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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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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허물을 자식에게 물을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이 난감하고 착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달리 말해 일제 순사부장의 아들 안병만은 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괜찮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우리는 일제 헌병 오장의 아들 신기남이 집권당 의장으로 마땅한가 아닌가를 물었었다. 그때도 한편에서는 괜찮다고 했고 다른 편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더 비근한 예로 지난해에 우리는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손자 이장무가 국립 서울대학교의 총장으로 마땅한가 부당한가를 물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물론 아비의 허물을 자식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식의 허물을 아비에게 묻는 것보다 더 불합리하다. 그래도 아비는 자식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는 제어할 수 있지만 아비의 삶을 제어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연좌제로 접근할 문제인가

이런 문제를 법으로 규제한 것이 연좌제 배척법이다. 우리가 연좌제를 배척하기로 합의한 것은 벌써 오래전인 1894년 갑오개혁 때였다. 그 때는 '협의 개념'으로써 친족 관계로 연루되어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배척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헌법에서는 연좌제 배척을 '광의 개념'으로 적시해 놓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13조 3항)

이번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임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연좌제 반대를 근거로 든다. 그런데 과연 이 문제에 연좌제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연좌제'란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형사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뜻한다. 일단 아들 안병만 장관은 물론 일경 순사부장을 지낸 그의 아버지도 친일 혐의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장관에 부임하지 않는 것이 과연 '불이익'인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안 장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역임했다. 다른 교수 같으면 정년퇴직할 나이인 65세에는 한미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직을 겸임하기도 했다. 2006년도의 일이다. 또한 그는 지난 5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가 이번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 약간 희극적이기도 한 일이다. 명색이 미래를 기획하는 위원회의 수장이 부임 석 달 만에 자리를 바꾸게 된 것이다. 이런 정황에 장관 임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불이익'이 되는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따라서 그의 장관 임용 문제를 곧장 연좌제와 결부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친일파 아버지와 미국박사 아들, 대한민국 기득권의 슬픈 자화상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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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경찰 하신 것을 저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경찰 하신 것은 직업이었다. 일제시대 때 어려운 상활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제 선친은 절대로 친일을 위해 민족을 속이거나 압박을 가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단언한다."

안 장관의 말에 의하면 식민지 시대에 아버지가 제국주의 경찰의 순사와 순사부장을 지낸 것은 직업이었으므로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친일이란 개념은 아주 모호한 것이다. 한 예로 우리는 '창씨'를 했으면 친일로 알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 인구의 70%씩이나 '창씨' 한 것은 그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창씨' 하지 않으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사업 허가를 받을 수도 없었다. 이런 경우 생업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창씨'한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선 군인이나 경찰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위관직, 이 세 가지는 명백한 친일 직종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시에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과연 몇%나 될까? 그것이 과연 생계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출세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일제 순사는 박정희 시절의 중앙정보부나 전두환 시절의 보안대원 이상 가는 권력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오죽했으면 우는 아이에게 '순사가 잡아간다'고 했을까? 이런 일이 그저 직업이었기에 부끄럽지 않다는 판단은 대체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교육 수장의 역사관치고는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근시안적이다. 또한, 직업이라서 부끄럽지 않다면 세상에 부끄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 논리라면 성매매도 직업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 것 아닐까?

특히 안 장관의 발언은 심각할 정도로 당착적인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친일을 위해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이것은 친일을 위해 순사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학교수 출신답지 않은 궤변이다. 이는 표현을 달리 해서 '친북을 위해 간첩 일을 한 게 아니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차라리 우리 아버지가 일제 순사였던 것은 맞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대답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가 일제 순사였다고 해서 아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런 이치로 헌병 오장의 아들도 당 의장을 할 수 있고 친일사학자의 손자도 대학 총장을 할 수 있다. 다만 조상의 행위가 허물인 줄 아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병만 장관은 이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 장관직을 고사했어야 하고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주장은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아버지 때문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역사 문제를 정략에 이용하는 것은 죄악

참여정부 시절 <월간조선>은 조기숙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증조부가 동학혁명 때 고부군수 조병갑이라는 사실을 크게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연좌제적 발상이었다. 이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따지지 않고 또한 그런 조상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않은 채 무조건 조상이 문제 있으니 본인도 문제 있다는 식의 치졸한 논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증조부까지 연계하는 것은 <월간조선>이 아니고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기발(?)하고도 해괴한 정치공작이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런 일이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진행시키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공격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작년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은 정동영 후보의 부친이 일제시대 금융조합에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금융조합은 우리 국민 수탈에 이용된 기관인 만큼 정 후보는 부친의 친일 행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 역시 친일청산의 물타기이자 역사를 왜곡하는 사악한 정치공작이었다. 금융조합은 사단법인체로 신용협동조합과 비슷한 성격을 띠는 기관이었다. 금융조합은 지금 농협의 전신으로서 서민층의 금융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이자 강직한 사학자였던 김성칠 선생 같은 이도 일본강점기 금융조합 간부를 지낸 바 있다. 그는 고교시절 항일동맹휴학을 주동하여 1년 옥살이를 한 독립지사이기도 했다. 친일도 나쁘지만 친일이 아닌 것을 친일로 모는 것은 두 배로 나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역사를 정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죄악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독립운동 3대에 집안 망하고 친일 3대에 집안 흥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전도된 역사 현실을 십분 표현하는 말이다. 본질적으로 역사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이번 안 장관 건과 같은 소모적이고 착잡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식민지 역사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이며 최근 전작장편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태그:#안병만, #역사청산,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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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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