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네팔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아카이브 전시회에서 네팔 전통악기 등을 연주하고 있다.
 네팔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아카이브 전시회에서 네팔 전통악기 등을 연주하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지난 2일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나는 배웅하지 못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벗들이지만 나는 오랜 친구를 손수 배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 미안했다. 다만 미안한 마음은 '좋은 인연으로 만나 좋은 일을 함께 하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나리'라는 소박한 바람으로 달랬다.

몇몇 기사를 통해 나는 친구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회화 등 예술을 주로 전공한 친구들은 ‘행복한 진동’이라는 자원활동가 그룹을 꾸려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이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한국과 달리 네팔의 자원활동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올해 5월에야 약 200년을 이어온 왕정을 공식 폐지할 만큼 네팔은 정치적 의제와 활동이 청년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문화를 매개로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학교살리기·마을살리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다. 마치 70년대와 80년대 한국에서 강력한 반정부 투쟁노선대신 환경운동과 시민운동 노선을 채택하겠다고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언젠가는 이런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언젠가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해보겠다고 나섰다. 네팔 엔지오 품(Nepal NGO PUM, 대표 심한기)이 이 친구들의 활동터전이다.

네팔 엔지오 품은 3년째 모노허라 지역에서 학교살리기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공동체운동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5월에 네팔에서 열린 '한국-네팔 청년문화 실천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내게 '한국에서나 잘하지 뭣하러 네팔까지 가서 원조식 운동을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얘길 들어보니 네팔도 외국의 퍼주기식 원조에 익숙해져서 티도 안난다더라'며 염려를 하곤 했다.

언젠가 이런 의문과 염려에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팔의 젊은 벗들을 배웅하지 못한 미안함이, 또 한국의 지체장애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 네팔의 어린이들과 함께 '행복한 학교'를 지금 진행하고 있을 심한기 대표에 대한 미안함이 오늘 작정하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우선 네팔 엔지오 품이나 자원활동가 그룹 '행복한 진동'은 여느 한국의 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학교 건물 지어주고, 책 기증하고 마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요즘 국제정세를 설명하면서 즐겨 쓰는 용어처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학교의 건물이 낙후돼서 보수를 하든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 가능하면 필요한 돈을 만들 때부터 '우리가 얼마 낼테니 마을에서도 얼마 내시오'한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주민들이 돈을 내고 만드는 일이니 함께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일은 학교를 매개로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아이들, 교사, 마을 청년, 주민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퍼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공동체의 변화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의 참여를 통한 변화가 핵심이다. 즉 사람이 바뀌어야 마을이 바뀌는 것이다.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3년째 모노허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학교 건물 뚝딱 지어주고, 한국에서 안 읽는 책 몽땅 갖다 주면 금방 티는 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오고,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는 매우 길고 긴 관계의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함께 할 수 없게 되고, 함께 할 수 없으면 오래하지 못한다. 오래하지 못하면 일회성이 되기 십상이고, 일회성 사업은 퍼주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3년 동안 공을 들이고도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지난 5월에 가서 한 일이라곤 고작(!) 마을지도 함께 만들고 부서진 학교 2층 수리하기로 한 것밖에 없다. 단지 그뿐일까?

네팔 엔지오 품이 3년 동안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노허라 지역 베씨마을. 드디어 마을청년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아리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 등을 열기로 했다.
 네팔 엔지오 품이 3년 동안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노허라 지역 베씨마을. 드디어 마을청년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아리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 등을 열기로 했다.
ⓒ 네팔 엔지오 품

관련사진보기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마을 청년들에게서 나타났다. '예전에 내가 다녔고, 우리 동생들이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위해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보자'며 학교와 마을청소부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우리로 치면 '방과 후 학교'를 마을청년들이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 사진과 마을 사람들 사진을 찍어서 소박한 전시회도 학교에서 열었다. 정규수업이 끝난 아이들과 학교에서 함께 놀아주고, 뒤처진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과외공부도 슬쩍 한다. 어떤 사회든 청년이 움직이면 활기도 도는 법이다.

심 대표는 네팔 엔지오 품의 상근활동가인 이하니씨가 "마을청년들이 방과 후 학교를 열기 시작했다"고 소식을 전해오자 눈물을 흘렸다고 언젠가 고백했다. 그 눈물엔 모든 게 담겨있다. 낯선 땅, 낯선 사람과 관계를 트고, 친해지고, 함께 일을 도모하고, 차질이 생기고, 실망하고, 방향을 틀기엔 너무 와 버렸고, 다시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고.....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숱한 과정이 마을 청년들이 만든 소박한 방과 후 학교로 열매를 맺은 것이다.

'행복한 진동' 친구들의 감동은 심 대표보다 더할 것이다. 실제로 한 친구는 내게 "이제서야 삶의 목표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달 29일과 31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다문화 전시공간 '리트머스'에서는 매우 특별한 아카이브 전시회가 열렸다. 네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프로세스 아티스트인 김월식 계원조형예술대 교수가 연출했다. 벽면은 사진작가 김지은의 프로젝트 기록사진으로 이어졌고, 방석을 깔고 앉으면 다큐멘터리 작가 김판중이  기록한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또 한 벽면엔 네팔 '행복한 친구들'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었고, 품의 프로젝트 기획서와 <오마이뉴스>의 관련기사도 전시됐다.

이젠 '국경 없는 마을'이 돼버린 안산 원곡동에서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실천하고 있는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시도하는 자리였다.

전시회가 끝나고 다들 평가는 좋았다. 전시회가 끝이 아니고 프로젝트의 과정에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팔 친구들 역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에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전시회를 마친 31일 밤, 나는 네팔 친구들과 이른 이별의 포옹을 나눴다. 람, 딥말라, 치락, 라젠드라, 상게.... 친구들은 '다시 네팔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 역시 진정으로 다시 만나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누구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가슴 충만해지는 이 넉넉함을 다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젊은 네팔 친구들은 지금 심한기 대표와 한국에서 온 지체장애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카트만두의 어느 학교 정문을 막 나서고 있는 참일 것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새로운 네팔을 소박하게 만들어가고 있을 친구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나마스떼(당신의 신께 경의를)!!

지난달 29일과 31일 안산시 원곡동 르트머스에서 열린 아카이브 전시회
 지난달 29일과 31일 안산시 원곡동 르트머스에서 열린 아카이브 전시회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태그:#품, #네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