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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의 새로운 코너.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
 <일밤>의 새로운 코너.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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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우리 결혼했어요(아래 우결)>를 좋아하는데 난 별로더라. 어차피 가짜 결혼인 걸 뭐. 짜고치는 고스톱이지 리얼은 무슨 리얼이야? 차라리 톡 깨놓고 수다 떠는 '세바퀴'가 속시원해. 배꼽 빠지게 한 번씩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다니까."

"애들이야 지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이 나오니까 좋아하겠지. 사는 게 '우결'처럼 예쁘고 재미있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어. 애들이 뭘 알아? '세바퀴' 보고 웃을 정도는 돼야 인생을 좀 안다고 할 수 있지."

"맞아 맞아, 애들은 가라…. 바로 그거지. 하하하."
- 동네 아줌마들의 대화

일요일 저녁 TV가 아줌마들의 걸죽한 입담에 빠졌다. TV 프로그램의 꽃이라는 일요일 저녁 가족 시청 시간대 예능오락 프로그램 <일요일일요일밤에>의 한 코너인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가 그것이다.

'가정의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바꾸는 고품격 퀴즈프로그램'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내걸고 있긴 하지만 실제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품격'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핏덩이들은 '우결', 아줌마들은 '세바퀴'

'세바퀴'에 나온 크라운 제이. '우결'의 가상 부인인 서인영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세바퀴'에 나온 크라운 제이. '우결'의 가상 부인인 서인영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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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퀴는 이름처럼 퀴즈를 내기는 한다. 여자 연예인들을 모아놓고 '두단어 퀴즈' '드라마 퀴즈 ' 등 퀴즈를 내지만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다. 스타 주부들의 생활밀착형 수다를 따라가다 보면 퀴즈쇼인지 토크쇼인지 헷갈린다.

퀴즈 한 문제를 놓고 문제와는 전혀 연관성도 없는 수다를 길게 떠는 것은 기본이고 함께 출연한 남성 출연자들에게도 '인생 선배'라는 이유로 면박에 가까운 조언을 서슴지 않는 그들. 젊고 잘생긴 남자배우를 향해 거침없이 애정 표현을 하는가 하면 때로는 진행자들마저 당황할 정도의 독한 비방용 유머를 구사한다.

그 중에서도 '배우자에게 문자 보내기'는 세바퀴의 백미다. 배우자 혹은 남자친구에게 "사랑해" "나 어디 성형수술하면 좋겠어?" 같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답문자를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 "사랑해"에는 "넌 누구냐" "어디 고칠까"에는 "모공축소" 등과 같은 포복절도할 답문자가 도착한다.

때문에 수시로 편집의 아픔을 맛보기도 한다지만 누구도 그녀들의 거친 입담을 막을 수는 없다. 오죽하면 독설로 유명한 김구라마저 '세바퀴'에만 오면 아줌마들의 기에 눌려 순한 양이 된다는 말이 나올까.     
 
<일밤>의 또다른 코너인 가상 결혼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아래 '우결')'가 비교적 어린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면 '세바퀴'는 중년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우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최고 시청률은 8.7%(9월 7일 방송분)로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와 같은 경쟁 방송사의 간판 오락프로그램과 동시간대 방송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선방이 아닐 수 없다. 재방송이 본방송보다 높은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세바퀴'의 은근한 인기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소란스럽다, 어수선하다, 저질이다, 주부를 폄하한다…. 수많은 비판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들이 '세바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세바퀴'를 보면서 틀을 깨는 시원함을 경험한다고 했다. '우결'의 연출된 아름다움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삶이 담긴 '세바퀴'가 훨씬 공감된다는 것.  

품격 없는 아줌마들... 연예인 맞어?

아줌마들의 용감, 솔직함이 '세바퀴'인기 비결이다.
 아줌마들의 용감, 솔직함이 '세바퀴'인기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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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의 엄앵란, 60대 선우용녀, 50대 양희은, 40대 이경실, 30대의 김지선까지 줄잡아 평균을 내도 오십대가 훨씬 넘을 그녀들은 누가 뭐래도 당대 최고의 여성 연예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바퀴'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며 솔직한 아줌마가 된다.

그동안 보아왔던 연출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너나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시청자와 만나는 그녀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가족 시청 시간대라는 것을 간과한 듯 아슬아슬한 입담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시청자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남편이 뺨에 뽀뽀를 했는데 그만 볼에 동그랗게 멍자국이 남았어요.(강수정)"
"허리 아플 때 부항으로 쓰면 좋겠네요. 저기 그 부항 말이에요. 나도 가끔 빌려줄 수 있어요?(김지선)"

"결혼 3일째인데 아내가 3일 계속 술 마시고 들어와 일찍 자요.(이윤석) "
"새색시가 술 마시는 이유를 잘 파악해야지."(선우용녀)

"뽀뽀는 입술만 키스는 혀도….(한성주)"

한 가지 주제로 출발했지만 끝날 땐 무슨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아줌마수다의 특성을 '세바퀴'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을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중구난방 떠드는 것 같지만 말 속에 뼈가 있고 웃음 뒤에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무서운 삶의 내공이 존재하는 때문이다. 

'세바퀴'는 가식 없고 내숭 없고, 현실적이며, 때때로 채면도 위신도 안 가린다는 이유로 수시로 폄하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우리네 보통 아줌마들에게 힘을 준다. 내용 없고, 주제 없고, 격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아줌마들의 수다도 충분히 가치있는 '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려준 첫 번째 시도라는 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예전 같았으면 방송용으로 어림 없었을 부부관계, 이혼, 연애, 실수담을 적나라한 표현으로 밝히는 것만으로도 우린 세상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물론 바뀐 세상을 보여주는 역할까지도 하는 것이다.

"박미선이 사랑해라고 보낸 문자에 이봉원이 '너 누구냐?'라고 답장 보냈잖아. 나 그거 보고 웃다 배꼽 빠질 뻔 했다. 이봉원 왜 그렇게 웃기냐."
"호호호. 임예진 남편도 웃기더라. 답장 안 온다고 전화해서 간신히 왔잖아. '미투'라고"
"그러게. 임예진 사는 것도 우리랑 다르지 않은가 봐. 이경실도 가끔 좀 과한 것 같지만 재미있더라. 재혼하고도 당당한 걸 보면 오히려 좋아 보이던걸."
- 동네 아줌마들의 대화

우리네 필부의 삶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함께 찜질방에 앉아있는 수다를 떨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동네 미장원에서 만난 이웃 아줌마들이나 오래된 고향 친구들처럼 격식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 함께 수다를 떨어도 될 듯한 그들. '세바퀴'는 그들을 스타이기보다는 아줌마로 시청자와 만나게 해주어 더욱 유쾌하다.   

아줌마를 위한, 아줌마에 의한, 아줌마들의 프로 '세바퀴'에 대한 아줌마 시청자의 기대는 작지 않다. 예쁘고 날씬하고 젊은 여성이 나와야만 시청률이 나온다는 일요일 황금시간대의 고정관념을 깨고 아줌마들의 힘을 보여주기 바란다. 아줌마가 주인공인 오락 프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즐거우며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명절엔 이번 추석에 '우결'이 그랬던 것처럼 '세바퀴' 본방 160분 특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그:#세바퀴, #우결, #아줌마, #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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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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