온 삶을 성찰할 겸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단식 하면서 밥상 차리기, 쉽진 않았지만

육아휴직을 하기 전부터 출산용품 준비하기, 기저귀 삶기, 집안 대청소 등 둘째 아이 출산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리와 출산 시기가 비슷한 가정끼리 매주 만나 남편들이 산모를 위한 음식을 하나씩 만들었다. 미역국·콩나물무침·시금치무침·호박죽·연포탕·부침 등을 선보였다. 아내들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내놓은 요리들은 모양부터 맛까지 어설프기 그지 없었지만, 맛을 보는 아내들은 연신 싱글벙글.

깔끔한 집안과 삶아서 잘 개어 놓은 기저귀들처럼 내 몸도 청결하게 아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마침 기독청년아카데미가 개설한 '단식과 함께 떠나는 생활영성' 강좌는 꼭 나를 위한 세미나가 아닐까 싶었다. 5일간 식사량을 줄였다가 3일간 단식하고 다시 5일간 보식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비워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맞췄다.

단식하면서 아내와 큰딸(당시 세살)의 밥상을 차리는 게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우려도 했지만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는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둘째 아이를 맞이하는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아빠는 지난 목요일부터 엄마와 솔(둘째아이 이름), 별(첫째아이 이름)을 위해 아침밥 차리고 치우고, 점심밥 차리고 치우고, 저녁밥 차리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지. 정성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에 엄마가 감동을 하듯, 솔이 너도 감동하고 있지? 그 덕에 헐었던 입도 이제 아물기 시작하고, 눈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것도 하나둘 정리되고 있다. 아빠가 너를 맞이하면서 준비하는 또 하나는 바로 단식이란다. 몸을 비워내듯 마음을 비워내고 너를 맞겠다는 아빠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네. 분명히 무리가 될 것 같은데 무리하면서 지키려는 것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거야."

산모 음식 만들기, 기저귀 삶기... 준비할 게 많네

출산을 앞둔 아내의 걸음. 옷을 휘날리며 힘차게 걸어가면 나는 늘 뒤에서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운동을 했다. 그 힘으로 순풍 출산할 수 있었다.
 출산을 앞둔 아내의 걸음. 옷을 휘날리며 힘차게 걸어가면 나는 늘 뒤에서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운동을 했다. 그 힘으로 순풍 출산할 수 있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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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 연휴 직후 우리가 아이를 낳기로 한 열린가족조산원에 방문했을 때, 조산원 원장님은 아내를 진료한 뒤 9월생이 될지 10월생이 될지 모르겠다며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다. 예정일보다 두 주나 빨리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출산 준비를 서둘렀다. 첫째 아이도 38주 만에 출산했기에 마음은 더욱 다급했다. 그렇지만 둘째 아이는 예정일을 5일이나 지나 10월 17일 엄마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왔다.

느긋하게 나온 둘째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보름 가량 여유로운 나날을 보냈다. 아침 식사 후 아내와 나는 우리 뒷산인 삼각산 기슭과 영락기도원 마당까지 산책을 나갔다. 가끔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에 가서 배추밭에서 벌레를 잡았다.

출산 전날에도 아내와 나는 인사동과 남대문 등으로 운동 겸 눈요기를 하러 다녔다. 아내 걸음걸이가 유별나 지나치는 사람들이 뒤돌아보았다. 큰딸 표현대로 금방 터질 것 같은 배를 하고 팔은 머리 위까지 힘차게 흔들면서 보통 사람 걸음의 두 배 속도로 전진하는 임부가 눈에 띄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나.

아내의 운동법은 여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조산원 원장님은 다른 임부들 교육할 때 쓰겠다며 아내가 걷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결혼하고 4년 동안 이렇게 둘이서 느긋하게 지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결혼 초기 아내는 주중 저녁 한 끼를 같이 먹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내 바람대로 살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5일 중 이틀은 취재 때문에 저녁 늦게 들어왔다. 그리고 이틀은 대학원과 기독청년아카데미 등에서 공부했다. 어쩌다 내가 시간이 나는 날은 아내가 약속이 있었다.

첫째가 생기면서는 이틀씩 저녁을 나눠 쓰고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거의 매주 내가 사흘을 썼다. 어긋나는 생활이 쌓이면서 아내는 불만을 키웠고, 나는 미안함을 쌓아왔다. 둘째 출산을 기다리며 아내와 내가 누린 하루하루는 둘째 아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아마도 둘째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아내 불만이 폭발했을지 모를 일이다.

"쉬는구나, 좋겠다"는 편견에 맞서

육아휴직을 한 초기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가장 흔한 반응은 "쉬는구나. 좋겠다."

일터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쉬는 게 아니다. 일터를 집안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제 주부로 '쬐끔' 살아보니까 실감나는 말인데, 집안 일을 쉬는 걸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같은 마을에 사는 후배 녀석도 최근에 쌍둥이를 출산해 육아휴직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취재하겠다며 한 일간지 기자가 전화를 걸어서 하는 말, "취재하고 싶은데 우리 신문사로 올 수 있나요?" 쌍둥이를 키우는 걸 집에서 놀고 있는 것쯤으로 알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말 못한다. 이 후배는 한동안 제 때 밥을 못 먹었고 잠이 늘 부족했다.

또 다른 반응은 "너 뭘 믿고 둘씩이나 낳았니? 뭐 먹고 살래?" 혹은 "모아둔 돈이 좀 있나보네."

아내가 일을 하긴 하지만 모아둔 돈은 별로 없다. 돈이 넉넉하거나 믿는 구석이 있어 휴직한 건 아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이다. 아빠로서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살림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아내를 돕는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받는다.

1년짜리 주부, 아직까지 살림은 잘 못해

휴직해 살림을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살림에 둔감했는지, 살림살이를 무시하며 살았는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양념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아내에게 지적받고, 간이 맞지 않은 음식을 내놓아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다. 냉장고에 어떤 음식이 떨어져가는지 뭘 사야하는지도 바로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특별히 발전하는 구석이 보이지 않아 아내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친구가 격려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도와주라"고. 그런데 아내는 말했다. "살림과 육아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고.

휴직하는 동안 당당히 살림과 육아의 주체로 서겠다고 다짐했다. 훗날 가족의 꿈과 소명을 위해 아내와 내가 잠시 떨어져 살아야 할 때, 아내가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날 수 있을 만큼은 신뢰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아직 시간은 남았다.


태그:#육아휴직,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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