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부동산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부동산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올해 4월쯤일까. 취업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오늘 저녁은 내가 쏠게!!"라고 큰소리를 치고 나왔습니다.

결혼 십 년 동안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등바등 살림하면서 애들만 키우던 아줌마가 아줌마라는 이름 뒤에 직장인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붙인 건 "자아발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보다 사실 경제적 이유가 더 컸습니다.

하루하루 커가는 애들은 돈잡아 먹는 기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식비, 책값에, 학원비까지... 팔뚝만한 두 아이 키우는 게 어른 너댓 먹이는 것보다 더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기특한 마음 한편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취직을 결심하게 됐고, 그리 어렵잖게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쏙 들만큼의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이다 보니 취직에서 최우선 조건 역시 아이들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뛰어갈 수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하루 열 시간씩 일을 해도 월급은 사실 웬만한 아르바이트보다 적었습니다.

일하는 곳은 부동산 사무실이었습니다. 노니 염불하는 심정으로 6년 전 둘째 낳고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 놓았더니 이 나이에도 취직은 어렵잖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격증만 있을 뿐 아는 게 없으니 처음 며칠은 생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손님들이 궁금해 하는 건 많은데, 대답해 드릴게 있어야 말이죠.

부동산에 오시는 손님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상가 보러 오신 손님들 "장사 잘 되느냐" 물음엔 "대략 난감"

첫째는 집을 팔거나 사는 손님. 이 분들은 사무실에 들어오면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들어갑니다.

"집이 있느냐?"
"시세는 얼마냐?"
"언제 입주가 가능하냐?"

이런 분들에게는 많은 얘기를 해주지 않아도 돼서 편합니다. 또 요즘에는 모든 업무가 인터넷과 컴퓨터로 이뤄지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자판 한번만 두드리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거든요. 집이 있으면 시간약속을 하고 보여드리면 되니까요. 계약서로까지 연결이 되면 더 없이 좋지만, 결정을 하게 만드는 그 한마디 기술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거라 참 어렵더라구요.

그런 점에선 상가가 더 어렵습니다. 가격, 조건 다 만족시켜드려도 마지막에 "장사 잘 되겠죠?"하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네 그럼요"라고 대답을 못 하겠더라구요. 장사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저인데, 장사란 것이 사람이 많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좋다고 잘되는 것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잘될 거라고 확신을 줄 수 있겠어요. 말 한마디도 책임을 져야 하니 신중하게 해야 되거든요.

두 번째는 상담을 하시러 오시는 분들이세요. "지금 의정부는 경전철 공사가 한창인데, 이 공사가 언제 끝나느냐"에서부터 "입주하고 싶은 단지가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공사를 하는데 언제쯤 완료가 되며 그에 따른 부과효과는 어떤 게 있느냐. 그리고 계발예정지는 분양가가 어느 정도이며, 언제 분양을 하며 그에 따른 효과는 무엇이냐?" 등등입니다.

그 많은 걸 대답해 드릴 능력이 아직 제게는 없거든요. 게다가 대답을 해 드린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인데, 물으시는 입장에서는 제 말 한마디가 힘든 시기에 붙잡은 지푸라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다고 모른다고 대답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희망적인 대답을 바라는 그 분들의 기대와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설명해 드리고 명함을 건네며 더 궁금하신 점 있으면 전화주세요라고 마무리 짓지만, 돌아서서 다시 검색을 해보면 제가 했던 말 중 한 두 마디는 보란 듯이 잘못된 정보였더라구요. 그때의 황당함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어요.

혹시 내 말 때문에 이사를 결정하는 건 아닐까? 설마 다른 분들한테도 소문을 내서 동네 전체가 벌집 쑤셔놓은 듯 들고 있어서면 어떡하나?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면 "부동산에서 그런 것도 잘 모르시나 봐요"라고 하는 실망스런 말투가 돌아옵니다.

그러면 또 일 못해서 잘리는 건 둘째 치고 혹시 나 때문에 사장님에게 피해가 갈까봐 잠이 안 올 정도였어요. 물론 겪어보니 그 분들 역시 전 재산을 제 한마디에 던졌다 놓쳤다 할 만큼 경솔하거나 무책임한 분들이 아니란 걸 알았지요.

가장 좋은 상담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란 것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답니다.

문 밖에서 흘깃거리는 분들, 마음 편히 들어오세요

은평뉴타운에 있는 부동산 중개사무소.
 은평뉴타운에 있는 부동산 중개사무소.
ⓒ 오마이뉴스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세 번째는 그냥 놀러 오시는 분들이세요. 아주 편한 차림으로 "지나가다가 차나 한 잔 얻어 마시려고 들어왔어요, 괜찮죠?"라고 하시지만 이분들이 가장 조심스럽더라구요.

딱히 목적이 없으니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했다가는 발 없는 말이 천리 가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되더라구요. 그냥 물어보는 말, 일과는 상관없는 일상적인 대화만이 나도 지키고, 근거 없는 소문도 막는 방법이란 걸 알았어요.

그래도 손님이 없는 것보다는 말동무라도 해주시겠다고 찾아와주는 분들이니 제게는 고마운 사람들이지요.

제게 이분들이 어려웠듯이 그 분들도 초짜 아줌마의 어눌한 상담이 많이 어렵고 답답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화내지 않고, 가끔은 진심으로 제 한마디에 크게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제가 그만두지 않고 두 달 뒤, 조금 멀게는 일 년 뒤의 제 모습도 그려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분들 외에도 몇 분이 더 있어요. 한 달 전, 그리고 몇 달 전 제 모습을 보는 듯한 분들이지요. 궁금한 것이 있어도 얼른 들어오지 못하고 유리창에 붙여 놓은 매물건만 힐끔힐끔 보시고 가시는 분들이세요. 들어가면 혹시 바쁜데 피해주는 건 아닐까? 물어만 보고 그냥 나오면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다른 곳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전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혹시 바쁘더라도 손님이 들어오면 그 틈에 잠깐 쉬어 갈 수 있어 고맙고, 그냥 물어보고만 가시더라도 열 번 물어보면 한번은 거래하실 거라는 제 믿음에 비춰볼 때, 한 번의 수고를 덜어주신 셈이니 그것도 고마웠었지요.

물어보는 거, 차 한잔 마시는 거 다 공짜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매물장만 보고 가실게 아니라 들어오셔서 따듯한 차 한 잔 꼭 하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빠듯한 살림에 새 전셋집 찾는 분들... "마음 아파"

그리고 제 맘을 참 안타깝게 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오르는 집값을 따라가지 못해 걱정하시는 분들이세요. 오늘 아침에도 문 열기가 무섭게 젊은 부부가 애를 업고 와서 전세를 찾는데, 문제는 돈이 너무 적어서 그 돈에 맞는 집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짝수년도에는 전세만기년도라 새로 구하시거나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년 만에 전세금이 삼천만원이나 올라버린 거죠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 받아서 애 키우며, 살림하며 이년에 삼천만원을 무슨 수로 모으겠어요. 그리고 돈 많으면 내 집 장만해서 이사 걱정 없이 살지 뭐하러 전세를 구하러 다니겠어요. 그건 주인 입장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기간도 만료되고, 시세대로 전세금을 올리겠다는데 그걸 누가 뭐라 할 수 없잖아요.

인터넷을 다 뒤지는 것도 부족해서, 혹시나 해서 사십군데도 넘는 인근 사무실에 다 전화를 넣어 봐도 금액에 맞는 집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집값이 덜 올랐을 때 미리 사 두시지 하는 아쉬움만 들더라구요. 이런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대출까지 받아서 조금은 무리해서 산 내 집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아직도 벅찬 이름으로 남아있는 대출금이지만 두 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전세를 구하러 다니며 번번이 좌절해야 하는 아픔은 안 겪어도 되니 말이에요. 저만 믿는다며 집이 나오면 언제라도 전화 달라고 남기고 가니 책임감이 배가 됩니다. 고객명단에 올려놓고 다시 한 번 전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혹시 못 구하더라도 끝까지 노력은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다들 노력을 하게 만드는 건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격만 올려달라고 조르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솔직히 구매자가 있다 해도 이런 분들은 또 어떤 이유로 가격을 올릴지 모르기에 선뜻 추천을 해줄 수가 없더라구요.

파는 사람은 더 많이 받고 싶고, 사는 사람은 조금 덜 주고 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잖아요.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지만, 어느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것이 부동산 일이더라구요.

참, 부동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 어떤 분인지 아세요? 그 분은 바로 거래성사후 수수료 깔끔하게 주시는 분...그래야 저 같은 아줌마가 월급도 받고, 점심도 먹을 수 있거든요.  실수도 많이 하고, 덤벙대기도 하면서 하루가 일 년 같더니 그래도 시간은 흘러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가더라구요.

십 년 만에 취직한 마누라가 혹시 비위 틀려 그만둘까봐 양말도 예쁘게 벗어주고, 설거지도 맡아서 해주던 남편한테 새삼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물론 지금은 도로 백수가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하나만 더 배우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지만, 역시 제겐 돈이나 자아발전보다 아이들이 먼저더라구요. 물론 언젠가는 다시 취직을 할 생각입니다. 그때도 아줌마 경력 하나만을 믿고 저를 채용해주실 멋진 사장님이 계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 역시 십년지기 아줌마로서 아줌마의 마음은 잘 압니다. 여관방부터 시작해서 지하방, 작은 빌라까지 남의 집 살이라면 신물 나게 해본 덕에 집 없는 설움, 돈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계산기보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먼저 내미는 그런 사람으로 열심히 일을 해보렵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취업도전기 응모합니다.



태그:#취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