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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엄마 취재하러 가는데 같이 안 갈래 ?"

"........"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 녀석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만 하려는 아들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건만 아들의 관심사는 게임에만 있었다.

 

"연예인 축구단이 부여 구드래 축구장에 와서 축구 경기를 한다는데 엄마랑 같이 가자."

"연예인 누가 오는데?"

 

그제야 아들 녀석은 관심을 보였지만 눈길은 여전히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은 연예인보다 컴퓨터 게임에 더 관심을 보이는 아들과 구드래 축구장으로 향했다. 막바지 여름이 허세를 부리듯 날씨는 뜨거웠지만 구드래 입구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서 제철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동안 부여에는 유소년 축구 꿈나무들을 육성할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서 축구 영재들이 인근 공주, 논산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불편을 감수해왔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부여군 임천면 출신 무술 감독이자 연기자인 정두홍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는 고향 부여의 스포츠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오다 이번 '부여 유소년 축구 클럽' 창단을 위해 2천만원 상당의 축구 용품과 선수들 운동복 일체를 지원해 주었고 유소년 축구 클럽 명칭마저 그의 이름을 넣어서 축구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정두홍 감독은 이번 '부여 유소년 축구 클럽 창단식'에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과 동행했다.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이 탄 버스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최수종 단장을 비롯해 이휘재, 이기영, 김형일 등 방송을 통해 낯이 익은 연예인들이 내리자 구드래 축구장이 더 밝아지는 듯했다.

 

"아들, 저기 TV에서 보던 사람들 많이 있지? 누군지 알겠어?"

"알아, 대조영이잖아, 스폰지에서 나오는 이휘재도 있고...."

"그럼 저 사람들처럼 사인 좀 해달라고 해서 받아와 봐."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사인 공세를 받고 있는 연예인들을 가리켰지만 아들 은 웃으며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한 반에 6명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방 안 퉁소' 같은 성격으로 자라지 않을까 조바심이 있던 차라 이런 과제를 내보았다. 역시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직 연예인에 열광할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었다.

 

"저도 어려운 환경에서 어렵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고향의 축구 꿈나무들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여군 임천면 출신인 정두홍 무술 감독은 운동선수의 꿈을 꾸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포기할 뻔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축구 꿈나무들을 선뜻 돕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정 감독이 소속된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이 부여를 자주 방문해 친선 경기를 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기금조성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기 구드래 백마강변을 따라 완벽하게 조성해놓은 잔디 구장을 좀 보십시오. 부여가 전국 축구 경기의 메카로 떠오르는데 막상 내놓을 만한 축구팀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번 유소년 축구 클럽 창단을 계기로 부여에 축구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제 2의 박지성 같은 세계적 선수로 키워내겠다는 각오로 뛰겠습니다."

 

부여 유소년 연맹 임권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과 정두홍 감독이 마련해준 유니폼과 축구화를 갖춰 입은 부여 유소년 축구 선수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모두들 박지성을 능가하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투지가 온 몸에서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 취재원들을 인터뷰하는 것을 아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가 하는 일, 즉 기자란 이런 일을 하는 거야. 오늘 사진 찍은 것과 사람들을 만난 것을 잘 정리해서 글로 써서 소식을 전해주는 일이 기자의 역할이야. 컴퓨터는 바로 엄마와 같은 일을 하는데 많이 써야지, 너처럼 게임을 하는데 주로 쓰면 될까? 안될까?"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도 혹시 축구에 관심 있니? 축구하는 것 좋아하면 너도 유소년 축구 클럽에 넣어줄게."

"아니, 싫어."

"왜? 너 축구한다고 학교에 축구공 가지고 다니지 않니? 박지성 선수 같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니?"

"그렇긴 하지만 축구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아. 내 꿈은 따로 있어요."

"뭔데? 혹시 프로 게이머는 아니겠지?"

"........"

 

아들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웃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아들의 컴퓨터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미리 막기 위해 취재에 동행시켰지만, 11살 아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들에게 그날 만난 연예인, 운동선수, 공무원 등의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삶의 방법들이 있고 그에 따라서 여러 가지 꿈을 꿀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태그:#일레븐 추구단, #구드래, #유소년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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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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