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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이 맑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였습니다. 24절기 가운데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와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추분(秋分) 사이의 절기이며, 양력으로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165°에 이르는 때입니다. 이 시기에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풀잎에 이슬이 맺힙니다.

오곡 백과가 무르익고 포도가 제철인 백로(白露) 절기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선선하고 차가운 기운이 돌며, 특히 추석 무렵으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입니다. 장마도 걷히고 맑고 깨끗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일반적으로 이 무렵을 전후해서 기온도 적당하고 맑은 날이 이어지기 때문에 일조량도 많아 곡식이 여무는 데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제철 음식으로는 포도가 있습니다. 이른바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하여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기간을 일컫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과일 가운데, 가장 깊은 맛이 든 과일이 바로 이 포도인 것 같습니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며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나는 것이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9월 들어 시작된 추수는 추분(秋分)과 한로(寒露)를 지나 가을 절기가 끝이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 무렵이면 마무리되기 마련입니다.

가을 들녘, 넉넉하고 여유로워지는 추수 현장

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르파주의 초상 그림
 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르파주의 초상 그림
ⓒ l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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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수 시기에 맞추어 감상하려고 준비하던 그림 몇 점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가을의 초입, 추수 시기에 소중하게 꺼내 소개하고 함께 감상하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께는 처음 소개하는 이 줄레스 바스티앙 르파주(Jules Bastien Lepage, 프랑스, 1848-1884)의 그림을 나누는 것으로, 저도 이 가을을 맞이하고 풍성한 한가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자연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줄레스 바스티앙 르파주는 1848년, 프랑스의 무제 담빌레(Damvillers, Meuse, France)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그 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베르두(Verdun)에서 공부했으며, 1867년에 보우 예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알렉산드레 카바네(Alexandre Cabanel, 프랑스, 1823-1889, 밑 초상 그림이 카바네의 자화상임) 밑에서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1870년 살롱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874년에는 전원과 작은 야산 아래에 사는 시골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으며, 같은 해에 "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갖습니다.

카바네와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화가, 르파주

르파주의 스승, 알렉산드레 카바네의 자화상
 르파주의 스승, 알렉산드레 카바네의 자화상
ⓒ cab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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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말년의 작품으로 "대장간(The Forge, 1884)"이 있습니다. 그 뒤 새로운 전원을 주제로 그림을 계획하던 1884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더 잘 알려진 작품으로 초상그림들이 있으며, 전원 풍의 "포도수확(The Vintage, 1880)"과 풍경화로 "런던의 템즈강(The Thames at London, 1882)"이 있습니다.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885년 3~4월, 그의 작품들을 모은 전시회가 열렸을 만큼, 대중의 지지와 인정을 받았던 화가였습니다.

황금빛 들녘과 추수 현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마음 넉넉하게 만듭니다. 직접 현장에 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장을 담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의 현장으로 날아가 있는 듯, 시선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짐을 느낍니다.

자연주의, 사실주의적인 농촌 풍경화

1880, Musee de Guezireh, France
▲ 무르익은 밀밭(les bles murs) 1880, Musee de Guezireh,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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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Barbara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 무르익은 밀밭(les bles murs) Santa Barbara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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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풍경을 담은 자연주의적인 그림입니다. 황금 들녘을 담은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사실적인 작품입니다.

위 르파주의 약력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고전풍의 사실주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클로드 조셉 바일(Claude Joseph Bail, 프랑스(French), 고전주의 화가, 1862-1921)의 그림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쿠르베(Gustave Courbet, French, 사실주의, 1819-1877)의 그림과 비교해 보시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밝은 빛에 가려진 그림자 부분의 명암을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명암의 밀도를 매우 정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오래된 사진과 같은 정감어린 질감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어린 소녀(Young Girl)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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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추수할 때(At Harvest Time) 188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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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son de Octobre Recolte des pommes de terre, 1879,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Australia Felton Bequest
▲ 10월의 감자 수확 (Saison de Octobre Recolte des pommes de terre, 1879,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Australia Felton Bequest
ⓒ l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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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 작품 모두 산을 끼고 있는 농촌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풍경이 자연스러우며, 삶의 애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된 그림입니다. 가을로 물들어 가고 있는 듯, 대지와 토지의 갈색 흙빛조차도 풍성한 결실을 암시하는 듯 보이며, 기름진 옥토의 모습은 수확하는 농부들의 풍족한 마음과 밝은 미소를 대변하고 있는 듯 닮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파헤쳐진 땅과 거칠고 질퍽한 흙의 질감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지의 넓은 가슴처럼 마음을 참 평화롭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그림입니다. 가을 결실과 풀 한 포기를 포함하여 자연을 품은 대지의 넓은 품이 마치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듯하고 넉넉하게 다가오는 여유로움 가득한 작품들입니다.

어머니 품 같은 대지의 넉넉한 결실, 전원 풍경화

짚시 같은 느낌을 주는 위 첫 그림의 주인공인 어린 소녀는 입고 있는 의복만큼이나 그 영혼과 눈빛도 실제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참 맑고 순수해 보입니다. 가을 빛을 담은 머릿결이나 검붉은 포도로 물들인 듯한 포도 채색의 넓은 치마에서 가을이 절정임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언덕을 갈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사를 지어놓은 너른 감자 밭의 풍경이 평온하기 그지 없습니다. 두 번째 그림의 여인은 감자를 캘 큰 바구니 두 개를 양 옆에 끼고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그 여인의 얼굴이 밝게 웃고 있다는 것을 마치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수확하는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풍성한가 봅니다.

마지막 그림의 주인공인 두 여인. 거친 일들이 일상이 되어 있는 듯, 선 굵은 몸매에서 힘든 일상을 실감케 합니다. 감자를 캐 담는 힘겨운 일을 하느라 몸은 피곤해 보여도 그 얼굴엔 수확의 기쁨이 한 가득 들어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 http://www.artrenewal.org/asp/database/art.asp?aid=269



태그:#추수, #르파주, #가을, #수확,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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