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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방학

 

방학은 썰렁하고 싫다

방학은 나 혼자다

싫다 언제나 나 혼자

저녁에만 엄마아빠를 만날 수 있다.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나의 마음을

엄마 아빠가 알까?

 

난 방학이 정말 싫다

 

- 이현승(경남 진주 신진초3)

 

아이들은 얼마만큼 방학을 좋아할까? 방학을 시작하면서, 좋아서 방방 뛰며 교문을 나서던 아이들의 꽁무니를 보면서 떠올렸던 많은 생각들이 방학 내내 물고 다녔다. 아이들이 방학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는 개학하는 오늘 아침까지도 떨어지지 않았다.

 

방학 동안 무시로 아이들을 만났다. 학구 내에 사는 까닭이다. 반가웠다. 녀석들도 모처럼 만난 담임에게 와락 안겨든다. 얼마나 뙤약볕 아래 쏘다녔는지 후줄근한 땀 냄새가 물씬했다. 하지만,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아이들,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후텁지근한 여름을 잘 이겨낸 건강한 향취였다. 근데, 그것도 잠깐, 아이들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 방학이 재미없어요. 우리 개학하면 안 돼요? 집에 있기 싫어요."

"방학 동안 늘 혼자란 말이에요. 심심해서 죽겠어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

"나는 방학 때 학원만 다녀요. 짜증 나요."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너무나 컸다. 초롱초롱한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저럴까 싶어 아이의 처진 어깨를 다독였다. 이해가 된다. 지금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일이니까.

 

학구는 농촌지역이나 부곡온천과 인접해 있어 농사일보다 온천지구에 터전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학부모의 대부분은 맞벌이다. 방학이라 해도 부모가 일터로 향하고 나면 아이들은 집에 남는다. 개중에는 홀로 남는 아이들도 상당하다. 그런 까닭에 평소에는 물론, 더욱이 방학 때도 아이들은 혼자가 된다.

 

낮 동안은 부모가 부재하다 보니 그 누구도 혼자 남은 아이와 놀아주거나 품어주기가 안 된다. 그러니 아이는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또 주어진 시간을 신명나게 소용할 만큼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다. 아이의 축 쳐진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였다. 단지 담임으로서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했다.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을 살갑게 챙겨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평소 좋은 아빠가 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아들과 나는 요즘 코드가 맞지 않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들은 분명히 내게 반항적이다. 말문을 닫고 지내는 것은 물론, 얼굴을 마주 대해도 별반 할 말이 없다. 직업은 못 속이는 것인지 대화를 했다 하면 누구나 다 아는 도덕적인 교훈만을 장시간 늘어놓는다고 불만이다.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란다. 분명히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부정적인 아버지인 것이다.  

 

마침내 개학을 했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만난 아이들, 운동장이 꺼져라 방방 내 닿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살맛이 난 것이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르르 모여들었다. 콧날이 시큰했다. 얼마나 사랑의 온기에 고팠으면 그렇게 반겼을까(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챙겨본다. 알맞게 그을린 얼굴들 건강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방학을 신명나게 챙겨주지 못한 자괴감으로 헛헛했다.

 

직원회를 마치고, 개학식에 이어 교살에서 반 아이들과 만났다. 담임이 교실에 들어섰는데도 왁자지껄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무 말도 곁들이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아이들을 두루 훑어보며 눈을 맞춘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정돈하고 앉는다.

 

"얘들아, 방학 잘 보냈니? 방학 동안 별일 없었지. 반갑다."

"넷, 선생님 반갑습니다!"

 

녀석들 대답, 시원스럽고 카랑카랑했다. 말문을 트면서 방학 동안 재미있었던 일, 인상 깊었던 일을 되짚어 보게 했다. 그랬더니 동혁이가 선뜻 자기 일상을 얘기한다. 녀석은 누구 못지않게 믿음직하고 붙임성이 있다. 일순간 미적거리던 아이들도 덩달아 화재를 돋운다. 교실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가을 하늘이 참 청명하다.

 

 

여름방학은 나에게 어떤 방학이었을까

 

난 방학을 지겹게 보냈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빨리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가끔 놀러가도 다 귀찮아서 가기 싫었다.

그러다가 다가와서 열심히 방학숙제를 해놓고 카페에 들락거리고

개학한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잠을 잤다.

이번 방학은 결코 보람차지 않았던 것 같다.

 

- 부곡초등학교 6학년 1반 ○○○

 

 

방학생활

 

이번 여름방학은 정말 최악이었다.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가족여행도 취소되었다.

그리고 수학교실도 덩달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방학 때 하는 일 없이 집에 쳐박혀 있으니 기분이 참 안 좋았다.

내가 불쌍해 보였다.

겨울방학 때는 혼자라도 여행을 다녀야겠다.

 

- 부곡초등학교 6학년 1반 □□□

 

 

 

나의 6학년 여름방학

 

이번 여름방학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왜냐하면 똑같은 것을 매일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일어난 다음 씻고, 학원 가고, 오면 잠시 쉬다가 또 골프연습 가는 것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날 쯤 엄마에게 항의를 해서 골프연습을 쉬고 조금 놀았다.

솔직히 말해서 더 쉬고 싶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학원에 끌려 다녀서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방과 후 골프부는 대회 때문에 더욱 쉬지 못했다.

이번 여름방학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저번 방학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그랬다. 아이들의 방학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고만고만했던 생활이었다. 도회지 여느 아이들 같으면 몇몇 캠프활동에 참가했을 테고, 주말 가족 나들이도 다녀왔을 테다(그렇다고 우리 반 아이들이 전적으로 사는 형편이 변변치 못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곳에도 잘 사는 집은 도시 어느 사람에 못지않은 호사를 누리고 산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 대부분은 생활 환경이 그에 따르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부곡하와이 온천을 지척에 두고 사는 덕분에 그곳 수영장만큼은 자주 드나들었다고 자신한다. 가만가만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얘기보따리를 풀었다. 한달여 방학생활, 스물여덟 아이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의 방학은 건강했다. 그렇지만 끝끝내 말문을 닫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억지로 들이밀지 않았다.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힘들었던 그들의 방학생활이 훤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계속되었던 아이들 이야기를 정리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서 고맙다고, 다시금 자신의 방학생활을 잘 챙겨보라고 다독이면서 몇몇 방학과제를 훑어보았다. 방학과제라야 별다른 게 없었다. 마땅히 내 준 것도 없었으니까.

 

근데도 한 꾸러미를 안고 온 아이들도 있었다. 꼼꼼하게 눌러 쓴 일기며, 만들기, 그리기, 독후감 등속이 와락 펼쳐졌다. 이렇게 많은 과제들은 언제 다 했을까. 가상했다. 일일이 다 가려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방 좋아하는 아이들, 역시 아이는 아이다웠다.

 

개학날은 반나절 수업이라 넷째 시간으로 끝마무리를 하면서 내일부터 당장에 해야 할 생활안내를 했다. 한 주일 동안은 적응기 학습이다. 방학 동안 함부로 길들었던 생활패턴에 대한 일종의 워밍업이다. 몇 가지 내펼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의 눈빛은 사뭇 달랐다. 교실 가득 살아 오르는 열기다. 이제 풋풋한 향기를 품은 아이들과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 거다.

 

"애들아, 우리 서로 네 덕이라 위해주며 6학년 마무리 잘하자. 쫑구기 아재 너희들과 곱살 맞게 놀아 줄 테니, 정말!"

 

좋은 바람을 갖고 나니 창문으로 다가드는 가을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름방학, #개학, #바람,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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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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