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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테러 이후 사진작업 주제를 '자본론'에서 '미군'으로 바꿨다.
▲ 작업실 음우당에서. 2001년 9·11테러 이후 사진작업 주제를 '자본론'에서 '미군'으로 바꿨다.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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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우당(蔭雨堂)'.

<민통선 평화기행><한강하구>의 작가 이시우(41)씨의 작업실에 걸려있는 액자에 적힌 글자다. '음우당'은 <시경>에 나오는 구절인데 "날이 그늘지고 어두워지면 비가 올 징조이니 미리 준비를 해두라"는 문장 속에서 따온 것이다. 2001년 붓글씨로 직접 쓴 이 글자에는 이시우씨의 서원이 담겨져 있다.

"미국의 9·11 사건 직후에 민족의 위기에 대비하자는 마음에서 썼죠. 사건 발생 3일 후에 앞으로는 미군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또한 위대한 사상가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이시우씨는 한 장의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완벽한 지식과 역사적 안목을 지니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미군과 유엔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그 '보복'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검사에 의해 "한 명의 몽상가·아웃사이더가 아닌,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준 행위자"라며 10년 구형을 받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올 1월 31일 1심 판사는 이시우씨를 '몽상가'로 여겼는지 무죄 선고를 했고, 그는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간척지가 유라시아 체계의 거대한 유적지

강화도 길을 걷고 있는 이시우.
 강화도 길을 걷고 있는 이시우.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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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심 재판 중에 보석으로 풀려난 이시우씨는 서울 여의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일본 오키나와까지 '국가보안법과 헌법 3조(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크고 작은 섬들로 한다)'를 화두로 88일 동안 삼보일배 명상을 했다.

그는 워낙 걷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매일 같이 강화 읍내의 자택에서 선원면의 작업실까지 1시간 넘게 걸어 다닌다.

걷기 명상을 즐기는 이시우 작가와 강화대교 북단에서 연미정까지 해안철책선을 따라 5㎞ 정도를 함께 걸었다.

얼마 전에 이시우씨는 <한강하구(통일뉴스, 2008년)>를 발간하면서 부제를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의 창'이라고 달았다. 어떤 의미일까?

"정전협정의 1조 5항은 '한강하구는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정전협정의 틈이죠. 그리고 한강하구는 유라시아 패권이 한반도로 요동쳐 올 때마다 격전장이 된 곳이기에 거꾸로 유라시아 너머를 응시할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시우씨는 '유라시아(아시아와 유럽으로 이뤄진 대륙)'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만 해도 지식인들이 유라시아 차원의 고민을 했는데, 분단 이후 반도에 갇히면서 상상력의 폭이 협소해졌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시우씨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유라시아 역사 속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역사적 전망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지정학적으로도 그렇고 역사와 문명사적으로 그렇고, 유라시아체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죠.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유라시아로 편입되는 4번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고인돌로 상징되는 원시 해양 실크로드시기, 두 번째는 최초의 유라시아제국인 몽골의 침략, 세 번째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그리고 네 번째로 한국전쟁을 거쳐 세계체제에 편입됩니다. 그때마다 한강하구는 우리 민족 운명의 나침반 역할을 했고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유라시아와 한강하구의 연관성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죠."

<한강하구>
 <한강하구>
ⓒ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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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은 부지런하다. 멀리 제비꼬리처럼 생긴 연미정이 보인다.

철책을 따라 걸으며 잠시 역사적 상상력을 발동시켰다.

강화도 갯벌로 밀어닥쳤던 몽고병사들, 한강하구를 지나 양화진을 향하던 프랑스 함대, 초지진에 상륙해 육박전을 벌이던 미군 병사들, 그리고 지금 철책에는 K2 소총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해병대 병사들이 정전협정 체제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철책에 붙어있는 '직진금지'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던 이시우 작가는 "역사적 상상력만으로는 유라시아라는 용어가 실감나게 들리지 않는다면 강화의 간척지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철책 따라서 펼쳐진 논들이 모두 유라시아체계의 결과물이고 거대한 유적지입니다.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로 도읍을 옮긴 고려 무신 정권이 양식을 보충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한 것이죠. 우리가 분단 사회에만 살고 있어 무감각한 것도 있고요. 얼마 전 독립운동단체의 지원으로 시베리아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해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가 살던 집터,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독립운동가 이규식이 머물던 건물을 바라보면서 유라시아체계에 대한 확신을 가졌죠."

"기억은 미래의 과거형"이며, "과거의 기억에서 우리 미래의 이상을 본다"는 이시우씨는 역사 공부에 심취해 있다. 그는 한강하구의 과거를 토대로 한강하구 너머에서 유라시아의 미래를 응시한다. 유라시아체계에 속한 동북아에서 현 시기 주요한 의제는 무엇일까?

"북핵 문제가 정리되면, 유엔사 의제가 핵심의제가 될 겁니다. 유엔사는 한미간에 잠복한 시한폭탄, 핵폭탄과 같은 문제죠."

한강하구는 우리 역사의 나침반

최근에 <한강하구>를 펴낸 이시우 작가는 "한강하구는  유라시아 너머를 응시하는 우리 민족사의 나침반"이라고 말한다.
▲ 강화 연미정에서 최근에 <한강하구>를 펴낸 이시우 작가는 "한강하구는 유라시아 너머를 응시하는 우리 민족사의 나침반"이라고 말한다.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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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유라시아의 하늘을 비춰온 한강하구는 "유라시아의 패권이 한반도로 요동쳐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수난과 항전으로 민족의 운명을 예고해 온 역사와 문명의 나침반이었음"을 강조하는 이시우 작가의 말을 들으며 도착한 곳은 민통선 코앞에 위치한 연미정. 고려시대 지어진 정자인 연미정에 오르자 김포의 문수산과 북녘의 전경도 시원스레 펼쳐져 보였다.

"바로 이 연미정에서 후금과 조선이 1627년 정묘호란 때 평화협정을 맺었죠."

이시우 씨는 한강하구 인근의 지리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저기 남과 북 사이에 있는 섬이 유도이고, 저 멀리 뾰족한 산봉우리는 극락봉이고 그 옆은 개성의 송악산입니다."

바닷물은 썰물 되어 급하게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니 어느 틈엔가 다시금 밀물되어 몰려왔다. 강물과 뒤엉킨 바닷물은 곳곳에서 소용돌이로 거세게 맴돌았다. 마치 역사의 밀물과 썰물, 전쟁과 평화를 목격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시우 씨는 감옥에 있을 때 "문득문득 속수무책으로 한강하구를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한강하구엔 "고난을 전망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야만을 지혜로 만들어 낼 모든 역사의 유전자"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미정에 있는 수백 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는 강과 바다 그리고 철조망조차 품에 안은 채 자라고 있었다.

"어느새 나무는 철조망의 키를 넘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진보란 주인으로서 성장이며 보수란 관성으로서의 정체입니다."

이시우 작가의 사진시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인간사랑 펴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에게 주인이란 또한 "자신을 지배함으로써 홀로 서는 사람"이다. 그는 주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지배하기 위해 오늘도 국가보안법과 헌법3조를 명상하며, 그리고 한강하구에서 유라시아를 응시하며 걷고 또 걷는다.

사진을 찍는 이시우 작가는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 강화 해안 철책에 핀 꽃 사진을 찍는 이시우 작가는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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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시우 사진작가와 함께 하는 강화 민통선평화학교가 9월 20일(토)~21일(일) 사이에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진행됩니다.

* 기행 및 해설의 주요내용은 정전협정과 한강하구 문제/ 기울어진 고인돌의 통일미학/몽골의 침략과 간척/ 병자호란과 유라시아체계/ 신미양요, 병인양요와 유라시아체계/ 이동휘의 유라시아 리더십/ 한강하구를 통해 본 유라시아 상상력 등입니다.

* 평화학교 신청자에게는 저자의 사인이 적힌 <한강하구>를 드립니다.(문의 032-937-7430)



태그:#이시우, #한강하구, #유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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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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