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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직 결정 후, 성신여대 청소 아주머니와의 대화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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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메시지 해고'에 이어 새로운 선례가 남을 뻔 했다. 성신여대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이른바 '구인광고 해고'를 당할 뻔 했다. "해고한다"는 말 한 마디조차 듣지 못한 채,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의 구인광고를 통해서 비로소 본인들이 해고당한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10~20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비정규직의 설움이자, 외부용역의 폐단이다.

그렇다고 아주머니들이 많은 돈을 받은 것도 아니다.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실상 1시간 이상 일찍 출근해 오전 6시부터 근무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이 받은 급여는 고작 월 56만원. 61만원의 월급에서 퇴직금과 세금을 떼기 때문에 월급 중 5만원 가량을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다.

참다 못한 아주머니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보다 못한 학생들의 권유였다. 그래서 겨우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받아 월 72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들어는 보셨나,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

성신여대 '수정이들'은 총학 차원에서 서명운동 전개와 함께 아주머니들을 향해 강력한 연대의사를 표했다.
 성신여대 '수정이들'은 총학 차원에서 서명운동 전개와 함께 아주머니들을 향해 강력한 연대의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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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6만원을 더 받은 대가였을까. 아주머니들은 듣도보도 못한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를 당한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결국 학교 행정관을 점거했다. 직접 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던 성신여대 측과 용역회사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였으며, 생존의 목소리였다.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적은 급여를 감수한 것이 죄라면 죄였을까.

아주머니들의 사연을 알게 된 9000여 명이 넘는 성신여대 학생 중 6500여 명이 넘는 '수정이들(성신여대 학생들의 애칭)'은 3일만에 지지선언과 서명으로 강력한 연대 의사를 밝히며 학교 측을 압박했다.

아주머니들이 학교 행정관을 점거한 지 14일째 되는 지난 10일, 학교 측과 외부용역업체, 그리고 아주머니들은 담판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섭은 쉽지 않았다. 성신여대 측과 아주머니들의 노조였던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와의 합의서를 받아본 아주머니들은 합의서 3항에 분노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조합은 이번 사태로 인하여 직접 교섭 당사자가 아닌 대학에 입힌 피해에 대하여 대학의 책임자와 교직원들에게 서면 사과와 함께 대학이 마련한 공개석상에서 사과한다."

대학이 입은 피해라면 '대외 이미지 손상'과 함께 아주머니들의 점거 과정에서 입은 약간의 물리적 피해(성신여대 측은 "직원의 부상" 거론)일 것이다.

합의서 3항을 보는 순간, 나조차도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중복 사과'를 요구하면서 수치를 주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대외 이미지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던 것일까.

아주머니들은 단호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우리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는 이야기였다. 교섭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사과' 조항이 빠진 새로운 합의서가 발표되면서 아주머니들은 전원 복직됐다.

'연대'만이 희망이다

14일간의 점거 농성 끝에 학생들의 지지와 더불어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를 이겨내고 복직된 성신여대 청소 아주머니들
 14일간의 점거 농성 끝에 학생들의 지지와 더불어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를 이겨내고 복직된 성신여대 청소 아주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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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소 미진한 감은 있다. "용역업체가 임금체불 및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성신여대는 용역업체와 용역계약을 해지한다"고 했지만, 성신여대 측은 "청소 용역업체 변경시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의 고용유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정도의 의무가 있다. '직접고용'을 이루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추석연휴를 가족과 보내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던 아주머니들은 '복직'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꼈다.

아주머니들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유승현 성신여대 총학생회장과 김지은 부총학생회장을 얼싸 안았다. 오히려 학생들이 학교 측으로부터 징계라도 당할까봐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여기서 인간적인 정을 매개로 한 강력한 연대의 힘을 보았다. 성신여대 학생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졸업생들은 일간지 의견광고까지 동원해 연대의 뜻을 표하면서 학교 측을 압박했고, 이것이 언론 보도와 맞물려 여론을 조성한 것이다. '벼룩시장 구인광고 해고'의 충격파에 놀란 시민들과 누리꾼들도 여론의 힘을 보여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들은, 중간중간에 기륭전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타인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박수를 보내는 데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그렇다. 이랜드와 기륭전자·코스콤과 KTX 여승무원 등의 길고도 외로운 싸움이 그나마 버텨가는 힘은 그렇듯 '연대'로부터 나온다.

아주머니들은 드디어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음을, 그리고 다시 일할 수 있게 됐음을 기뻐했다. 이 기쁨이 성신여대를 넘어 이랜드와 기륭전자·코스콤에도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정을 매개로, 연대의 힘을 보여준 성신여대 '수정이들'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적인 정을 매개로, 연대의 힘을 보여준 성신여대 '수정이들'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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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신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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