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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공식명칭 '대통령과의 대화-질문있습니다')'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출연자 섭외 문제 등으로 '국민과의 대화' 준비 과정에서부터 청와대의 외압 시비가 일었는가 하면 그 형식과 내용도 일방통행 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도 시민 패널의 신분 위장 논란에 이어 한 패널 참석자가 자신의 질의 내용이 주관 방송사인 KBS에 의해 당초 질의 취지와는 달리 일방적으로 편집돼 엉뚱한 질의가 되고 말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한 마디로 "무늬만 국민과의 대화"였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출연하는 이런 방식의 TV '대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볼 때가 됐다. 과연 대통령이 출연하는 이런 방식의 '국민과의 대화'가 더 이상 필요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대통령의,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에 의한 '대화'

 

사실 이런 질문은 새삼스럽지 않다.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이 TV에 나와 직접 전문가 패널과 국민 패널들의 질의를 받고 응답하는 방식의 TV토론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주요 질의내용들이 사전에 조율되고 협의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전문가 패널들의 질의는 제작진과 사전 협의를 거친 것들이었고, 국민 패널들의 질의 또한 제작진에 의해 선별되고 조율되는 과정을 거쳤다.

 

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패널들의 추가질의 등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항상 시간에 쫓겨 충분한 토론은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과의 대화'는 그 형식과 대통령들의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자리가 됐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원맨쇼 자리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주관 방송사 제작진들이 조금은 더 재량권을 가질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나 노무현 대통령 때도 청와대의 요구사항은 많았다. 다수의 지상파 방송이 동시에 중계해줄 것을 직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은근히 요청을 하거나, 패널 선정에 대한 불만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이명박 대통령 때와 달리 제작진들이 청와대의 요청이나 압력에 그리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전혀 부담을 느끼긴 했겠지만, 청와대의 요구사항 등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껄끄러운 질의 내용일지라도 큰 부담 없이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동안의 '국민과의 대화' 중에서도 가장 일방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TV대화 시작한 김대중, 각본없이 토론한 노무현

 

TV 출연을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시작했으며 가장 선호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고, 틈나는 대로 국민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겠다고 언명했다. 김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재임 중에 공식적인 '국민과의 대화'만 4번 이상 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대부분 "대화가 아니라 대통령의 일방적인 원맨 쇼"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아직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발행된 다음 날짜 신문에 대통령과의 질의 응답 내용이 실려 '사전 각본' 논란을 낳기도 했다.

 

2000년 2월 취임 2주년 기념 '국민과의 대화'는 사전 선거 논란으로 취소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국민과의 대화'를 지상파 방송 3사는 물론 YTN·KTV 등 유선 보도채널까지 모두 중계에 나서 전파낭비라는 비난을 샀다.

 

 

식상해진 '국민과의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취임하자마자 그 유명한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사전 각본 없는 '끝장 토론'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는 전임 김대중 대통령과는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이었다. 임기말 기자실 문제로 언론단체 대표들과 가진 '언론과의 대화' 역시 사전 각본 없는 TV토론이었다.

 

또한 패널 수를 대폭 줄인다거나 하는 방식 등으로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새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파 낭비'라는 비판을 의식해 한 방송사만 중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또 TV 대신 인터넷 포털을 통해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TV토론 방식에 대해 '시간이 너무 짧다'며 아쉬움을 토론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럴 정도로 적극적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이고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화나 토론 역시 일방적이었다는 평가에서는 벗어나지는 못했다.

 

패널들은 노 대통령의 일방적인 페이스에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 토론회를 대통령이 너무 일방적으로 끌어가 주요 쟁점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는 불만이었다. 입심 좋고 할 말이 너무 많은 대통령을 패널들이 제어하고, 제대로 논점을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검사와의 대화'는 '막가는 수준'까지 이를 정도로 치열했지만, 그 치열한 대화가 남긴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이 또한 결코 생산적인 대화나 토론은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끝장 토론'을 할 만큼 대화와 토론에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한미FTA 같은 첨예한 쟁점은 피해감으로써 이같은 평가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 왜 대화가 성공했다고 생각할까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르다. 사전 조율 등의 측면에선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개방성의 정도와 적극성 등에서는 두 전임 대통령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일방통행의 측면에서나, 방송 동원의 측면 등에서는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가용 가능한 거의 모든 채널이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같은 시간대의 드라마보다 떨어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국민과의 대화' 이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반등하는데 실패했다. 일방적인 '국민과의 대화'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명백한 방증들이다.

 

이런 일방적 대화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방송사의 신뢰를 위해서나,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집권 세력을 위해서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런 대화는 이것으로 끝내는 게 낫다.


태그:#대통령 TV토론, #국민과의 대화, #대통령의 소통방식, #이명박,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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